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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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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37>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선장이 말을 이었다.

“딸꾹, 내가 옳았어. 지그프리드, 딸꾹, 이제 실제로 증명되었다구. 내가 오래 전부터 말해 왔잖아. 언제고, 딸꾹, 커다란 운석들이 쏟아져 내릴 거라고 말야. 그게, 딸꾹, 현실로, 딸꾹, 나타난 거야.”

“폭파된 건 병원이었어요.”

*지그프리드가 말했다. 그에겐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폭파된 병원은 하나도 없었어.”

선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난간을 잡고 올라가 부두로 뛰어내리려 했다. *지그프리드는 아연실색했다. 사실 뛰어내리기에 그리 어려운 거리는 아니었다. 부두까지는 2미터 거리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선장은 몹시 취해 있었다.

선장은 성공적으로 비행했지만, 부두 바닥에 무릎을 찧었다. 그 바람에 딸꾹질이 가셨다.
“배에 누가 또 있어요?”

*지그프리드가 물었다.

“여긴 우리들 병아리 말고는 아무도 없어.”

선장이 대답했다.

그는 자신과 *지그프리드가 서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다들 아직도 바닥에 쭈그리고 있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지그프리드는 만다락스를 메리 헵번에게 맡겼다. 그녀가 히사코 히로구치와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경우를 위해서였다. 내 이미 말했듯이, 만다락스는 칸카보노어 통역자로는 쓸모가 없었다.

“그렇게 겁먹지 마, 동생. 우리야 수대에 걸친 생존자들의 후예잖아. 폰 클라이스트 가(家)의 사람에게 운석 소나기쯤이야 뭐 그리 대수겠어?”

선장이 떨고 있는 *지그프리드의 어깨 위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아돌프 형, 배를 부두에 더 가까이 댈 수 없어요?”

*지그프리드가 물었다. 그는 버스에 있는 사람들을 배에 태우면 그들이 좀 더 편안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배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그 작자들, 죽은 레온까지 훔쳐 간 것 같아.”
레온은 나였다.

“형, 저 버스 안에 열 명이 타고 있어요. 한 사람은 심장 발작을 일으켰구요.”

*지그프리드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보이지 않지?”

선장이 버스를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딸꾹질은 완전히 멎어 있었다.

“다들 겁에 질려 바닥에 쭈그리고 있어요. 형이 정신을 차려야 돼요. 난 그 사람들을 돌봐 줄 수 없다구요. 더 이상 행동이 통제되지 않아요, 형. 드디어 일이 벌어졌어요. 그놈의 병이 발병했다구요.”

시간의 흐름이 딱 멈추었다. 선장에게도 이건 친숙한 환영(幻影)이었다. 그는 1년에도 몇 번씩, 특히 우스개를 할 수 없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이제 발병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는 그 나쁜 소식을 부정하기 위해 시간이 다시 흘러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 그건 사실이 아니란 말이야.”

“형, 내가 지금 장난으로 춤을 추는 것 같애요?”

*지그프리드는 그렇게 말하고서, 원치 않는 춤을 추면서 형에게서 멀어져 갔다가 다시 원치 않는 춤을 추면서 선장에게 다가와 말했다.

“내 인생은 끝났어요. 이런 인생은 처음부터 없었어야 했다구요. 자식을 낳지 않은 게 다행이지, 어떤 불쌍한 여자가 또다시 나 같은 괴물 새끼를 낳는다고 생각해 봐요.”

“도움이 못 돼서 정말 미안하구나.”

선장이 비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거기다 꼭지까지 취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제기랄, 난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어. 아주 많이 취했다. 생각을 못하겠어. 지그프리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네가 말을 해봐.”

선장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있었다. 선장이 입을 떡 벌리고 눈을 휘둥그래 뜬 채 우두커니 서 있는 동안, *지그프리드는 춤이 멎는 짬짬이 메리 헵번과 히사코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이용하여 배의 고물을 부두에 바싹 끌어다 놓고, 다시 버스를 고물 밑에 갖다댔다. 버스를 사다리 삼아 배의 가장 낮은 갑판으로 올라가기 위해서였다. 달리는 배에 올라탈 방도가 없었다.

“그런 방도를 생각해 내다니, 그 사람들 참 영리하지 않소?”

“그게 다 커다란 뇌 덕분이 아니겠소?”

“뇌가 작았다면 그런 일은 생각조차 못했을 거 아니오?”

혹 이런 질문을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대답하건대, 사람들의 커다란 뇌가 빚어낸 발명품들과 활동들에 의해 지구가 사실상 거주 불가능한 곳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그프리드 등은 그렇게나 비상한 수완을 발휘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그런 난감한 곤경에도 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우리는 회전목마에서 잃은 것을 그네에서 벌충한다!
― 패트릭 찰머스(1872∼1942)

사람들은 제일 곤란한 일이 의식을 잃은 *제임스 웨이트 때문에 일어나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장 때문에 일어났다. 그는 너무 취한 나머지 사람들이 사슬을 이루어 배에 오를 때 그 인간 연쇄의 한 고리 역할을 할 수 없었고, 버스 뒷좌석에 앉아서 고작 자신이 취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딸꾹질이 다시 찾아왔다.

그들은 *제임스 웨이트를 어떻게 배에 태웠는가.

부두에는 고물 밧줄이 충분히 남아 있어서, 메리 헵번은 그것으로 들것을 만들 수 있었다. 이는 모두 그녀가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능숙한 등산가가 아니던가. 그들은 버스 옆에 펴둔 들것 위에 그를 눕혔다. 그런 다음 그녀와 히사코와 *지그프리드가 지붕에 올라가 그를 되도록 부드럽게 끌어올린 다음, 그를 난간 위로 넘겨 주갑판에 내려놓았다. 그는 나중에 다시 상갑판으로 옮겨지는데, 거기서 잠깐 의식을 회복한다. 그리고 잠깐이라곤 하지만, 그는 그 사이 메리 헵번의 남편이 되는 것이다.

*지그프리드는 다시 부두로 내려가 선장에게 어서 배에 올라타라고 재촉했다. 선장은 버스 지붕에 오르려 애쓰는 동안 남들의 놀림감이 될 줄 알고 있었으므로 미적미적 시간을 벌고 있었다. 취한 채로 뛰어내리기는 쉬웠다. 하지만 다소라도 복잡한 뭔가에 올라간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백만 년 전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때때로 자기 뇌의 주요한 부분을 일부러 마비시키려 했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참으로 흥미로운 수수께끼다. 아마 우리는 무의식 중에 조금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더 작은 뇌를 갖는 방향으로 진화하려고 애썼는지도 모른다.

한편 선장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채 시간을 질질 끌면서, 짐짓 사려 깊은 듯한 점잖은 목소리로 동생에게 말했다.

“그 사람 옮겨도 될 만큼 상태가 괜찮은 것 같지 않던데.”

*지그프리드는 더는 참지 못하고 버럭 역정을 냈다.

“참, 안되기도 했네요. 그 가엾은 사람을 아무렇게나 옮겨서요. 아마 헬리콥터라도 불러서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의 신혼 부부 침실에다 실어다 주어야 했겠죠.”

그러고는 “에잇!” “영차!” “어이쿠!” 같은 소리 외에는 그것이 폰 클라이스트 형제가 나누는 마지막 대화가 된다. 그런 소리는 선장이 버스 지붕에 오르려다 미끄러질 때마다 반복되었다.

그는 그러다 어찌어찌 해서 마침내 버스 지붕에 올랐다. 물론, 체면이 구겨지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버스 지붕에서 배까지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 혼자서 건너갈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지그프리드는 메리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에 올라가 *웨이트를, 그러니까 그들이 윌러드 플레밍으로 알고 있는 사람을 돌보라고 일렀다. 그가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혼자 힘으로 버스 지붕에 오르려는 것이라고 생각한 메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해서, 이제 부두엔 *지그프리드 혼자만 남아 다른 사람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도 배에 타리라고 생각했지만,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운전석에 앉았다. 사지가 이리저리 요동쳤지만, 엔진 시동을 걸었다. 다시 시내 쪽으로 차를 돌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어딘가에 충돌해 죽어 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는 버스 기어를 넣기 전에 또 한 번의 엄청난 폭발이 일으킨 충격파를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번 것은 시내 부근에서 터진 게 아니었다. 피폭 현장은 하류쪽, 사실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외곽의 늪지대 어디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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