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유엔 총회 연설에 나설 네타냐후는 이란이 북한식의 속임수를 쓸 것이라며 미국과 이란 사이의 핵협상 재개 움직임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9월 23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네타냐후의 한 측근은 "나쁜 합의는 아예 합의하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며 그 근거로 북한의 사례를 제시했다.
| ▲ 지난 15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만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이란이 '북한식 패턴' 답습?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이란으로 하여금 북한식의 계책을 되풀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이란도 북한처럼 "제재를 완화하고 핵 프로그램이 시간을 벌기 위해" 대화를 이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네타냐후는 다음 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핵 협상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이란과의 핵협상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할 예정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또한 네타냐후는 협상의 조건으로 대단히 까다로운 리스트를 제시할 예정이다. 이란이 모든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해야 하고, 모든 농축 우라늄을 이란 영토 밖으로 내보내야 하며, 쿰 인근에 건설된 핵 시설과 나탄즈에 건설한 중수로를 폐기하고 아라크의 중수로 건설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이스라엘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란이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북한까지 들먹이면서 이란과의 핵협상 움직임에 재를 뿌리려 하자 오바마 행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란이 적극적으로 내민 손을 뿌리치기도, 그렇다고 이스라엘의 입장을 무시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네타냐후가 언급한 '북한식 패턴'의 저작권자는 오바마 행정부라는 점도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네타냐후가 유엔 연설을 통해 북한의 사례를 들먹이면서 이란 핵협상에 제동을 걸려고 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과 북한은 다르다'는 해명을 내놓아야 할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러한 예고편은 이미 나오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해 뉴욕으로 가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23일 기자 간담회를 가진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한 기자로부터 "네타냐후는 이란과 북한을 비교하고 있는데, 당신은 합당한 비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로즈는 "두 나라 모두 국제 비확산 규범을 준수하지 않아왔다"고 전제하고는 이렇게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2006년부터 핵실험도 했다. 반면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차이야말로 우리가 이란의 핵무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이유이다. 우리가 이미 핵보유 문턱을 넘어선 나라의 비핵화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북한에 해당한다면, 그러한 형태가 (이란에게도)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우리는 제재에 몰두해왔고, 또한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협상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며, 그 목표는 "비확산 의무와 부합하는 평화적 핵 이용 권리는 허용하면서 핵무기 개발은 방지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정리하자면 핵보유 문턱을 이미 넘어선 북한과 그 문턱 앞에 있는 이란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북한식 패턴'의 제 발등 찍기
그러나 네타냐후가 이러한 설명에 수긍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 단계가 다르다"는 '현재 시점의 결과'를 강조하면서 이란과의 핵협상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반면 네타냐후는 '미국이 20년간 북한과 협상했지만 북한의 핵무장을 막지 못하지 않았느냐'며 '이란의 속셈은 북한처럼 협상하는 척 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낮추고 핵무기 개발의 시간을 벌려고 하는 데 있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이란으로 하여금 북한의 전철을 밟지 못하게 하려면 협상이 아니라, 무력 제재와 같은 고강도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북한과 이란을 비교하면서 '협상 유용론'과 '협상 무용론'이라는 동상이몽에 빠져 있는 오바마와 네타냐후의 향후 논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기피하기 위해 '북한식 패턴'을 강조하고 '전략적 인내'라는 무위(無爲)의 대북정책을 고수하면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핵능력이 강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과의 핵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과의 핵협상에 돌입하면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다. 협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전용을 차단하면서도 평화적인 핵 이용 권리를 인정하고 경제제재의 완화·해제 조치를 밟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타협에 대해 네타냐후는 '그게 바로 북한식 패턴'이라고 강하게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란에 평화적 핵 이용 권리와 프로그램을 허용하면 북한처럼 언제든 핵무기용으로 전환할 것이라면서 말이다.
반면 오바마가 네타냐후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해 이란의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제약하려고 하면 할수록 협상의 성공 가능성은 낮아진다. 만약 협상이 실패하면, 초강경 경제제재나 무력 사용을 주장하는 이스라엘 및 미국 내 강경파의 발호는 더욱 심각해지고 이는 이란의 로하니 정권을 궁지로 몰아넣고 이란 내 강경파의 재부상으로 이어지고 말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핵협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북한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졌으니 협상에 소극적이고 이란은 아직 안 가졌으니 협상에 나서려는 태도는 네타냐후를 비롯한 대이란 강경파들에게 더없이 좋은 프로파간다의 소재를 제공하게 된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도 병행해 북핵 해결의 전기를 만들어내면, 북한을 이용한 정치적 공세의 설 자리는 좁아지게 된다. 특히 대북 협상을 통해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시키면 이란의 NPT 탈퇴를 예방할 수 있는 유력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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