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뮌헨. 20회 하계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이 도시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2명을 살해하고 9명을 인질로 잡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스라엘 정부는 '테러집단'과의 협상을 거절하고 이로 인해 9명의 인질과 5명의 '검은 9월단' 단원이 목숨을 잃게 된다. 골다 마이어 수상이 이끌던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적으로 피의 복수를 결정한다. 아랍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복수의 방법을 모색하던 이스라엘 정부는 비밀암살단을 결성하여 인질사건의 배후 주모자들을 살해하고자 한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정예요원 아브너를 주축으로 한 이스라엘 비밀요원들은 조국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브너는 자신과 자신의 조직원들이 적의 표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조직원들이 하나둘 살해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브너는 이 피의 복수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깨닫는다.
. 뮌헨 올림픽 테러를 소재로 한 스필버그의 <뮌헨>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 <뮌헨>의 주제를 좀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조지 요나스의 회고록 <복수>다. 아브너의 깨달음 그대로 아랍인들과 유태인들은 '뮌헨 인질극'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피의 복수를 반복해왔다. 1948년 5월 유엔이 아랍국가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스라엘의 국가수립을 승인한 이후 아랍인들과 유태인들은 1948년, 1956년, 1967, 1973년에 걸쳐 4차례의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분쟁의 역사를 이어간다. 이후 국지적인 게릴라전 양상으로 진행되던 중동 분쟁은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과 아랍국가들과의 분쟁으로 전환되고 끝내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의 뉴욕 테러라는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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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프레시안무비 |
스필버그 역시 <뮌헨>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보여줌으로써 아브너가 조국의 이름으로 행했던 보복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불타오르던 세계무역센터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것이 분명한 이 영화의 의도는 스필버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적인 재현을 위해 그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접근해서 그들의 주장을 담고자 한다. 또 사건 당시의 기록영화와 조지 요나스의 회고록과 같은 사료들을 활용함으로써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 스필버그의 믿음직한 동료인 야누츠 카민스키의 영상은 변함없이 스필버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세계에 대한 신빙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장치와 과정을 통해 스필버그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그날의 사건을 다시 보여준다.
.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건을 다룬 알렝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프랑스 여인과 일본 남자의 짦은 만남을 다룬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는 보여줄 수 없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역사의 비극을 다룬다. 알랭 레네의 영화의 무대는 1957년 히로시마. 30대 프랑스 여인이 이 도시를 배경으로 '세계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느베르라는 마을 출신인 이 여인은 젊은 시절 한 독일 청년과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은 두 사람의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녀가 사랑하던 청년은 해방군에 의해 사살당하고 그녀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으며 삭발을 당한 채 지하실에 갇히게 된다. 어두운 상처를 간직한 그녀는 히로시마에서 한 일본 남자를 만난다. 그는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가족을 잃었다. 서로에게 이끌린 두 사람은 하룻밤 짧은 정사를 나눈다. 그리고 상대가 안고 살아가는 상처가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통해 상대가 가진 상처의 깊이를 짐작한다. 함께 있다는 것은 두 사람에게는 큰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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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 ⓒ프레시안무비 |
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상처받은 존재로 남아있다. 다만 함께 있을 뿐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한다.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요. 아무 것도." 여자는 말한다. "나는 모든 것을 보았어요. 모든 것을." 남자는 다시 말한다. "아니,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요." 여자가 말한다. "나는 히로시마에 있는 병원을 보았어요. 박물관을 보았어요." 남자가 대답한다.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요." 분명 여자는 히로시마에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그날의 흔적들을 본다. 그것들은 도시 어디에나 있다. 병원, 박물관 그리고 사람들의 육체 속에 참혹했던 그날의 흔적은 존재한다. 그녀는 보았다. 그러나 남자는 말한다.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어요. 아무 것도." 그 말은 곧 그가 느베르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음을 고백하는 말이기도 하다. 알랭 레네의 전작 <밤과 안개>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록영화다. <밤과 안개>에서 알랭 레네는 이제는 잡초만 무성한 수용소를 찾아간다. 그의 카메라는 수용소의 흔적들을 느리게 훑어간다. 그리고 독일군과 연합군에 의해 촬영된 충격적인 기록영상들이 이어진다. 가스실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벗어놓고 간 옷가지들, 불도저로 밀어야 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시체더미 등. 그리고 영화는 이제는 아무도 없는 수용소로 돌아온다. 우리는 그곳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다만 끔찍한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스필버그의 <뮌헨>은 9.11 테러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 영화의 무대는 뮌헨이 아니라 뉴욕이다. 이 영화를 지배하는 비애감, 불안감이 관객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날의 불타는 무역센터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원히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우리가 불타는 뉴욕센터를 보았기 때문이다. 우린 그날 CNN을 통해 전송되던 불타는 도시를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았는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지금, 우린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 * 알랭 레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진실들 1. 알랭 레네는 누벨바그 감독이 아니다 그는 고다르, 트뤼포, 리베트, 로메르 등이 속하는 이른바 누벨바그 세대와는 다른 '좌안파 Rive gauche'에 속하는 감독이다. '좌안파'감독에는 크리스 마르케, 아녜스 바르다, 알랭 레네 등이 있다.
2. 알랭 레네는 고다르보다 사회적이다 좌안파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알랭 레네는 누벨바그 감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주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밤과 안개>, <머나먼 베트남> 등에서 보여준 그의 정치적 태도는 고다르보다도 더 급진적이다.
3. 알랭 레네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국내에서 알랭 레네는 <히로시마, 내 사랑>(1959), <지난 해 마리앙바드>(1961) 등을 만든 모더니즘적 성향이 짙은 극영화 감독으로 알려져 있지만, 감독으로서 이력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시작하였다. <히로시마...> 이전에 이미 <고호>, <세상의 모든 기억>, <밤과 안개> 등의 뛰어난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바 있으며, 극영화 데뷔 이후에도 요리스 이벤스, 크리스 마르케, 아녜스 바르다 등과 함께 <머나 먼 베트남> 등을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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