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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47>

김기협 위원의 SF기획 - 보네거트 작/박웅희 옮김

바이아 데 다윈 호가 1996년 9월 잠잠하기 짝이 없는 바다 속으로 미끄러지듯 잠겨들 무렵까지는, 선장만 빼고 모두들 그 배를 메리가 붙여준 ‘펄럭이는 커튼’이란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 경멸어린 이름은 메리가 만다락스에게 배운 노래에서 따온 것이었는데, 그 가사는 이랬다.

큰 바다를 달리는 멋진 배가 있었지.
그 이름이‘펄럭이는 커튼’이었다지.
아무리 세차고 사나운 바람이 불어와도
선원도 선장도 흔들림이 없었다지.
키륜 잡은 그 사내, 어떤 센 바람이 불어도
콧방귀를 뀌도록 가르침을 받았다지.
그래서 바람 걷힌 후 그 사내를 찾아 보면,
선실 침상에서 찾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지.
― 찰스 캐릴(1842∼1920)

히사코 히로구치와 그녀의 털북숭이 딸 아키코와 셀레나 매킨토시도 바이아 데 다윈 호를 ‘펄럭이는 커튼’이라 불렀고,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칸카보노 여자애들도 발음이 그럴싸해서 따라 불렀다. 그리고 칸카보노 여자애들은 훗날 자기네 아이들에게 자기들은 ‘펄럭이는 커튼’이라는 배를 타고 본토를 빠져나와 이곳에 왔노라고 가르칠 것이었다.

또한 영어와 일어뿐 아니라 칸카보노 말에도 유창하게 될, 칸카보노인이 아니면서 유일하게 칸카보노인들과 대화가 통하게 될 아키코도 ‘펄럭이는 커튼’란 말만은 칸카보노 말로 옮길 만족스런 방도를 결코 찾지 못하게 된다.

푸른 초호 곁 백사장에서 햇볕을 쪼이고 있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펄럭이는 커튼’라고 속삭여준다 해도 그 우스운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이 당시의 칸카보노인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ㆍ ㆍ ㆍ

메리가 인공수정에 착수한 것은 ‘펄럭이는 커튼’이 가라앉은 직후였다. 당시 나이는 쉰하나였다. 쉰여섯 살의 나이로 이젠 성적 충동도 그리 강하지 못한 선장의 유일한 섹스 상대가 메리였다. 선장은 여전히 헌팅턴 무도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재생산을 극력 회피하고 있었다. 그는 인종주의자이기도 했으므로 히사코에게도, 그녀의 털북숭이 딸에게도 전혀 끌리지 않았고, 결국 그의 자식들을 낳게 될 인디오 여자애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명심하시라. 이들은 언젠가는 구조되리라 생각하고 있었고, 자기들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섹스를 했던 것은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나 욕망을 달래기 위해서, 혹은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재생산이란 사실 너무 무책임한 행위였다. 산타 로살리아 섬은 아이들을 기를 곳이 못 되었고, 아이들이 생기면 식량 확보도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펄럭이는 커튼’이 에콰도르 해군의 잠수함의 뒤를 따라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메리도 이 점을 누구 못지 않게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아이가 태어나면 비극이 될 거라고.

메리의 영혼은 계속 그렇게 느끼고 있었으나, 메리의 커다란 뇌는 한가한 생각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한 달에 두 번 가량씩 선장이 그녀의 몸 안에 쏟아 넣는 정액을 어떻게 가임 여성에게 전달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해서 임신시킬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키코는 그때 겨우 열 살이어서 아직 배란할 나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열다섯에서 열아홉이 된 칸카보노 여자애들은 배란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ㆍ ㆍ ㆍ

메리의 커다란 뇌는 그녀가 학생들에게 늘 하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속삭였다. 제아무리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며 완전히 미친 것처럼 보이는 짓이라도, 머릿속에서만 굴려보는 것은 전혀 손해가 되지 않는 일일 뿐더러, 때에 따라서는 아주 유용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메리는 일리엄의 청소년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워 준 것처럼, 산타 로살리아 섬에서 자신의 용기를 북돋고 있었다. 지극히 하찮은 발상들을 가지고 하던 정신적 유희가 ‘현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통찰로 이어진 경우가 얼마나 많으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메리는 만다락스에게 호기심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만다락스 가라사대,

호기심은 원기 왕성한 정신의 영원하고도 확실한 특성이다.
― 새뮤얼 존슨(1709∼1784)

만다락스가 메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 그리고 메리의 커다란 뇌가 그녀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만약 메리가 실현 가능성이 있는 발상이라도 하게 되는 날엔, 메리가 실제로 그 실험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그녀의 뇌가 볶아대게 되리라는 사실이었다. 그 점이야말로 그 시절 커다란 뇌의 가장 악마적인 측면이었다. 뇌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미친 짓을 우리가 하려면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린 물론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어요. 그저 생각해 보는 게 재미있을 뿐이죠.”

그러나 사람들은 마치 몽유병자처럼 그런 짓들을 실제로 저지르곤 했다. 노예들을 콜로세움에서 서로 죽일 때까지 싸우게 하지를 않나, 별난 생각을 가졌다 해서 이단으로 몰아 광장에서 태워 죽이지를 않나, 사람을 떼거리로 죽이거나 도시를 깨부수기 위한 목적만으로 공장을 만들지를 않나, 별의별 짓을 다 하지 않았는가.

ㆍ ㆍ ㆍ

만다락스에게는 다음과 같은 경구(警句)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없었다. “이 커다란 뇌의 시대에는 저질러질 수 있는 짓은 무엇이나 저질러질 것이니, 조심하고 조심할지어다.”

만다락스가 아는 가장 비근한 명언은 이런 것이었다.

의문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
행동이 있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 토머스 칼라일(1795∼1881)


ㆍ ㆍ ㆍ

메리는 이런 절해고도에서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한 여자가 다른 여자에 의해 임신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행동에 옮기기에 이른다. 몽환 비슷한 상태에서 메리는 아키코를 통역으로 데리고 분화구 건너편 칸카보노 처녀들의 거주지를 찾았다.

불현듯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실 때가, 코호스에서 잉크 투성이로 가난하게 살고 계실 때가 생각난다. 그분은 늘 영화사에 뭔가를 팔 수 있길 바라셨다. 그렇게만 되면 귀찮은 일거리를 안 맡아도 되고 요리사나 가정부를 고용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사에 작품이 팔리기를 아무리 간절히 바라도 그분의 이야기들은 죄다 제일 결정적 장면이 틀려먹었다. 흥행을 고려할 때, 제 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그런 장면을 영화에 넣고 싶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 나도 그 결정적 장면이 백만 년 전의 대중영화에 결코 어울리지 않았을 이야기를 쓰고 있다. 메리 헵번이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자기 몸 안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열여덟 살 짜리 칸카보노 여자애 몸 안에 집어넣는 장면이었다. 임신을 시키려는 것이었다.

모든 칸카보노 십대 소녀들의 몸에 행사한 무분별하고 불가해하며 무책임하고 미치광이 같은 자신의 황당한 행동에 대해 메리는 나중에 우스개 하나를 떠올린 것이 있다. 하지만 그 우스개는 혼자만 간직하고 있어야 했다. 그것을 이해할 만한 유일한 정착자인 선장과는 이제 말도 건네지 않고 지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 우스운 생각을 말로 옮기면 이쯤 된다. “일리엄에서 선생 노릇을 할 때 이런 짓을 할 생각이 났더라면, 지금쯤 이 황량한 산타 로살리아 섬이 아니라 뉴욕의 아늑한 감방에 들어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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