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였을 것이다. "시인은 스물 하나에 죽고 로커와 혁명가는 스물넷에 죽는다"고 말했던 사람이 말이다. 그러고보면 유독 로커들 가운데는 요절한 사람들이 많았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커트 코베인과 시드 비셔스...... 커트 코베인.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문화의 아이콘과 같았던 그룹 '너바나'의 리더였던 그는 갑작스런 성공에 따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서서히 사라지기보다는 한순간에 불타버리리'라는 닐 영의 노랫말을 유서로 남긴 채. 시드 비셔스. 데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로 단숨에 1970년대 영국 펑크록의 대표그룹으로 떠오른 그룹 '섹스 피스톨즈'의 베이시스트였던 그는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떠난다.
. 요절한 천재 뮤지션, 커트 코베인과 시드 비셔스 시드 비셔스와 커트 코베인 사이에는 20년 가까운 시간의 간극이 놓여 있지만 여러 면에서 닮은꼴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음악을 통해 기존의 질서와 정면으로 맞선 인물들이다. 그룹명부터 심상치 않은 '섹스 피스톨즈'는 상업적 욕망과 고전음악에 대한 열등감에 물들어있는 1970년대의 록음악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다. 시애틀 태생의 그룹 '너바나'역시 정신적 에너지를 상실한 채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고 있던 90년대의 대중음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일찍이 요절한 천재 시인 랭보가 그랬던 것처럼 기존의 가치에 대한 부정을 넘어 자기 파괴의 과정으로 치달았던 그들이었지만 결국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고 조롱했던 상업성과 대중성의 함정에 그들 자신이 빠져 들면서 섹스 피스톨즈와 너바나의 전복적인 정신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다.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2005)와 알렉스 콕스의 <시드와 낸시>(1986)는 짧은 시간동안 불꽃처럼 살다가 산화한 두 음악인을 기리는 영화다. <드럭스토어 카우보이>(1989), <아이다호>(1991)로 미국 인디영화의 기수로 주목받은 후 헐리우드 주류 영화계에서 오랜 외도를 마친 후 돌아온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전작 <게리>(2002), <엘리펀트>(2003)와 마찬가지로 실험적 영상과 독특한 플롯이 돋보이는 이 영화에서 구스 반 산트는 커트 코베인을 우리가 기억하는 영웅적인 인물로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무대에서 포효하는 커트 코베인이 아니라 약에 취해 휘청대는 블레이크 (영화 속에서 커트 코베인의 대리자로 그려진 주인공)의 모습을 보게 되고, 너바나의 음악이 아니라 블레이크의 노래를 듣게 된다. 일반적인 음악영화의 전형을 완전히 벗어난 이 영화는 커트 코베인을 위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구스 반 산트의 새로운 영화적 모험의 연장선에 놓인 영화다. 옥스퍼드 법대생으로서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영화의 길로 들어선 후, 1984년 엉뚱하고 기이한 SF코미디 <리포 맨>으로 주목받았던 알렉스 콕스의 <시드와 낸시>는 구스 반 산트의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주는 영화다. 비록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리스트였던 자니 로튼에 의해 "펑크족 시대를 그리워하는 옥스퍼드 졸업생의 개소리"라는 악평을 받기도 했지만, 알렉스 콕스 감독은 시드와 그의 연인 낸시의 일탈적인 사랑을 비교적 사실에 입각해서 그려내고 있다. 로커와 팬으로 만난 시드와 낸시는 그룹의 동료들마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파행적인 애정행각을 벌인다. 상대를 파괴할 지경으로 격렬하게 진행되던 이들의 사랑은 결국 1978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헤로인에 중독된 시드가 낸시를 살해함으로써 비극적인 종말에 이르게 된다. 보석으로 풀려난 시드 역시 이듬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숨지게 된다. 시드 비셔스의 파행적인 삶은 그의 유골을 담은 유골함이 히드로 공항에서 떨어져 깨지는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한없이 땅끝으로 추락하고자 했던 시드 비셔스다운 죽음이었던 셈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불꽃처럼 산화한 한 음악인의 삶과 그의 음악에 대해 존경을 보내면서 동시에 완벽하게 세상 밖에 존재했던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일반적인 가치들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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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리 올드만과 마이클 피트의 광기어린 연기 구스 반 산트의 <라스트 데이즈>와 알렉스 콕스의 <시드와 낸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공통적으로 꼽으라면 바로 주연배우일 것이다. 외모에서부터 마치 시드 비셔스와 커트 코베인을 다시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게리 올드만(시드 비셔스 역)과 마이클 피트(블레이크 역)의 연기는 정형화된 세상에 맞서 자유를 노래한 위대한 로커의 영혼을 다시금 저세상으로부터 우리 앞으로 불러들인다. 특히 '섹스 피스톨즈'의 'My Way'를 다시 부르는 공연 장면에서 게리 올드만의 광기어린 연기는 '섹스 피스톨즈'의 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마저도 단숨에 사로잡아버릴 정도로 퇴폐적 에너지가 물씬 풍기는 장면이다. <라스트 데이즈>에서는 '너바나'의 노래 대신 주연배우 마이클 피트의 자작곡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마이클 피트가 어두운 방에서 홀로 기타를 뜯으며 'Death to Birth'를 연주하는 장면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커트 코베인이 겪었던 상실감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구스 반 산트의 영화를 보며 떠올린 또 한편의 영화는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1941)이다. 약에 취한 블레이크가 낮은 목소리로 "잃어버렸어, 무언가를 잃어버렸어"라고 중얼거릴 때, 그의 목소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케인이 내뱉었던 "로즈버드"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한 사람은 록음악의 영웅으로서, 다른 한 사람은 언론계의 제왕으로서 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들은 불행한 존재들이었다. 비록 남다른 야망과 열정에 힘입어 그들은 더 높은 곳에 도달하였지만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던 불꽃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 불꽃을 잃어버린 자들이 비단 그들뿐일까? 우리들도 한때 가슴 속에 타오르던 맑은 불꽃 하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스물 여덟 해를 살다간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윤동주 <길> 중에서)
덧붙임 : 커트 코베인은 생전에 섹스 피스톨스의 데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를 '자기 생애 최고의 록 앨범'이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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