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상 감독상 후보에 오른 <굿 나잇 앤 굿 럭>은 조지 클루니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감독 데뷔작인 <컨페션>(2002)에서 방송국 PD와 CIA 비밀요원이라는 이중적 삶을 살아가는 척 베리스라는 인물을 다루었던 조지 클루니는 이번 영화에서는 1950년대에 미국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의 광풍에 정면으로 맞섰던 전설적인 앵커 에드워드 머로의 삶을 다루고 있다. "미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공화당 상원의원 매카시 상원의원의 폭탄 발언을 계기로 촉발된 미국의 공산주의자 사냥은 50년대 미국 사회를 집단 광기의 상태로 몰고 간다. 매카시즘의 광풍은 정치판뿐만 아니라 영화판에도 불어닥쳐서 찰리 채플린과 프랭크 카프라를 비롯한 다수의 영화인들이 헐리우드를 떠나게 된다.
.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실은? CBS의 앵커 에드워드 머로와 그의 동료 프로듀서인 프레드 프렌들리는 매카시즘의 광기가 절정에 달한 1953년에 한 공군장교의 강제퇴역 사건을 접하게 된다. 이 장교가 정당한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연좌제에 걸려 강제퇴역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 머로와 프레드는 이 사건이 매카시즘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무소불위의 권력과의 싸움이 시작된 이후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 싸움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이들의 투쟁이 승리를 거두면서 미국사회는 매카시즘의 광기로부터 서서히 회복되게 된다. 이처럼 부당함에 당당히 맞선 영웅적이면서도 헌신적인 기자들의 모습은 영화가 각별히 사랑하는 소재들 중 하나다.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1976년 연출작 <대통령의 음모> 역시 절대 권력과 맞선 기자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언론이 절대권력과의 투쟁에서 거둔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로 기억될 만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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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6월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한다. 단순한 절도 사건으로 처리될 뻔했던 이 사건은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끈질긴 추적 끝과 내부고발자의 제보에 힘입어 닉슨 정권의 핵심세력이 개입된 정치 공작이었음이 밝혀진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닉슨 대통령세력의 불법선거행위, 부정한 정치헌금 수뢰와 탈세 행위 등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건 발생 이후 리차드 닉슨은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하지만 두 기자의 조사 결과 사건 관련자들이 모두 영화의 원제(All The President's Men)처럼 대통령의 측근들이었음이 밝혀진다. 결국 닉슨은 1974년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된다. 정치적 소재를 즐겨 다룬 탓에 편집증환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던 알란 J. 파큘라 감독은 <소피의 선택>, <펠리칸 브리프> 등과 같이 정치적 음모, 인간의 심리, 사회적 문제 등이 추리물과 같은 구성 속에 녹아든 독특한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도 파큘라는 기록영화적 요소들에 추리영화적 구성을 더함으로써 서사적 긴장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 저널리즘은 살아있다 저널리스트들의 투쟁을 통해 절대 권력의 사악함을 고발하는 이 두 편의 영화에 감추어진 또 하나의 소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널리즘 자체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영웅적인 주인공들의 모습에 버금갈 만큼 매력적인 요소를 꼽는다면 언론사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살아있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과 CBS의 뉴스 스튜디오 풍경일 것이다. 자욱한 담배연기, 멜빵바지를 걸치고 작업에 몰두하는 남자들, 여기저기서 들리는 타자소리와 전화벨소리. 그리고 열정과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들의 눈빛 등. 관객들의 동경을 자아내는 이런 풍경들은 현실에 비추어 다소간 미화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두 편의 영화의 배경이 된 1950년대와 1970년대의 미국은 실제로 저널리즘의 신화가 살아있던 시대이기도 했다. 조지 클루니의 <굿 나잇 앤 굿 럭>의 배경이 된 1950년대는 방송의 막강한 위력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시기였으며, 미국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워터게이트 사건은 언론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지 클루니의 <굿 나잇 앤 굿 럭>은 이 낭만적인 열정이 살아있던 시기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거친 핸드헬드로 촬영된 뉴스쇼 제작 현장과 정적인 화면의 재즈바를 대비시킴으로써 감독은 방송 제작 현장의 긴박감 넘치는 방송 제작 현장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또한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언론인과 사내결혼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커플의 모습 등은 묘한 열정이 숨쉬고 있던 50년대의 저널리즘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확인하게 해주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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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편의 영화가 가진 또다른 공통점은 이 영화들이 그 시대에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리차드 닉슨의 사임이 있은 후 불과 2년 후에 발표된 파큘라 감독의 <대통령의 음모>가 가진 정치적 민감성과 사회적 파장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집단 광기에 사로잡힌 한 시대를 그린 조지 클루니의 <굿 나잇 앤 굿 럭> 역시 그 시대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반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파큘라 감독의 영화 못지않게 사회성 짙은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극우적 분위기에 사로잡힌 현재의 미국과 조지 클루니의 영화 속에서 재현된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혔던 1950년대의 미국사회의 모습은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50년 전 머로의 방송이 광기에 사로잡혔던 미국인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던 반면, 현재의 방송들은 오늘날 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광기를 잠재울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현재의 저널리스트들이 에드워드 머로와 같은 신념과 헌신의 자세를 가지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인류의 마음이 지난 50년간 더욱 사악해진 탓일까? 더욱 끔찍한 것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이 어리석은 인류가 다시 50년이 지난 후에도 이 오류의 역사를 멈추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쉽게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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