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미니크 몰 Domonik Moll은 프랑스 영화계의 기대주다. 독일 태생으로 '페미스 FEMIS'의 전신인 '고등영화연구소 IDHEC'에서 영화를 전공한 도미니크 몰은 1994년 사르트르의 원작을 각색한 첫 장편 <엥티미테 Intimité>로 영화계에 데뷔한다. 도미니크 몰의 명성을 알린 영화는 그의 두 번째 영화 <당신의 영원한 친구 해리 Harry, un ami qui vous veut du bien>(2000)이다. 좀더 원제에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당신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친구 해리'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영화는 이상심리를 가진 친구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인해 위기에 빠지는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로 도미니크 몰은 평단의 호의적 반응은 물론 상업적인 성공까지도 거머쥐게 된다. 이 감독에 대한 프랑스 영화계의 기대감은 그의 세 번째 영화 <레밍 Lemming>(2005)이 지난 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도미니크 몰의 신작 <레밍> 역시 그의 전작 <해리...>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런 침입자의 출현으로 인해 위기에 빠지는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의욕적인 엔지니어 알랭 게티(로랑 뤼카)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베네딕트(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조용한 교외 전원주택단지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남불의 눈부신 햇살이 더할 나위없이 잘 어울리던 이들의 평온한 삶은 어느 날 알랭이 그의 직장 상사 부부를 집으로 초대하면서부터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남편 리샤르 폴록(앙드레 뒤솔리에)에 대해 격심한 증오심을 드러내던 알리스(샤를로트 램플링)는 남편에게 술을 끼얹고 애써 평정을 유지하려는 알랭 부부를 조롱하기까지 한다. 엉망이 되어버린 저녁식사 자리를 수습하고 난 그날 밤, 알랭은 부엌 배수구에서 햄스터를 닮은 동물 한 마리를 발견한다. 북유럽에 서식하는 이 '레밍'은 집단 이동을 하는 습성을 가진 쥐의 일종으로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 등장하는 바로 그 동물이기도하다. 이동 중 장애물을 만나면 집단자살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레밍의 갑작스런 출현은 이후 알랭 부부에게 일어날 사건을 경고하는 상징이었다. 남편 폴록의 외도로 인해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알리스는 다시 알랭의 집을 찾아와 그곳에서 권총자살을 하고,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이후 이상증세를 보이던 알랭의 아내 베네딕트는 급기야 알리스와 일종의 접신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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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밍 ⓒ프레시안무비 |
폴란드 출신으로 도미니크 몰과 마찬가지로 파리의 '고등영화연구소'에서 영화를 전공한 로만 폴란스키 역시 예기치 못한 요인에 의해 무너지는 일상적 세계의 모습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감독이다. 데뷔작인 <물속의 칼 Noz W Wodzie, Knife In The Water>(1962)에서부터 <반감 Repulsion>(1965), <악마의 씨 Rosemary's Baby>(1968), <차이나타운 China Town>(1974), <세입자 Le locataire>(1976), <비터문 Bitter Moon>(1992) <나인스 게이트 The Ninth Gate>(1999) 등 대부분의 작품에서 폴란스키는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세계와 일상적 세계의 만남에 대해 집요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데뷔작 <물속의 칼>은 이른바 폴란스키적 세계의 출발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보트 여행을 떠나던 안드레이와 크리스티나는 우연히 부랑자 청년을 만나게 된다. 권태기에 접어든 이 부부는 부랑자 청년에게 보트 여행에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중년의 안드레이는 사회적 지위와 부를 내세워 청년을 압도함으로써 아내 앞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청년의 젊은 생기 앞에서 왜소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격렬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평정을 잃어버린 안드레이는 점점 극단을 향해 치닫게 되고, 이런 그의 선택은 상황을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도미니크 몰과 로만 폴란스키는 모두 정상적 세계와 비정상적 세계의 충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보이지만 그 세계를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도미니크 몰의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세계를 위협하는 외부의 침입자에 맞서 싸우고 끝내 그것을 극복하는 존재들이다. <레밍>의 주인공 알랭이나 <해리...>의 주인공 미셸은 갑작스레 그의 삶에 개입한 침입자들로 인해 혼돈을 겪지만 투쟁을 통해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회복시킨다. 알리스는 복수를 하고, 폴록은 처벌을 받고, 베네딕트는 정상을 되찾고, 알랭은 가정을 지킴으로써 해결되어야 할 것은 해결되고, 보호받아야 할 것은 보호받는다. 삶은 다시 정상성을 회복한 것이다. 반면 폴란스키의 영화에서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외부에서 찾아온 침입자가 아니라 인물들의 내면 혹은 그들이 속한 세계 내부에 잠복해있는 어떤 속성들이다. <물속의 칼>에서 주인공 안드레이를 위협하는 최초의 요인은 젊은 부랑아이지만, 끝내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요인은 안드레이 자신의 질투심이다. 따라서 그의 인물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도리어 상황의 포로가 되어버린다. 사탄숭배자들에 둘러싸인 미아 패로우, 강박증에 사로잡혀 투신자살을 기도하는 <세입자>의 로만 폴란스키, 방관자적 입장에서 점점 변태적인 사건의 중심부로 휘말려가는 <비터문>의 휴 그랜트, 그리고 악마적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다 스스로 그 세계의 포로가 되는 <나인스 게이트>의 조니 뎁 등이 모두 그런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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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의 칼 ⓒ프레시안무비 |
이 글에서는 도미니크 몰의 영화세계와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세계를 비교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도미니크 몰의 영화는 폴란스키보다는 히치콕에 더 가까운 편이다. 도미니크 몰은 히치콕이 그랬던 것처럼 일종의 영화적 게임을 즐기는 감독이다. 제기된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서사방식 뿐만 아니라, 잘 그려진 설계도처럼 영화 속 장치들과 인물들이 상당한 개연성과 인과율에 따라 충실히 재현된다는 점은 두 감독의 영화가 보여주는 유사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미니크 몰은 히치콕의 영화관을 성실하게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관객들은 그들의 영화에 사로잡히면서도 이 게임이 끝나면 곧바로 현실의 질서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영화 속에서 치명적인 도전을 체험하지는 않는다. 반면 안온한 부르주아적인 세계의 질서에 대해 공격을 가하는 폴란스키의 영화는 자신의 관객들마저도 그 공격의 대상에 포함시킨다. 폴란스키는 스스로를 빛의 세계에 속한 자로 인식하며 어둠의 세계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인간들을 향해 그 그림자는 바로 당신의 그림자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관객들은 폴란스키의 영화에서 수수께끼의 해법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던져진 질문을 발견하게 된다. <물속의 칼>의 결말에서 부랑자 청년은 떠나고 크리스티나는 다시 남편에게로 돌아온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다시 차를 타고 길을 떠난다. 하지만 갈림길에서 그들이 탄 자동차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멈춰 선다. 예전의 삶의 궤적을 한참이나 벗어나버린 이들은 더 이상 어제의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멈춰선 길 위에서 진정한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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