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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건달들의 욕망과 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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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건달들의 욕망과 파멸

[김이석의 올드 & 뉴] 유하의 <비열한 거리>와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

토마스 샤츠가 '미국적 표현주의'라고 설명한 느와르 영화는 서부영화, 뮤지컬 영화와 함께 할리우드가 발전시킨 영화 장르 중 하나다.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과 제도와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 반영웅적인 등장인물 등의 특징을 갖고 있는 느와르 영화는 서부 영화나 뮤지컬 영화가 미국적인 영화로 머물렀던 것과는 달리,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여 재생산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프리츠 랑, 장-피에르 멜빌, 오우삼,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는 필름 느와르의 넓은 스펙트럼을 확인시켜주는 좋은 예일 것이다. 최근까지 변함없는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한국의 '조폭 영화'도 넓은 범주에서 변형된 느와르 영화의 일종으로 설명할 수 있다. 느와르 영화 중에는 간혹 <말타의 매>나 <빅 슬립>처럼 탐정들이 등장하는 영화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느와르 영화 주인공들은 마피아나 야쿠자와 같은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가치의 수호자인 서부 영화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법과 제도를 유린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자들이다. 갱스터 영화의 관객들은 살인과 폭력과 테러가 일상화된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기보다는 무법자에게 자신을 동일시시키고 그들의 행위 속에서 쾌감을 얻는다.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들은 필연적으로 파멸하고 그들이 유린한 가치는 회복된다. 하지만 갱스터 영화의 관객들은 가치의 회복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이 영화들이 무법자들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희생자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좌절과 파멸은 긍정적 가치의 회복이 아니라 수구적 질서의 승리로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여기서 갱스터 영화 특유의 비극성이 나타나게 된다.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반영웅의 탄생에 대해 토마스 샤츠는 이렇게 설명한다. "갱스터는 도시의 남자다. 그가 살고 있는 도시는 일종의 상상의 도시다. 실제 도시는 범죄자들을 양산해내지만, 상상의 도시는 갱스터를 생산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 ⓒ프레시안무비

전통적인 갱스터 영화들이 이 '도시의 남자'들이 가진 영웅성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던 반면, 마틴 스콜세지는 상상의 도시에 살고 있던 갱스터를 실제 도시로 데려옴으로써 그들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의 영화 속에서 갱스터들은 동경과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범죄 집단으로 격하된다. 1973년 발표된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 Mean Street>는 동경이나 환상과는 거리가 먼 삼류 깡패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리틀 이탈리아 구역을 떠도는 하릴없는 건달패 찰리(하비 케이틀)와 자니 보이(로버트 드 니로)의 삶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브라이언 드 팔마 류의 갱스터 영화와 같은 비장미와는 거리가 멀다. 도시 주변부를 떠도는 유령 혹은 그림자와 같은 존재들인 그들은 거대한 도시에 충격파를 던지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고 궁색한 존재들이다. 그들도 갱스터 영화의 전형적인 인물들처럼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리지만 그런 행위도 간질병 환자인 테레서의 갑작스런 발작처럼 무의미하기는 마찬가지다. 마틴 스콜세지의 1990년 작 갱스터 영화 <좋은 친구들 Goodfellas> 역시 상상의 도시를 지배하는 갱스터가 아니라 실제 도시를 떠도는 범죄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갱스터가 되는 것이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좋다'고 믿었던 한 청년이 끝내는 동료를 밀고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가 갱스터 집단을 그리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유하의 <비열한 거리> ⓒ프레시안무비

갱스터 영화는 일본의 야쿠자 영화와 홍콩 느와르를 거쳐 한국에서는 조폭 영화로 변모하였다. 한국의 조폭 영화는 크게 <게임의 법칙>(1994, 장현수)이나 <초록 물고기>(1997, 이창동)처럼 비극성을 강조한 영화와 <넘버 3>(1997, 송능한)처럼 희화화에 초점을 맞춘 영화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전자의 경우가 개인 대 사회의 대립구도 속에서 한 인물의 전인격적인 몰락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후자의 경우는 조직 폭력배 집단을 한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우화적 장치로 이용함으로써 사회적 모순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가문의 영광>이나 <두사부일체> 류의 조폭 영화들이 학벌주의, 사학비리 등의 사회적 문제를 채용하게 된 데는 <넘버 3>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식구들(가족과 조직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끝내 파멸을 맞게 되는 삼류 조폭의 삶을 다룬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는 <게임의 법칙> 류에 속한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조직 폭력배가 된다는 것은 고시를 패스하거나 일류 대학에 진학하는 것처럼 비루한 인생을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진 것 없는 자의 인생 역전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무모하지만 절실했던 삼류 건달 병두(조인성)의 욕망도 좌절된다. "조폭이라는 무리들이 우리 일상적 삶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대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조폭이란 대상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는 감독의 설명처럼 유하의 <비열한 거리>는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욕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할리우드의 삼류 갱스터들이 패밀리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반면, 한국의 삼류 건달은 출세와 성공을 위해 거리낌 없이 조직(패밀리)을 배신한다. 식구들을 위한 행위였다고 자신의 배신을 정당화시키려하지만 초등학교 동창인 현주에 대한 병두의 터무니없는 구애행위를 통해 그의 모든 행동이 결국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욕망을 달성시키기 위한 행위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감독은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갑작스레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병두의 친구 민호(남궁 민)의 존재를 등장시켜 자신이 이 영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고자 한다).
'비루한 자들의 삼류인생'을 다룬 이 두 편의 <비열한 거리>에서 차이가 있다면 스콜세지의 영화가 삼류 인생의 비루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갱스터 영화의 전통에 반기를 든 반면 유하 감독은 삼류 건달 병두를 전통적인 갱스터 영화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비극적인 희생자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못 입어도 구두는 닦고 살면서' 의리 하나만은 지키려는 병두와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며 싸움질이나 하는 찰리와 조니 보이 중에서 누가 더 이 도시와 이 사회의 비열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일 것이다. * 덧붙임: 두 편의 <비열한 거리>를 음악을 통해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유하의 영화에서 음악은 내러티브를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속에서 음악은 일종의 소격효과를 생산한다. 특히 오프닝 장면에 삽입된 경쾌한 분위기의 'Be My Baby'는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대비되면서 묘한 거리감을 발생시킨다. 그 외에도 에릭 클랩튼, 롤링 스톤즈, 존 메이올과 같은 대가들의 음악이 삽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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