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갈라파고스<45>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갈라파고스<45>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선장과 메리는 일순 외부세계와 연결이 되었다고 착각했다. SOS에 대한 응답이 그렇게 빠를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문학적일 수도 없었을 텐데도.

그리하여 선장이 다시 외쳤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여기는 바이아 데 다윈 호, 위치 확인 불가. 들리는가?"

그 말에 만다락스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쩌면 내년 5월은 쾌청할지 몰라.
아아, 그러나 그때 우린 스물넷일 것을.
― A. E. 하우스만(1859∼1936)

5월을 뜻하는 "메이"란 말이 이런 빼어난 구절들을 띄워 올리라는 신호로 작용하고 있는 게 이제 분명했다. 선장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아직도 자기가 들고 있는 컴퓨터가 고쿠비이며, 집에 있는 것보다 성능이 조금 향상된 것이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얼마나 아는 것이 없었던 것인가! 5월이라는 말에 반응이 오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챘다. 그래서 이번에는 ꡐ6월ꡑ이라고 외쳐보았다.

만다락스가 응하여 가라사대,

6월이 사방에 만발하네.
― 오스카 해머슈타인 2세(1895∼1960)

"10월! 10월!" 선장이 소리쳤다.

만다락스가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늘 그것은 잿빛으로 수수하고,
잎들 그것들은 뻣뻣하게 말랐다 ……
잎들 그것들은 파삭파삭 말랐다.
먼 먼 옛날 어느 해
쓸쓸한 시월의 밤이었다.
― 에드가 앨런 포(1809∼1849)

선장이 아직도 고쿠비로만 믿고 있던 만다락스의 볼일은 그렇게 끝났다. 메리가 망대에 다시 올라가 뭔가 보이나 살펴보겠다고 했다.

메리는 망대에 올라가기 전에 선장에게 가시 돋친 말을 한 마디 더 했다.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제일 먼저 눈에 띌 만한 섬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 한 것이다. 선장이 항해 세 번째 날 하루 온종일 한 일이었다. 수평선 바로 너머 어떤 섬이 있다고, 금방 나타날 거라고 섬들의 이름을 그는 끊임없이 주워섬겼다. 메리에게는 이렇게 명령하기도 했다. "산 크리토발이 언제 나타날지 잘 살펴보시오. 우리가 남쪽으로 많이 벗어나 있으면 헤노베사가 나올지도 모르지.ꡓ 얼마 후에는 이렇게 장담했다. "아! 여기가 어딘지 인제 알겠소. 곧 후드 섬이 보일 거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새인 물결무늬신천옹이 서식하는 유일한 섬이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인데, 녀석들은 오늘날에도 생존해 있고, 지금도 후드 섬에 서식한다. 날개를 펴면 길이가 2미터나 되는데, 늘 그랬던 대로 여전히 비행의 꿈을 잃지 않고 있다. 녀석들은 오늘날에도 그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선장은 다섯째 날이 다 끝나 가는 지금 메리의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 메리가 재차 묻자 이렇게 응수한 것이 고작이었다. "아라라트 산(홍수가 빠진 후 노아의 방주가 머문 산: 역자 주)이오."

ㆍ ㆍ ㆍ

망대에 올라간 메리는, 내가 아주 기이한 기상현상으로 착각한 뭔가가 배의 고물 바로 위쪽에서 시작해 배의 항적을 따라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지 않았다. 나는 메리의 무신경함에 놀랐다. 그 현상은 전기적 성질을 띠고 있는 것 같았고, 아무 소리도 내진 않았지만, 어쩌면 구전(球電)이나 성 엘모의 불(항해 중에 돛대 끝에 나타나는 불로, 강력한 전기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과거 선원들은 흉조로 여겼는데, "세인트 엘모"라는 이름은 밤마다 촛불을 들고 마을을 헤매고 다녔다는 프랑스의 엘모 신부에게서 따온 것: 역자 주)처럼 보였다.

이 전직 여교사는 그쪽을 빤히 바라보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여기는 낌새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그것이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바로 내세로 통하는 푸른색 터널이었다. 그것이 다시 나를 뒤쫓아 왔던 것이다.

나는 전에 세 번 그것을 보았다. 처음엔 내 목이 날아가던 순간에 보았고, 다음에는 축축한 스웨덴 진흙이 내 관 위에 쿵쿵 떨어지고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쓸 재목은 못 되었던 히알마르 아르비드 보스트룀 녀석이 나를 두고 ꡒ아, 그 친구, 어차피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쓸 재목은 아니었어.ꡓ라고 말하던 말뫼의 공동묘지에서 보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북대서양에서 폭풍을 만난 배의 망대 위에서 진눈깨비와 물보라 속에 잘려나간 내 머리통을 마치 농구공처럼 받쳐들고 서 있던 때였다.

푸른색 터널이 나타남으로써 제기되는 질문은 오직 나만이 대답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인생이 무엇이냐 하는 숙제를 다 풀었는가? 그렇다면 내게는 그 ꡐ진공청소기ꡑ처럼 보이는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일만 남는다. 바이아 데 다윈 호의 전기 스토브와 오븐이 내는 것과 비슷한 빛으로 가득 찬 그 푸른색 터널의 내부에 정말로 흡입력이 작용하고 있다 해도 돌아가신 내 아버지 SF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는 그 흡입력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분은 터널 입구에 버티고 서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능력을 가진 분이었다.

ㆍ ㆍ ㆍ

아버지는 바이아 데 다윈 호 고물 위에서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얘야, 바보들 배는 그만하면 실컷 타지 않았니? 이젠 애비에게 오너라. 이번에도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백만 년 내에는 나를 다시 보지 못할 거다."

백만 년이라셨다! 세상에, 1백만 년이라니! 그런데 아버진 농담을 하고 계신 게 아니었다. 좋은 아버지는 결코 아니었지만 하신 약속은 꼭 지켰고, 내게 일부러 거짓말을 하신 적도 없었다.

나는 그분 쪽으로 한 발짝 내디뎠다. 그러나 두 번째 걸음은 내딛지 않았다. 마치 구애춤을 시작한 푸른발부비새 암컷이 된 것 같았다. 그 새의 구애춤과 마찬가지로 나의 애매한 첫 걸음은 시계가 째깍 하고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영원히 움직임을 계속하게 되는 것처럼 불가항력적인 흐름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터널 입구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나는 벌써 변하기 시작했다. 엔진의 진동이 희미해지고, 상갑판의 철판이 투명해져서 아래층 일등 객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객실에서는 칸카보노 여자애들이 죄 없는 카자크의 뼈다귀를 핥고 있었다.

아버지 쪽으로 첫 걸음을 내딛자 그 인디오 아이들, 내 등 뒤 망대 위의 메리, 화장실에 있던 히사코 히로구치와 그 뱃속의 아이, 브리지에 있던 풀죽은 선장과 눈먼 셀레나에 대해, 그리고 냉동고 속의 시신에 대해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내가 이 낯선 사람들에게, 이 두려움과 굶주림의 노예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지? 이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ㆍ ㆍ ㆍ

내가 아버지 쪽으로 다음 발걸음을 떼지 못하자 그분이 다시 말씀했다. "레온, 어서 오너라. 머뭇거릴 때가 아니야."

"하지만 제 궁금증이 다 풀리지 않았는걸요." 나는 우겼다. 내가 유령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그들의 과거에 대한 진실을 알아낼 수도 있으며, 벽을 투시할 수도 있고,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으며, 이러저러한 상황이 그 같은 구조로 짜여지게 된 깊은 내력도 알 수 있고, 인간의 모든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유령의 부수적 특혜 때문이었다. "아버지, 5년만 더 주세요."

"5년이라고!" 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러더니 과거의 내 행실을 들먹였다. "넌 언제나 그랬지. '딱 하루만 더요, 아빠' '딱 한 달만 더요, 아버지' '딱 반 년만 더요, 아버지'"

"하지만 전 인생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인생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생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구요!"

"내게 거짓말 마라. 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하던?"

"아뇨, 아버지."

"그렇다면 나한테도 거짓말 마라."

"이젠 신이 되셨나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네 아버지일 뿐이다. 하지만 레온, 내게 거짓말은 하지 마라. 네가 아무리 엿듣고 다녀봐야 모을 수 있는 것이 정보밖에 무엇이 있더냐. 차라리 야구 카드나 병마개 같은 걸 모으는 게 낫지. 정보만 아무리 모은다고 해서 무얼 깨달을 수 있겠니? 네가 만다락스 하고 다른 게 뭐냐?."

"딱 5년만요, 예? 아빠? 아버님?" 나는 계속 졸랐다.

"네가 알기 바라는 걸 알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레온, 내 말 잘 들어라. 지금 네가 날 그냥 보내버리면, 백만 년 동안은 다시 오지 않는다."아버지 말씀은 간곡하게 이어졌다.

"레온! 레온!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야. 너희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자들이 너를 그 끝도 없고, 인정도 없고, 참혹한 데다가 의미도 없는 전쟁터에 보냈잖니? 그 경험만으로도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서는 더 궁금한 게 없이 깨달았을 거다.

그래, 네가 그렇게도 궁금증을 느끼는 그 대단하다는 동물들이 바로 이 순간에도 한결같이 의기양양해 하고 있지 않니? 대량학살 무기로 서로를 겨눈 채 말이다. 그 얼간이 같은 꼴이라니. 한때 그토록 아름답고 풍요롭던 이 행성이 이제는 해부실에 들어온 불쌍한 로이 헵번의 썩은 몸뚱어리 꼴이 되어 있지 않느냐? 네가 그토록 애틋해 하는 인간들의 도시는 또 어떻고? 오로지 성장을 위한 성장에 함몰되어 모든 자원을 낭비하고 오염시키는 그 꼬락서니가 꼭 암세포를 닮지 않았더냐?

그 대단하다는 동물들은 이제 자기네 손자들의 생존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 다음 세기에 가서도 먹고 즐길 것이 남아 있다면 그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겠느냐? 얘야, 인류는 이제 이 저주받은 배에 탄 사람들이나 다름없어. 지도자란 것들이 한결같이 해도도 나침반도 없이 그저 사사건건 자존심이나 앞세우며 배를 몰아가는 이 배 선장 같으니 말이다."

ㆍ ㆍ ㆍ

살아 생전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살아 생전과 마찬가지로 그분은 핏기 없이 여윈 모습이었다. 살아 생전과 마찬가지로 그분은 담배를 물고 있었다. 내가 그분 쪽으로 한 발짝 더 내딛기가 어려웠던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내가 그분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정말 창피스러워서 열여섯에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만약 푸른색 터널 입구에 아버지 대신 천사가 있었다면 나는 곧장 그 속으로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제임스 웨이트는 끊임없이 가해지는 신체적 고통을 피해 집에서 도망쳤다. 그는 분만실로부터 곧장 스페인의 종교재판소로 끌려간 것과 똑같은 신세였다. 양부모가 그를 위해 고안한 고문기법 중에는 온갖 절묘한 것이 다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내게 화를 내서 손찌검을 한 적이 없는 친아버지에게서 도망쳤다.

그러나 내가 아직 어려 철없던 시절에 나를 공모자로 만들어 어머니를 영원히 쫓아낸 것이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여행이라도 가자고 하거나, 친구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하려 하거나, 가끔 영화관이나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조롱하는 데 나를 끌어들였다. 나는 아버지 편이었다. 나는 그때 그분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인 줄만 알았다. 내가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것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우리에겐 친구가 없었고,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초라했고, 텔레비전이나 자동차를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내 어찌 어머니에 맞서 아버지를 편들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 스스로 한 번도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내세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철없던 내 눈에는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글을 쓰는 외의 아무 일도 돌아보지 않는 그분의 집중력 속에 위대성이 감추어져 있는 줄 알았다. 문자 그대로 한 순간도 끊임없는 담배 피우기와 글쓰기였다.

아, 내가 자랑할 만한 게 딱 하나 더 있었다. 아버지가 해병대 출신이라는 사실. 그것은 코호스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열여섯이 되자, 어머니와 이웃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에 도달해 있던 결론에 나도 이르렀다. 아버지가 한심스러운 실패자이며, 그분의 작품은 고료도 거의 없는 별 볼일 없는 잡지에나 실린다는 사실이었다. 한 순간도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고 글을 쓰는 외에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는 아버지가 삶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그때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는 그때 학교에서 미술 외의 전 과목에서 낙제를 하고 있었다. 코호스 고등학교에서는 미술에서 낙제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찾아 집을 나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ㆍ ㆍ ㆍ

아버지는 1백 권이 넘는 책을 내고 1천 편에 이르는 단편을 발표했지만, 그분 이름을 들어보았다는 사람은 가출 후 딱 한 사람 만났을 뿐이다. 세상에 아버지 이름을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그때 나는 정신이 몽롱해져 잠시 넋이 나갔던 것 같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엽서 한 장 띄우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신이 죽고 나서야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고, 당신은 내세로 통하는 푸른색 터널 입구에서 처음으로 내게 나타나셨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실 만한 한 가지 일에서는 그분의 뒤를 따랐다. 나도 해병대에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집안의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 맙소사, 나도 글쓰는 사람이 되어 아버지처럼 써대고 있지 않은가! 읽어줄 사람이 한 사람 있을 것 같은 낌새조차 없는데도. 내 글을 읽을 독자라니, 한 사람도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알아주는 이가 있든 없든, 없는 편인 것 같지만,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점에서 우리 부자는 둘 다 푸른발부비새를 닮은 모양이다.

ㆍ ㆍ ㆍ

그때 아버지가 푸른색 터널 입구에서 내게 말씀하셨다. "넌 꼭 네 엄마 같구나."

"어떤 점이요?"

"네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명언이 뭔 줄 아니?"

물론 알고 있었다. 만다락스도 알고 있는 말이었다. 그것은 이 책의 제사(題詞)이기도 하다.

ㆍ ㆍ ㆍ

"넌 인간이 선한 동물이라고 믿지? 따라서 결국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이 세상을 다시 에덴 동산으로 만들 거라고 말이다."

느닷없는 어머니 이야기에 내가 물었다. ꡒ어머닐 좀 뵐 수 없을까요?ꡓ 나는 그분이 터널 저편 어딘가에 계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돌아가셨으니까. 죽은 뒤 아버지를 보자마자 나는 물었었다. ꡒ어머니 어디 계신지 아세요?ꡓ 해병대에 입대하기 전, 나는 어머니를 찾으러 안 가본 데가 없이 돌아다녔었다.

"아버지 바로 뒤에 계신 분이 어머니 아니세요?" 내가 물었다. 푸른색 터널은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이따금씩 내부 깊숙한 곳까지 보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세 번째 나타나셨던 그 때 그 안쪽에 한 여인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여인이 어머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 같은 놈한테 그런 행운이 있을 리 없었다.

"난 타프 아줌마야." 여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어머니가 떠나고 나서 한동안 내 어머니 노릇을 해주려 애를 많이 썼던 이웃집 여자였다.

그녀가 다시 외쳤다. "레온, 난 나오미 타프야. 기억하지? 우리 집 부엌에 걸어 들어오곤 하던 대로 이리 들어오렴. 자, 어서! 설마 백만 년을 더 혼자 지내고 싶은 건 아니겠지?"

나는 한 걸음 더 터널 쪽으로 내디뎠다. 바이아 데 다윈 호는 기괴한 거미집처럼 변했고, 푸른색 터널은 날마다 나를 조선소에 실어다 주던 말뫼의 전차만큼이나 현실적이고도 확실한 교통수단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내 뒤편 망대 위에서 흐릿한 그림자로 변한 메리가 거듭거듭 외쳐대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에 휩싸인 듯한 소리였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격렬한 목소리는 복부에 총알을 맞았을 때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나는 메리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서 뒤로 두 발짝 물러난 다음 몸을 돌려 메리를 바라보았다. 메리는 울고 있었다. 메리는 웃고 있었다. 메리가 망대의 철통 바깥으로 몸을 구부렸으므로, 브리지의 선장에게 소리칠 때 메리의 머리는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야호, 육지예요, 육지! 하느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육지라고요, 육지. 이야호!"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