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계남 주연의 <손님은 왕이다>가 정치권을 비롯한 영화 마니아층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명계남이 주연을 맡기는 54년 인생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대표작가 니시무라 쿄타로의 '친절한 협박자'를 각색한 이 작품은 순진한 이발사(성지루)와 그의 아내(성현아), 협박자(명계남)와 해결사(이선균)를 축으로 위선과 협박, 유혹과 거짓을 배합해 낸다. 이런 류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손님은 왕이다>의 키포인트 역시 '반전'에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스릴러풍 원작에 명계남의 실제 배우인생을 녹여냄으로써 영화 속 비밀에 힌트를 제공한다는 것. 이게 과연 무슨 말인가? 픽션의 상상력이 논픽션의 얼개와 맞물리며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비밀을 살짝 들여다 본다.
. - <손님은 왕이다>는 어떤 영화? 서울 변두리의 한적한 이발관. 리모델링을 통해 현대식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3대째 이발관을 운영하는 안창진은 보험컨설턴트이자 미모의 아내인 전여옥의 '비즈니스'를 믿고 또 믿으며 묵묵히 제 할일 하는 순진한 소시민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너의 더럽고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김양길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찾아와 과거 뺑소니 사고를 들추며 매주 이발관에 들러 돈을 뜯어간다. 자신의 인생이 무너질까 두려운 안창진은 아내마저 유혹하는 김양길에게 사채까지 얻어 상납하고 결국엔 견디다 견디다 못해 해결사를 고용, 복수를 계획한다. |
. ▶ 명계남과 오기현 감독의 인연, 영화의 탄생 <손님은 왕이다>로 데뷔한 오기현 감독은 첫 시나리오로 충무로에 입성한 흔치 않은 케이스. 그는 현재 공연 중인 명계남의 연극 <콘트라베이스>가 지난 1995년 무대에 올려졌을 때 공연기간 내내 연극을 보러 오는 학생이었다. 공연기간 후반부에 명계남에게 직접 사인을 요청한 그는 명계남의 출연작품 20편을 편집한 비디오테이프를 건네고 캘리포니아 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고. 그리고 10년이 지난 후 오기현 감독은 아저씨라 부르던 명계남을 찾아가 '명배우 죽이기'(<손님은 왕이다>의 이전제목)라는 시나리오를 들고 출연요청을 했다.
. ▶ 특별한 공간 '이발관' 원작 '친절한 협박자'는 이발관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발사와 협박자의 긴장감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손님은 왕이다>는 원작의 기본 틀에 협박자의 숨겨졌던 사연을 가미, 반전을 노리고 있다. 이발사와 협박자가 직접 대면하는 이발관은 경기도 파주아트서비스 내 세트에 세워졌다. 블랙과 화이트의 차가운 느낌을 최대한 반영, 두 캐릭터의 충돌과 긴장감 고조를 그려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의 조남혁 미술감독 작품. 조엘코엔 감독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 나온 이발사 에드의 이발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 ▶ 면도하는 성지루, 면도받는 명계남 그리고 요부 성현아 촬영 전 12kg을 감량하며 날렵한 이발사 안창진으로 분한 성지루는 직접 이발과 면도를 소화하기 위해 꾸준히 미용학원에 다니며 실력을 키웠다. 그의 요부 아내 전연옥으로 분한 성현아도 직접 면도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틈틈이 미용학원을 드나들었다. 문제는 협박자 김양길.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이들에게 턱을 내맡긴 김양길 역의 명계남은 자신의 수염이 서걱서걱 밀리는 소리에 긴장하며 연기에 임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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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이다 ⓒ프레시안무비 |
. ▶ 한 겨울에 늦여름 분위기 연출 10월 9일 촬영을 시작한 탓에 특히나 추위를 견뎌야 했던 제작스탭들. 급기야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들던 날에 늦여름 장면의 촬영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앙상한 가지에 푸른 잎을 붙였고, 늦여름 소나기를 위해 살수차도 동원됐다. 물론 콘크리트 바닥에 꽁꽁 얼어붙은 얼음 제거는 기본. 비 오는 장면을 촬영한 후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얼어버린 바닥을 녹이는 작업이 반복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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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이다 ⓒ프레시안무비 |
. ▶ 협박이 난무하는 사건은 밤이 아니라 낮에 일어난다 어스름한 밤에 사건이 일어나는 전형적 느와르와 달리 <손님은 왕이다>의 이발사와 협박자는 주로 낮에 맞부딪친다. 협박의 시작과 전개, 끝 모두가 벌건 대낮에 이루어지는 것. 한낮에 벌어지는 협박극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위태위태한 긴장감을 더한다는 게 제작진의 의도. 이발관의 영업시간도 염두에 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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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이다 ⓒ프레시안무비 |
. ▶ 비밀의 열쇠는 픽션과 논픽션의 결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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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콘트라베이스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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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왕이다>는 주연배우 명계남의 인생역정이 영화와 연결되며 인터넷상에 "<손님은 왕이다>가 배우 명계남에 대한 트리뷰트냐?"란 댓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다. 극 후반부에 협박자 김양길의 숨겨진 인생을 풀어내며 명계남의 인생역정을 차용해, 이러한 논란이 불거졌다. 협박자의 정체가 삼류배우로 밝혀지며 명계남이 그동안 출연한 작품이 나열되고 배우로 활동하다 회사에 취직, 다시 배우로 복귀하는 김양길의 삶이 명계남을 꼭 빼닮았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연극 <콘트라베이스>는 명계남이 현재도 무대에 올리고 있는 작품. 드라마틱한 김양길과 명계남의 인생이 스크린 안과 밖에서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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