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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강한 영화

[김이석의 올드 & 뉴]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

1999년 칸영화제 시상식장. 심사위원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황금종려상 수상자를 호명하자 시상식장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수상작은 장-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 세계 영화계에 낯선 이름인 다르덴 형제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999년의 칸은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인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를 그 해의 최고 작품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다르덴 형제는 2005년 <더 차일드>로 다시 한번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이마무라 쇼헤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등과 함께 황금종려상을 두 번 수상한 감독으로 기록된다. <로제타>의 수상은 당시에는 일종의 스캔들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몇 년간 칸영화제는 잇달아 <로제타>와 같은 작은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안겨주었다. 2000년 수상작 <어둠 속의 댄서>(라스 폰 트리에 감독)는 디지털 캠코더로 촬영된 영화였으며, 2001년 수상작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아웃사이더 감독인 난니 모레티의 <아들의 방>이었다. 2003년 수상작 <엘리펀트> 또한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한 HD영화였으며, 2004년에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된다. 로만 폴란스키의 <더 피아니스트>(2002)를 제외하면 최근 몇 년간 황금종려상의 주인공들은 모두 미니멀한 사이즈의 영화들이었다. 흥행성을 겨냥한 영화제측의 의도를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칸의 선택은 일종의 영화적 도발이 아닐 수 없다.
(左)더 차일드, (右)엘리펀트 ⓒ프레시안무비
. 현실과 허구적 상상력의 결합 위에서 언급한 수상작들 중에서도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극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는 서유럽에서 횡행하는 유아밀거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며,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는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두 작품 모두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의 이면들을 폭넓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 역시 공통적인 특징이다. <더 차일드>의 주인공 부랑아 브뤼노는 소니아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얻지만 그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소니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브뤼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궁핍한 처지를 면하기 위해 그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아이를 내다팔고, 소니아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고통스러워하는 소니아의 모습에서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브뤼노는 다시 아이를 찾아오고 그녀의 발 밑에 엎드려 용서를 빈다. 이 영화에서 유아밀거래는 대단히 중요한 모티브이지만, 다르덴 형제의 관심은 그 현상을 넘어 이면으로 향한다. 유아를 내다파는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아이를 내다파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다르덴 형제는 끊임없이 질문을 되풀이하면서 그 대답을 우리에게 묻는다.
더 차일드 ⓒ프레시안무비
<엘리펀트>에서 구스 반 산트는 컬럼바인 총기난사사건을 그 사건에 관계된 몇몇 학생들의 시점을 빌려 마치 기록영화를 찍듯이 촬영하였다. 영화를 통해 재현되는 풍경은 잠시 후에 벌어질 학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심지어 평화롭기까지 하다. 영화 속에서 학생들은 실제 그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눈다. 어디에도 학살의 기운은 없다. 구스 반 산트는 이 마지막 평화의 순간을 다양한 시점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연한다. 무차별적인 총격이 이 평화를 깨뜨릴 때까지 영화는 시점의 변화와 느린 화면, 그리고 롱테이크를 통해 일상의 시간을 중첩시킨다. 이처럼 최후의 순간을 최대한 유보시킴으로써 이 영화는 히치콕의 영화와 같은 서스펜스를 발생시키게 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극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영화의 현실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또한 실제 사건의 토대 위에 덧붙여진 허구적 요소들은 영화의 시제를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거둔다. . 영화적으로 거리두기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클로즈업의 영화'라면 구스 반 산트의 영화는 '롱쇼트의 영화'다. 다르덴 형제는 그들의 인물과 사건에 최대한 밀접하게 다가서고자 한다. 그들의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영화 속 인물과 대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며, 인물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카메라는 그들과 동행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 느낌은 친밀감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친밀감을 느끼기에는 그 인물들은 너무나 낯설기 때문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가진 힘은 이 낯선 존재들을 외면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들의 영화 속에서 관객과 인물은 동일한 시공간을 살고 경험하게 된다.
엘리펀트 ⓒ프레시안무비
<로제타>에서 주인공 로제타의 상기된 얼굴의 클로즈업, <더 차일드>에서 브뤼노의 당혹스런 표정의 클로즈업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관객과 인물 사이의 상상적 거리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사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반면,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는 관찰자로서 거리를 철저히 유지한다. 구스 반 산트의 카메라 역시 인물들의 사소한 일상들을 세밀하게 추적하지만 그의 카메라와 인물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한다. 이 거리는 감독과 관객 사이에도 존재한다. 철저한 관찰자로 남기를 선택한 구스 반 산트는 관객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이 잔혹한 학살을 다루면서 아무런 입장도 관객들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같은 소재를 선택한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컬럼바인>이 감독의 목소리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반면 구스 반 산트는 철저히 자기 목소리를 감추고 침묵한다. 그리고 마치 현장에서 기록한 폐쇄회로 화면처럼 일체의 주관적 개입을 배제한 채 중립적인 재연만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이런 거리두기를 통해 구스 반 산트는 자신의 영화를 관객들의 관음적 욕망으로부터 지켜낸다. 이 롱쇼트의 시점 덕분에 <엘리펀트>의 총기난사사건은 영화적인 구경거리로 전락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차일드>의 클로즈업의 효과 역시 유사하다. 다르덴 형제는 클로즈업을 통해 소외된 인간들이 스크린 위에서 타자화된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이 두 영화가 선택한 영화적 거리는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르덴 형제와 구스 반 산트의 영화는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하는 등 제작방식에서부터 기존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영화이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외형적으로는 아주 작은 영화이지만 기존의 어떤 영화들도 다다르지 못했던 지점으로 관객들을 인도하는 크고 강한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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