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누구든 카자크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 연민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 그 녀석,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작곡할 재목은 아니었어."
제임스 웨이트의 죽음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아, 그 친구,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작곡할 재목은 아니었어."
얼마나 오래 살았든 우리가 살아 생전에 성취한 것이 십중팔구 하찮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는 이 삐딱한 말은 나의 창작이 아니다. 나는 이 말을 아직 살아 있을 적에 한 장례식에서 스웨덴어로 처음 들었다. 그 통과의례의 주인공인 시체는 페어 올라프 로젠퀴스트라는 아둔하고 평판 나쁜 조선소 현장감독의 것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아니 당시 젊다고들 생각한 나이에 죽었다. 제임스 웨이트처럼 결함이 있는 심장을 물려받았기 때문이었다. 백만 년 전 사람의 이름에 그다지 중요할 게 없겠지만, 나는 그 장례식에 히알마르 아르비드 보스트룀이라는 동료 용접공과 함께 참석했다. 교회를 나서면서 보스트룀이 내게 말했다. ꡒ아, 그 사람,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작곡할 재목은 아니었지.ꡓ
이 블랙 유머가 그의 창작인지 묻자, 그는 아니라면서 자기도 1차 세계대전 때 서부전선에서 시체 매장을 담당하는 독일군 장교였던 자기 할아버지한테서 들었노라고 했다. 그런 작업을 처음 하는 군인들이 한 구 한 구 시체 얼굴에 흙을 덮어가면서 죽은 군인이 그토록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더라면 무엇을 했을지 곰곰 따져보다가 철학적인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고참들은 그런 생각에 잠긴 신병에게 온갖 냉소적 언사를 내뱉었을 것이고. 이런 표현도 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봐, 신경 꺼! 그 친구,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작곡할 재목은 아니었잖아."
말뫼에서 나 역시 젊은 나이에 페어 올라프 로젠퀴스트의 무덤 옆에 묻혔을 때, 히알마르 아르비드 보스트룀은 공동묘지를 떠나면서 같은 소리를 했다. "아, 레온 녀석,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작곡할 재목은 아니었어."
폰 클라이스트 선장이 '윌러드 플레밍'의 죽음 앞에 눈물을 짜고 있는 메리에게 퉁짜놓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떠올랐다. 바다에 나온 지 겨우 스물네 시간밖에 되지 않았던 이 때까지 선장은 아직 그녀보다 윗사람이라는 기분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점에서는 사실 배에 탄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어떻게 배를 서향으로 유지할 것인지 설명하다 그녀에게 말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때문에 그렇게 울다니 시간낭비 아니오. 듣자 하니 친척도 없고 이렇다 할 일을 하던 사람도 아니던데, 그렇게 울 이유가 어디 있소?"
내가 육화되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사람,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작곡할 재목은 아니었어요."
선장이 말을 이었다. "이 배의 선장으로서 명령하는데, 앞으로는 울 일이 있을 때만 우시오. 지금은 울 일이 없소." 그는 자기 딴에 근사한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제 남편이었는 걸요. 저는 선장님이 주례를 서주신 아까 그 결혼식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선장님이 놀리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웨이트가 금방 화제 속에 되살아났다. 그런 의미에서는 아직 냉동고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 분은 이 세상에서 많은 일을 하신 분이고, 만약 우리가 그 분을 살려내기만 했던들 지금도 하실 일이 많을 거예요."
"그 사람이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겁니까?"
"그 분은 풍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석탄과 우라늄이 필요 없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풍차만 있으면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같은 더운 지방도 가장 시원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셨죠. 작곡가이시기도 했고요."
"정말이오?"
"그럼요. 교향곡을 두 편이나 쓰신 걸요."
웨이트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밤에 자기가 교향곡 두 편을 썼노라고 주장했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조금 전 논평했던 견지에서 부쩍 흥미가 돋았다. 메리는 캐나다 서스캐처원 주의 무스조에 가서 아직 한 번도 연주된 적이 없는 그 교향곡들을 찾아내 초연할 관현악단을 찾아볼 거라고 이어 말했다.
"윌러드는 정말 겸손한 분이셨어요."
"그런 것 같군요." 선장의 대꾸였다.
그로부터 백 하고도 여덟 시간이 지난 후, 선장은 이 겸손의 화신과 신뢰성을 놓고 경쟁하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메리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윌러드가 살아 있기만 하다면 금방 좋은 수를 생각해낼 텐데."
선장의 자존심은 완전히 구겨져 있었고, 이후로 30년을 더 사는 동안에도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만다. 얼마나 처절한 비극인가? 그는 메리의 조롱 앞에 무력했다. "나는 남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이오. 훌륭하신 윌러드라면 어찌 했을지 말씀만 해주시오. 내 기꺼이 그대로 시행하겠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두뇌를 파면시키고 오직 영혼의 이끌음에 따라 배를 이쪽으로 돌렸다 저쪽으로 돌렸다 갈팡대고 있었다. 손수건만한 섬만 보였어도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해는 정면에 있다가, 좌현에 있다가, 고물 쪽으로 갔다가, 우현으로 갔다가, 하다가 이제 또 지고 있었다.
아래쪽 갑판에선 셀레나 매킨토시가 개를 부르고 있었다. "카아자크! 카아아아자크! 누구 내 개 못 봤어요?"
"이 위엔 없어." 메리가 소리쳐 대답했다. 그러고는 윌러드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다가, 만다락스가 시계, 번역기 외에 무전기로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선장에게 만다락스로 구조요청을 해보라고 권했다.
선장은 그 기계가 만다락스인 줄 몰랐다. 고쿠비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고쿠비라면 커프스 단추와 와이셔츠 단추, 그리고 손목시계 몇 개와 함께 키토의 그의 집 서랍에 들어 있었다. 동생이 저번 크리스마스 때 준 것인데 그에게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또 하나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고쿠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면 무전기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였다.
선장은 그 고쿠비 비슷하게 생긴 물건을 한 손에 올려놓고 메리에게 말했다. "이 고물덩이가 무전기 노릇을 한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도 좋소. 내 장담하리다. 윌러드 플레밍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이런 고쿠비를 가지고 통신을 할 수는 없을 거요."
"이 지경에 와서도 무슨 일에든 그토록 자신만만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군요."
"저도 방금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럼 SOS를 쳐보세요.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요?"
"밑져야 본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플레밍 여사. 밑져봐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그는 만다락스의 내장 마이크에 대고 백만 년 전 곤경에 처한 선박이 쓰던 국제공용어를 말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그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어떤 대답이든 메리와 함께 볼 수 있도록 만다락스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만다락스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관한 수많은 명언을 알고 있는, 고쿠비에는 없는 지성 기능이 켜져 있었다. 메이, 즉 5월달도 만다락스가 자신있는 주제의 하나였다. 작은 스크린에 다음과 같은 알쏭달쏭한 문구가 떠올랐다.
타락한 5월에는 층층나무와 밤나무, 꽃피는 유다나무
속삭임들 가운데서
먹고 나누고 마실 ……
― T. S. 엘리엇(1888-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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