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헵번이 발견한 섬은 산타 로살리아였다. 선장이 즉시 그 쪽으로 배를 돌렸음은 물론이다.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기를, 아니 최소한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도 살고 있기를 바라면서.
남은 문제는 앞으로 어떤 일이 또 벌어질지 보기 위해 내가 계속 동행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배에 탄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지금 터널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명확한 것이었다. 1백만 년 동안 휴가 없이 세상을 계속 떠돌아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정은 메리 헵번, 그러니까 ‘플레밍 여사' 대신 해주었다. 망대에서 누리고 있는 그녀의 기쁨이 나의 시선을 너무 오래 붙잡아두는 바람에 내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터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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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1천 번의 1천 년이라는 복무기간을 다 마쳤다. 이 정도면 사회와 그 밖의 것들에 진 빚을 고스란히 다 갚았다. 이젠 언제라도 푸른색 터널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 터널로 아주 흔쾌히 뛰어들 것이다. 이제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내가 전에 수없이 보고 들었던 것들뿐이다. 분명 아무도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쓰진 않을 것이고, 거짓말을 할 사람도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사람도 없다.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 제아무리 어두운 시대라 해도 인간에겐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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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1일 월요일 오후, 선장 아돌프 폰 클라이스트는 닻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배를 일부러 해안의 화산암 암초에 좌초시켰다. 바이아 데 다윈 호가 다시 항해할 때가 되면 과야킬에서 그랬듯 그 암초에서 미끄러지듯 벗어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새알, 부비새, 이구아나, 펭귄, 가마우지, 게 등 먹을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것으로 식료품 저장실을 가득 채우는 대로 다시 떠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연료와 물은 넉넉히 있으니 식량만 충분히 확보되면 느긋하게 본토 쪽으로 돌아가 자기들을 받아줄 평화로운 항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그는 생각했다. 남미대륙을 재발견하는 셈이다.
선장은 충성스러운 쌍둥이 엔진을 껐다. 그것으로 엔진의 충성은 끝났다. 엔진은 다시 움직이지 않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선장이 끝내 확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스토브며 오븐이며 냉장실 등도 곧 작동이 중단될 것임을 의미했다. 배터리 수명이 다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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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갑판의 밧줄걸이에는 아직도 10미터 길이의 흰색 나일론 구명용 밧줄이 감겨 있었다. 선장이 그걸 풀어 여러 개의 매듭을 지었고, 메리와 함께 그걸 타고 암초로 내려가 해변을 돌아다니며 알을 모으고 사람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하등동물을 잡았다. 그들은 메리의 블라우스와 아직도 가격표가 달려 있는 제임스 웨이트의 셔츠를 식료품 바구니로 이용했다.
부비새는 목을 비틀었다. 육지이구아나는 꼬리를 붙잡아 검은 현무암 바위에 패대기쳐 죽였다. 겁 없는 흡혈 핀치가 찰과상을 입은 메리에게서 처음으로 인간의 피를 맛본 것은 이 학살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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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자들은 바다이구아나만은 손대지 않았다. 못 먹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짐승의 뱃속에서 부분적으로 소화된 해초가 모처럼의 맛좋은 더운 요리일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그들을 괴롭히던 비타민과 미네랄 결핍증의 치료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2년 후에야 알게 된다. 그것으로 인류의 새로운 식단이 완성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 이 수프를 소화하는 능력에 차이가 있었는데, 잘 소화하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하고 잘 생겼으며, 따라서 섹스 상대로 더 매력적이었다. 이렇게‘자연 선택의 법칙‘이 작용한 결과 1백만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바다이구아나의 도움 없이도 직접 해초를 소화할 수 있게 되어 바다이구아나를 괴롭히지 않게 되었으니 피차를 위해 잘 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물고기가 바닥나면 아직도 인간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부비새를 잡아먹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다시 1백만 년을 더 지내더라도 인간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부비새가 깨닫는 것은 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보라. 녀석들은 여전히 짝짓기 철만 되면 춤을 추고 또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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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바이아 데 다윈 호에서는 떡 벌어진 잔치가 벌어졌다. 그들은 상갑판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갑판바닥이 그대로 조리대였고 선장이 요리사였다. 육지이구아나는 게살과 저민 핀치 고기를 속에 채워 구웠다. 부비새는 제 알을 채워 넣고 펭귄 지방을 버터 대용으로 발라 구워냈다. 맛이 기막혔다. 모두들 기분이 좋아졌다.
이튿날 첫 햇살이 비치자 선장과 메리는 다시 상륙했는데, 이번에는 칸카보노 여자애들을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금방 상황을 파악했다. 그들은 새며 이구아나며 알이 냉장실에 가득 찰 때까지 죽이고 또 죽이고, 나르고 또 날랐다. 이제 연료와 물은 물론, 족히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그것도 아주 훌륭한 양식이 확보되었다.
이제 선장이 엔진에 시동을 거는 일만 남았다. 그는 배를 최고속력으로 똑바로 동쪽으로 몰아갈 것이었다. 눈을 감고 몰아도 아메리카 대륙을 벗어나지 않을 거라며 유머 감각이 되살아난 선장이 메리에게 말했다. “우리가 고르고 골라 파나마 운하로 빠져나가 버릴 만큼 운이 나쁘지만 않다면 대륙을 발견할 거요. 그리고 혹시 운하로 빠져나간다 해도 이내 유럽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선장 자신도 웃고, 메리도 웃었다. 모든 일이 결국은 순조롭게 풀려 가는 듯했다. 그런데 엔진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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