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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국무총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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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국무총리란 무엇인가?

<기고> 세번째 총리 지명을 지켜보며···

우리의 국무총리제도는 잘 알다시피 1950년 부산정치파동의 와중에서 소위 발췌개헌이라는 비정상적인 헌법개정의 산물이다. 표면상 그것은 대통령제에 내각책임제 요소를 가미한 두 권력구조의 장점을 취한 제도로 합리화되고 있다.

그러나 통치권이 궁극적으로 대통령에 귀속되고 국가통치의 각 영역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갖는 각 부처의 장관에 부여되어 있는 한 국무총리제도는 처음부터 의전용 등 통치의 주변부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건국 50여년의 한국현대정치사는 국무총리라는 직책이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히 권한을 위임받지 못할 경우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지낸 인사의 최종 출세자리거나 사회적 명망가가 공직 타이틀을 획득하는 수단은 될 수 있어도 통치과정에서 실질적이며 주도적인 기능은 거의 수행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계 등에서 국무총리제도에 대한 폐지가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이유도 그러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무총리제도의 '묘한' 기능?**

국무총리제도의 그와 같은 비효율성 또는 극단적으로 표현하여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계속 유지되어온 정치적인 이유는 그것이 대통령책임제를 '묘한' 방식으로 보완해준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묘한' 방식이란 바로 국무총리제도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통치상의 업적에 따른 영광을 누릴 수는 있어도 실책에 대해서는 책임을 떠넘기거나 또는 정치적 국면전환용으로 사용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은 정책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나 정책집행에 대한 뚜렷한 복안이 없더라도 국무총리를 통해서 내각에 일방적으로 명령을(예를 들어 '무조건 물가를 잡으라'거나 '입시과열의 해소책을 세우라'는 등) 내림으로써 국정수행의 책임과 의무는 내각에 떠넘기면서도, 다행하게도 정책수행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그 공은 대통령의 업적으로 돌릴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국무총리제도를 이용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국무총리제도는 과연 국정수행에 실질적인 기여는 하지 못하는 허구적인 제도에 불과한가.

대통령책임제가 명실상부하게 운용되려면 국무총리제도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국정의 최선두에 서서 정책의 최종결정 및 집행에 책임을 지고 국가를 운영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정책의 창조적인 입안자는 못되더라도 적어도 정책에 대한 최선의 판단자가 되어야 한다. 어떠한 정책도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정부내에서조차도 쉽게 자동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없으며, 정책의 중요도나 역사적 의미가 높으면 높을수록 가치판단 차원의 갈등이 크기 마련이다.

따라서 총괄적인 사고판단력과 함께 차원 높은 역사의식은 대통령의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며, 그러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 정치적 당위이다. 문제는 정치적 현실과 그러한 정치적 당위 사이에 언제나 큰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괴리의 존재가 역설적이게도 국무총리제도의 현실적 필요성을 제기하게 만든다.

***대중정치인 대통령의 한계 보완하는 국무총리의 역할**

조선건국기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국가통치를 구상하면서 현재로 보면 일종의 내각책임제를 주장한 바 있다. 그의 논거는 세습왕권제도는 현실적으로 주자학의 이상인 성인지치(聖人之治)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탁월한 경륜과 식견을 갖춘 사대부 출신의 인물이 재상이 되어 국가통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논거가 성립하려면 왕이 적어도 어떠한 인물이 진정한 재상감인지 판별할 능력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되어야 한다. 어쨌든 이 시대에서도 대통령 스스로는 통치능력이 탁월하지 못하더라도 누구가 과연 진정한 국무총리감인지 판별할 능력 정도는 갖추고 있다는 전제가 충족될 경우 정도전의 재상중심론에서 이 시대 국무총리제도의 의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대중민주주의의 시대이다. 다수 대중의 선택이 국민의 선택으로 신성시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제도의 핵심이자 맹점이다. 다수 대중의 선택에 의한 대통령의 선출은 대통령으로서 최고의 자질을 갖춘 인물, 위에서 언급한 종합적인 판단력, 역사의식과 더불어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 문화적 교양을 갖춘 인물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어렵게 만든다.

국무총리제도는 대중민주주의 하에서 대통령책임제가 갖는 그러한 맹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서 국무총리에 어떠한 인물이 선택되어야 하느냐는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여성 배려', '경제적 식견' 만으론 총리 기준될 수 없어**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인사판단의 기준들 가운데 여성에 대한 배려나 경제적 식견 또는 국제감각 등은 부분적인 기준은 될 수 있어도 결코 결정적인 기준은 되지 못한다. 어느 조직에서나 인사운용에 성적 차별이 있어서는 물론 안 되지만 국정운영이라는 막중함에 비추어볼 때 여성에 대한 배려는 고려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경제적 식견과 같이 특정 분야의 능력은 그러한 능력이 발휘되어야 할 각 부처 장관의 선택기준은 될 수 있어도 말 그대로 '총리'라는 국정을 총괄적으로 보좌하는 직책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 더구나 이윤추구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기업경영능력은 국가경영이라는 보편적 목적에 필요한 자질과는 모순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도덕성은 물론 국무총리뿐만 아니라 공인이 되기 위한 자질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공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이 사회의 도덕률들을 남의 눈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국가의 존재와 동일시하는 마음가짐에서 그것들을 준수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도덕성은 공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 사회의 도덕규범, 법을 잘 준수한다는 것이 국정을 총괄적으로 보좌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중민주주의 하에서 대통령은 대중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국무총리가 앞에서 언급한 대통령의 자질을 갖추고 대통령을 보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을 선택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한 결정은 아니다.

국무총리 임명을 둘러싼 오늘의 정치적 진통은 우리의 대통령에게 인물을 판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의 반증인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총리감이 정말로 부재함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정말로 훌륭한 국무총리가 탄생하기 위한 진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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