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미코의 집'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산다. 도쿄의 전설적인 게이바의 운영자이던 히미코가 운영하는 양로원 '메종 드 히미코'에 모인 사람들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게이 노인들이다. 그들은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온 소수자로서의 박탈감과 어느 날 갑자기 엄습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공동체적 삶을 통해 위로받고자 한다. '아키라의 집'에도 특별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키라와 교코, 유키, 시게루. 집주인의 눈을 피하기 위해 여행가방에 실려 도쿄의 아파트로 이사 온 이 네 남매는 어느 날 불쑥 집을 나가버린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좁은 아파트에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살아간다. 이누도 잇신의 <메종 드 히미코>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는 이렇게 세상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게이라는 사실 때문에 가족까지 버려야했던 게이 노인들의 안식처 '메종 드 히미코'는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바닷가에 위치해있다. 비록 이곳에도 그들을 꺼리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자신을 닮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에 이들은 그 생활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열두 살 소년가장 '아키라의 집'은 '히미코의 집'과는 달리 도시에 있다. 이웃들의 시선마저 피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처지인 이 남매들의 아파트는 대도시 한가운데에 섬처럼 존재한다. 비록 이 어린 남매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사실마저도 감추어야하는 불행한 신세지만, 아키라와 동생들은 언젠가는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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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 ⓒ프레시안무비 |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도 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는 장애인 조제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바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은 '하나의 집이 있고 거기에 특이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설정에서 출발하는 자신의 영화가 결국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화가 '지금의 일본이 포기한 부분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한다. 과연 이누도 잇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 노인, 게이 등의 인물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자들이지만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도 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받아온 존재들이다.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의 흔적을 남기는 것마저 금지되었던 남매들의 이야기를 다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역시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의 소재가 된 실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을 당시 일본 사회는 아이들을 버린 부모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판결자의 입장에서 부모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부채의식을 털어버리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했던 아이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 아이들에게도 틀림없이 나름대로의 즐거움과 서로를 지탱하는 힘, 살아가려는 힘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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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왼쪽), 아무도 모른다(오른쪽) ⓒ프레시안무비 |
고레에다에 의해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재구성된 아이들의 삶은 우리의 생각처럼 비참하고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내일이면 엄마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무심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알게 된 그 비참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즐거움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런 시간들을 흘려보내게 된다. 이 영화가 특히 가슴 아픈 것은 아이들의 불행이 어느 날 벼락처럼 닥쳐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키가 목숨을 잃고, 아이들이 엄마가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시간은 더디게 더디게 흘러가면서 아이들의 생명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다. 이누도 잇신과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렇게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우리와 연결시킨다. 츠네오가 조제의 낡은 방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오리가 자신을 버린 아버지 히미코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리고 커다란 여행가방 속에서 교코와 유키와 시게루가 마술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와 무관했던, 혹은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쳤던 이 특별한 운명의 사람들이 우리와 연결된다. 우리는 그들의 특별한 삶의 목격자가 되어 그들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그 특별한 존재들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 영화에 대한 진지함을 가진 이누도 잇신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셈 페킨파와 로베르 브레송, 장 르느와르의 영화에 심취했던 영화광 출신 이누도 잇신 감독은 광고계에서 일하다가 서른이 넘어서야 자신이 사랑하던 영화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2003년 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감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진 이누도 잇신은 이후 <마리모>, <메종 드 히미코>, <터치>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한다. 와세다 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1995년작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 이후 <원더풀 라이프>(1998), <디스턴스>(2001)를 발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004년 작품 <아무도 모른다>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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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 ⓒ프레시안무비 |
이누도 잇신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오야마 신지, 가와세 나오미, 이와이 슈운지 등과 함께 일본영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젊은 감독들로서 모두 일본의 정치투쟁이 극에 달했던 1960년대에 태어난 감독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일본의 탈정치적 세대를 대변하는 이들 감독들은 현실참여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전 세대들과는 달리 미시적인 관점의 작은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현실을 외면하는 도피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서 특히 잘 드러나듯이 개별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 이들 세대들의 세계 속에는 일본 사회와 동세대에 대한 죄의식과 책임감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진 일본사회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이런 상황에서 개별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질문한다. 마치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예술가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트라우마를 예술적 문제로뿐만 아니라 생의 문제로 인식했던 것처럼 일본의 60년대생 감독들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일본 사회에 대한 근심을 자신들의 영화를 통해 표현한다. "죽지는 마라. 그러면 꼭 다시 돌아오겠다." 아오야마 신지의 <유레카>의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비록 이 1960년대생 감독들은 가내 수공업과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영화에 대한 진지함을 잃지 않고 있다. 이누도 잇신의 말처럼 '영화란 구차한 것이 아니다'라고 이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 잊을 수 없는 장면들 이누도 잇신의 영화 <조제...>에서 조제와 헤어지고 난 후 길 가에서 울던 츠네오의 모습, <메종...>에서 게이 노인 루비가 외치던 마술주문 '피키피키 피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생일을 맞은 유키가 첫 나들이를 나서는 장면에서 어두운 골목에 울려퍼지던 유키의 슬리퍼소리, 그리고 그들의 방안을 늘 따뜻하게 감싸던 햇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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