나는 만약 산타 로살리아 섬의 첫 정착자들이 원래 ‘세기의 자연 유람’의 명단에 올라 있던 승객들과 선원들이었더라면, 그러니까 폰 클라이스트 선장, 매킨토시 부녀, 히로구치 부부, 메리 헵번, 칸카보노 소녀들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선원들과 재클린 오나시스, 헨리 키신저, 루돌프 누레예프, 믹 재거, 팔로마 피카소, 월터 크론카이트, 바비 킹,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 로베르 페팡 등이 이 섬에 정착하게 되었더라면, 인류의 현재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곰곰 생각하는 때가 더러 있다.
그 작은 섬에서 살자면 우선 그 많은 수가 문제였을 텐데, 처음엔 아주 근근히라도 버텨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식량과 식수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슬슬 아귀다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살인도 벌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내 짐작컨대, 그들 생존자 일부는 자연인가 뭔가 하는 것이 자기들의 승리를 무척 기뻐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재생산이 불가능한 자들의 생존은 자연에 대해 이렇다 할 의미가 없는데, 승객 명단에 올라 있던 대다수 여성들은 이미 가임기를 훨씬 넘긴 연령들이었기 때문이다.
산타 로살리아 섬에 온 처음 13년 동안, 그러니까 아키코가 가임기에 이르기까지는, 가임 여성이래야 사실 장님 셀레나와 이미 온몸이 털북숭이인 아이 하나를 낳은 히사코 히로구치 외에 세 사람 정도가 더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 생존 투쟁의 승자들은 그녀들을 강제로라도 임신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할 때, 믹 재거와 헨리 키신저와 선장과 사환 소년 등 어느 누구의 씨가 퍼졌더라도, 오늘날 인류의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달라질 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살아남는 것은 가장 사나운 싸움꾼들이 아니라 가장 솜씨 좋은 어부들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곳 제도(諸島)의 순리인 것이다.
실제로 이 인간들 이외에도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그 생존 능력을 시험당한 존재들이 있었다. 폭도들의 약탈에도 불구하고, 바이아 데 다윈 호 밑창의 수조에는 메인 산(産) 바닷가재 200마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산타 로살리아 섬 주위의 바다는 바닷가재들이 살기에는 수온은 알맞았지만 수심이 너무 깊었다. 어쨌든 바닷가재들과 관련해 한 가지 일러 둘 사실은 그것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인간들처럼 거의 뭐든지 먹어치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폰 클라이스트 선장은 파파노인이 되었을 때 그 바닷가재들을 떠올린 적이 있었다. 늙어 갈수록, 오래 전 일들에 대한 기억이 더욱 생생해졌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그는 히사코 히로구치의 털북숭이 딸 아키코와 놀아 주면서 SF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메인 주의 바닷가재들이 갈라파고스에 도착해서 지금처럼 백만 년이 지나갔으며 지구의 지배 종(種)이 된 그들이 도시와 극장, 병원과 교통 시설 등을 건설했다는 이야기였다. 바닷가재들은 바이올린을 켜고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 독서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의 우의(寓意)는 그 바닷가재들이 정확히 인간들이 했던 것, 그러니까 모든 것을 망쳐 버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저 평범한 바닷가재가 되기를 바랐다. 그들을 산 채로 삶아 먹던 인간들이 주위에서 사라진 후에는 특히 그랬다.
처음 그들의 불평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산 채로 삶아지기 싫다는 것. 이제 더는 산 채로 삶고 싶어하는 적이 없다는 바로 그 이유로, 그들은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등의 일들을 해야 했다. 선장의 이야기에서 화자(話者)는 박봉에 시달리다 아내를 프로 아이스하키 선수에게 빼앗긴 ‘바닷가재촌(村)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차석 프렌치호른 연주자였다.
선장이 이 이야기를 지어낼 때, 다른 지역의 인류가 멸종 직전이라는 것, 따라서 지배 종이 되고자 하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저항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선장은 그 소식을 영원히 듣지 못하며, 산타 로살리아 섬의 나머지 사람도 다들 마찬가지였다. 나는 단지 큰 생명체들의 다른 큰 생명체에 대한 지배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사실, 지구에서 가장 크게 승리한 유기체는 항상 미생물들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이 맞붙어서, 언제 한번 골리앗이 이겨 본 적이 있었던가?
당시 큰 생명체들의, 눈에 보이는 생명체들의 수준에서 보면, 바닷가재는 인간만큼 정교한 건설자이자 파괴자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라는 후보자였다. 선장의 신랄한 우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바닷가재가 아니라 낙지였다면 그렇게까지 터무니없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당시 그 누글누글한 동물들은 뇌가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된 기능은 그 다재다능한 팔들을 제어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상황이 두 손을 제어하는 인간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의 뇌는 그 팔들로 고기잡이 이외의 다른 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낙지든 무엇이든 지상에서 먹이를 채집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완전히 만족하지 않는 동물은 본 적이 없다. 인간 외에 어떤 동물도 탐욕과 야망을 실험하는 일에 골몰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고 집을 짓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활동을 다시 시작하려면, 그러한 일들은 이제 손이 아니라 부리로 해야 할 것이다. 두 팔은 이제 완전히 지느러미발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지느러미발에 박혀 있는 다섯 줄의 뼈들은 짝짓기 철에 이성을 유혹하는 장신구 구실이나 할 뿐이다. 게다가 인간의 뇌 속에 두 손을 제어하던 부분은 이젠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두개골은 그 때문에 지금은 훨씬 더 유선형에 가깝다. 두개골이 유선형에 가까울수록 물고기를 잡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제 물개만큼이나 빠르고 멀리 헤엄칠 수 있는데, 그들이 조상의 고향인 본토로 헤엄쳐 되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답: 없다.
물고기가 부족하거나 인구가 과밀한 시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본토로 가려고 시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본토에서는 인간의 알을 먹어치우는 박테리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모하게 탐험이라니!
더구나 이렇게 평화로운데, 누가 무엇 때문에 본토에서 살고 싶어하겠는가? 너울대는 코코넛 야자수와 넓은 백사장 그리고 푸른 초호를 상상해 보라. 모든 섬은 아이들을 기르는 데 이상적인 장소가 되었다. 거기다 모든 사람들은 지금 무척 순박하고 여유롭게 살고 있다. 이 모두가 그들의 두 손을 앗아가 버린 진화 덕분이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
나는 바쁘게 움직일 것이다.
손이 게으른 사람들에겐
사탄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을 테니까.
― 아이작 와츠(1674∼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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