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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의 십자군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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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의 십자군 이야기 <1>

***연재를 시작하며**

올해 초, 부산대 교지 <효원>에 싣기 위하여 "십자군 이야기"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을 때만 해도,이렇게까지 파렴치한 방식으로 전쟁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반전여론에 밀려 개전시기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가느다란 희망을 버리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막상 전쟁이 터지자, 전쟁을 원하지 않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저 역시 잠도 오지 않고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보고 싶은 기대와 보고 싶지 않은 절망이 뒤섞여 24시간 내내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분노와 두려움, 배신감에 시달렸습니다. 정의가 무시당하는 끔직한 역사의 목격자가 된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렇게 분노하고 이렇게 슬픈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

옆에서 방관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데, 당사자들의 상처는 어떠할지, 생각하기조차 스스로 죄스럽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100년이 가고 200년이 간다해도, 그 서슬푸른 원한이 사라지겠습니까? 평화가 깃들 수 있겠습니까?

이제 2003년 4월, 침공은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전쟁이 끝나는 마당에,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리라 마음이 놓이기는커녕, 저는 불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강대국이 원한다는 바로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앞으로 누가 전쟁중독자들을 견제할 것이며, 끝없는 이익을 추구하는 군산복합체들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기원후 1100년 쯤의 사람들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력을 과시하며 달려온 1차 십자군의 기사를 바라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리고 그 상처는 지금도 낫지 않았습니다. 아민 말루프는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란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습니다 : "아랍세계는 십자군 전쟁을 먼 옛날에 벌어진 단순한 에피소드로만은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아랍인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부당한 침범을 느끼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만화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힘과 돈을 거머쥔 자들은, 조직화된 거대한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탓에, 우리에게 공포와 절망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으려하면 언제라도 우리에게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면 협박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들이 명분없는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우리는 반대할 권리가 없다고 겁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그들의 힘은 허깨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은 결국 우리입니다. 스스로의 힘을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위협에 주눅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불의는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상이 찾아올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 모든 것이 희미한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어떤 똑똑한 사람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 자는 그 역사를 되풀이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하더라도, 과거와 현재의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비참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적은 망각이고, 우리의 무기는 기억입니다. 가장 큰 절망을 기억하는 것에서, 가장 큰 희망이 솟아날 것입니다. 십자군의 역사에 대해 엄밀한 역사적 연구 성과를 드리기보다는, 오늘날의 비참함을 기억하기 위해서 이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 연재하는 "십자군 이야기"는 <효원>에 실었던 20쪽 짜리 만화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기고된 원고를 보신 분들의 권유로, 이번에 장편으로 다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만화를 통해 우리가 지금의 분노를 잊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그리하여 그 분노가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03년 4월 11일. 김태.

이 만화는 http://kimtae.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 약력
1974년 서울 생.
1998-1999넌 사회과학 서평지 <그날에서 책읽기>에 만화 연재.
1999-현재 <노동자의 힘>과 <효원>, <이화>, <고대문화>, <중앙문화> 등 여러 대학 교지에 만화 연재. <대학생신문>에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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