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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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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36>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먼저 동생을 알아본 선장이 아래쪽을 향해, 내가 육화되어 있었다면 외치고 싶은 소리를 대신해 주었다.
"'세기의 자연 유람'에 참가한 것을 환영하노라!"

선장은 이제는 텅 빈 술병을 아직껏 부여잡은 채 고물쪽 주갑판으로 내려왔으므로, 눈높이가 동생과 거의 같아졌다. 귀가 잘 들리지 않은 *지그프리드는 좁은 해자(垓字)처럼 둘 사이를 가로지른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되도록 가까이 다가갔다. 그 해자에는 고물 밧줄이, 그 하얀 생명선이 다리처럼 걸려 있었다.

"난 귀가 잘 안 들려요. 형도 그래요?"

*지그프리드가 물었다.

"난 괜찮아."

선장이 말했다.

그는 폭발의 중심으로부터 *지그프리드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코피를 흘렸는데, 그는 그것을 우스꽝스런 일로 치부하기로 했다. 충격파가 그를 상갑판에 패대기쳤을 때 그는 손으로 코를 한방 먹였다. 코냑이 그의 유머 감각을 모든 것이 지극히 웃기게 보일 정도로 심화시킨 탓이었다.

그는 동생이 부두에서 한 운동을 그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을지 모르는 그 무도병에 대한 풍자(諷刺)라고 생각했다.

"네가 아버지 흉내를 내다니, 거, 보기 좋구나."

모든 대화는 독일어로, 그들이 어렸을 적의 언어, 그들이 맨 처음 배운 언어로 했다.

"형! 나 지금 장난이 아녜요!"

*지그프리드가 말했다.

"장난이 아니라니, 모든 게 다 장난이라구."

"형, 약 좀 없어요? 무슨 먹을 것 없어요? 침대는요?"

선장은 만다락스가 익히 알고 있는 명언으로 대답했다.

나는 많은 것을 빚지고 있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나는 그 나머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노라.
― 프랑소아 라블레(1494∼1553)

"취했군요!"

*지그프리드가 말했다.

"암, 취했지. 나야 그저 광대잖아."

선장의 말이었다.

코냑이 그의 뇌를 마구 들쑤신 탓에 지금 그의 의식은 엄청나게 자기 중심적이었다. 당연히, 저편 폭격을 당한 암흑의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을 곤경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우리 선원 하나가 나침반을 훔치려는 걸 막았을 때, 그 친구가 내게 뭐랬는줄 아니, 지그프리드?"

"아뇨."

*지그프리드는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키시지, 광대 양반!' 이러는 거야."

선장은 그렇게 말하고 웃고 또 웃었다.

"감히 해군 제독에게 그런 말버릇이라니. 지그프리드, 딸꾹, 누군가가 활대만 훔쳐 가지 않았으면 말야, 딸꾹, 난 그놈을 활대에 목매달아 죽였을 거야, 딸꾹, 새벽녘에 매다는 건대, 딸꾹, 어떤 놈이 새벽을 훔쳐 가지만 않았으면 말야."

딸꾹질 이야긴데, 오늘날의 사람들도 딸꾹질을 한다. 그놈의 딸꾹질은 오늘날에도 통제가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도 종종 사람들이 푸른 초호를 헤엄쳐 다니며 내는 딸꾹질 소리를, 그러니까 비자발적으로 성문(聲門)을 닫았다가 발작적으로 숨을 내쉬는 그 소리를 듣는다.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백만 년 전 사람들보다도 딱꾹질을 더 많이 한다. 이는 진화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아마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생선을 충분히 씹지 않고 삼킨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PEOPLE)

사람들은 뇌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예나 다름없이 웃음이 헤프다. 만약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해변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그 하나가 방귀를 뀐다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웃고 또 웃을 것이다. 백만 년 전 사람들이 꼭 그랬으리라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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