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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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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버지

[김이석의 올드 & 뉴] <돈 컴 노킹>과 <꽁치의 맛>

빔 벤더스의 신작 <돈 컴 노킹>은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가는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한 카우보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존 포드류의 전형적인 서부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지만 사실은 주인공 하워드 스펜스가 촬영현장을 도망치고 있는 장면이다. 한때 서부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던 하워드는 지금은 술과 마약, 여자에 파묻혀 사는 퇴물배우다. 충동적으로 촬영장을 빠져나온 하워드는 30년간이나 연락을 끊고 지냈던 어머니를 찾아간다. 덤덤하게 아들을 맞이한 어머니는 하워드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슴푸레한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마을에서 하워드는 자신과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던 카페 종업원 도린과 자신의 아들 얼을 만난다. 그러나 30년간 존재마저 알지 못하고 살아온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술과 마약에 찌든 <돈 컴 노킹>의 하워드 스펜스와 달리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꽁치의 맛>(1962)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삶은 지극히 평온하다. 상처한 이후 아들과 딸을 데리고 살아가는 히라야마는 가끔 친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 외에는 한결같은 생활을 즐기는 회사원이다. 히라야마의 친구들은 미치코를 결혼시키라고 권하지만 히라야마의 눈에 딸은 아직 어리게만 보인다. 하지만 중학교 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은사의 딸이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아버지를 걱정하며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미치코를 결혼시키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미치코는 혼자 남게 될 아버지와 아직 철모르는 동생이 걱정되어 결혼을 주저한다. . 가족의 결합과 가족의 해체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이 한물간 스타 배우가 조각난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면 오즈 야스지로의 <꽁치의 맛>은 평범한 가족이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상반된 가족사의 중심에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다. <돈 컴 노킹>의 주인공 하워드 스펜스는 가족관계의 복원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일반적으로 수반되는 '권위'나 '책임'과는 거리가 있는 존재다. 촬영현장을 충동적으로 도망친 그의 행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무책임한 존재다.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 아들 얼에게 '난 니 애비다'라고 내뱉듯이 말하지만 그는 아들과 진지하게 대면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 뿐이다.
돈 컴 노킹 ⓒ프레시안무비
아들로부터 매몰차게 거절당한 이후 하워드는 얼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옛여인이기도 한 도린을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사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아들이 아니라 당신이었어!" 불쑥 자기 앞에 나타난 옛남자에게 담담하게 '참 오래도 걸렸네요'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절제력을 가진 도린이지만 하워드의 끝없는 이기심은 끝내 그녀를 폭발하게 만든다. 이런 하워드 앞에 스카이라는 젊은 여인이 나타난다. 어머니의 유골함을 안고 나타난 그녀는 자신이 하워드의 딸이라고 말한다. 창졸간에 딸까지 얻게 된 하워드는 상황을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다. 이처럼 끝없이 자기에게 부여된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하워드는 도린의 표현대로 '겁쟁이Coward'이며 비겁자이다. 반면 오즈의 영화 속에서 아버지인 히라야마는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존재다. 그는 가정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이며, 직장에서는 온화한 상사다. 또 친구들에게는 유머를 즐길 줄 아는 편안한 친구이며 스승에게는 예의를 아는 제자이기도 하다. 과하지 않으며 평상심을 지킬 줄 아는 그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자신의 역할을 원만하게 수행하는 인물이다. 오즈의 영화 속에서 이처럼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존재는 비단 아버지만이 아니다. 딸은 딸대로, 친구들은 친구대로, 제자는 제자대로, 스승은 스승대로 자신의 책임을 성실하게 이행하려고 노력한다. 때로 오즈의 인물들은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다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꽁치의 맛>에서 미치코는 아버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맘에 둔 남자를 놓치고 만다. 하지만 미치코는 그 일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꽁치의 맛>뿐만 아니라 오즈의 다른 영화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희생하는 인물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하워드 스펜스와 같은 인물이라면 결코 생각할 수도 없을 이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기희생을 오즈의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런 개인들의 절제와 희생으로도 가족의 해체는 막을 수 없다. <꽁치의 맛>에서 미치코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고 주저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동생을 떠나게 된다. 또 <동경 이야기>(1953)에서는 죽음이 노부부를 갈라놓는다. 오즈는 이런 해체의 과정에 대해 특별한 가치판단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죽음, 결혼, 성장 등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스런 삶의 과정이며, 그것을 따르는 것이 세상살이의 순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빔 벤더스의 영화에서 하워드의 가정은 복원되어야할 가치로 제시되지만, 오즈의 영화에서 해체되는 히라야마의 가정은 생성과 소멸, 소유와 상실이 반복되는 생의 일부로서 제시된다.
꽁치의 맛 ⓒ프레시안무비
<돈 컴 노킹>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워드는 그동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딸 스카이를 안아준다. 아직 얼과 하워드 사이에 진정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워드가 부성을 회복함으로써 해체되었던 그의 가정은 회복될 것이다. 오즈의 <꽁치의 맛>은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가 부엌에서 혼자 물을 마시는 장면으로 끝난다. 떠나간 딸의 빈자리는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히라야마는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삶이란 그런 것이며, 자신이 그래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영화 빔 벤더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폴커 쉴렌도르프 등과 함께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이 일군의 감독들은 1962년 '오버하우젠 선언'을 통해 '이제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젊은 감독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영화를 세상에 내놓는다. 파스빈더와 쉴렌도르프는 파시즘에 경도되었던 아버지 세대의 추악함을 고발한다. 세상과 결별하고 도시를 떠도는 빔 벤더스의 초기 영화 속 인물들 역시 아버지의 세대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시키고자 했던 뉴 저먼 시네마 세대의 이상을 대표하는 존재들이다. 이처럼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가치와는 무관한 듯 보였던 벤더스의 영화에서 '가정'이라는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조금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촬영장을 뛰쳐나와 어머니와 아들을 찾아가는 하워드 스펜스의 모습에서 유럽과 헐리우드 어디에서도 정박할 지점을 발견하지 못한 빔 벤더스의 초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조금은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오즈의 삶은 빔 벤더스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생존 당시에도 일본 최고의 감독 중 한사람으로 칭송받았던 오즈 야스지로는 사후에도 존경받는 아버지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의 많은 감독들뿐만 아니라 허우 샤오시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왕가위 등으로부터 아시아영화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감독으로 칭송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마리 스트로브, 빔 벤더스, 짐 자무쉬 등의 서양 감독들로부터도 영화의 모범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록 오즈 자신은 묘비에 '무(無)'라는 한 글자를 남기고 떠났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의 영화 속의 성실한 아버지들처럼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임 : 빔 벤더스는 자신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를 오즈 야스지로, 프랑수와 트뤼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헌정하였으며, 1985년에는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치는 다큐멘터리 <도쿄가>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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