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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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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세상을 향하여

올 여름 흥행 기대작 <괴물>의 봉준호 감독

올 여름 흥행 기대작으로 꼽히는 <괴물>을 보고 나면 매일같이 건너던 한강이 달리 보인다. 무심하게 흐르는 강물 사이로 영화 속 괴물이 고개를 내밀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감흥 없이 쳐다보던 한강 다리가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괴물>은 그렇게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 새로운 느낌을 부여하는 영화다. 영화 <괴물>은 두 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내내 괴수영화의 짜릿한 장르적 재미를 선보인다. 한국영화 최초의 본격 괴수영화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무엇보다 한편의 완벽한 오락영화의 짜임새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전작을 통해 보여왔듯이, <괴물> 역시 이야기의 한편에 사회정치적 은유와 상징을 세련되게 끼워 넣는다. <괴물>이 단순히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를 뛰어넘어 뛰어난 영화로 평가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괴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봉준호 감독을 만났다.
봉준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영화의 내용을 공개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드라마의 결말이 좋았다. 하지만 제작자나 투자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결말이다. "(역시 결말을 공개할 수 없지만) 그 결말을 바꾸자는 의견, 압력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요구하는 '결말'대로 가면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아마겟돈> 꼴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좀 잠잠해지더라." - 영화가 다의적(多意的)이다. 상당히 정치적인데 그걸 잘 감춘다. 그래서 더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적인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순수하다, 정치적이다 하는 이분법 자체가 싫다. <괴물>은 장르적 흥분과 폭발력에 집중한 영화였고 그것을 방해하는 그 어떤 요소도 제외하려고 애썼다. 물론 정치적 코멘트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도 괴물이라는 장르에 흡수되기를 바랬다. 영화의 시작만 해도 실제 6년 전 일어났던 '맥팔란드 사건'을 인용했지만 동시에 괴수영화의 출발로서 너무나 그럴듯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 괴물은...당신에겐 과연 뭔가? "괴물은 그저 괴생물체일 뿐이다. 사회정치적인 기원을 가지고 탄생한 생물체지만 영화가 계속되면서 그 의미들은 오히려 점차 다른 곳으로 분산된다.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 소동이 일어난다거나 마치 베트남전에서처럼 에이전트 옐로우가 살포되면서 괴물의 힘보다는 그 주변의 일이 더 확대된다. 그 과정에서 괴물은 저주받은 생명체로 전락한다. 다른 괴수 영화들은 점차 괴물에 대한 비밀이 드러나고, 그래서 괴물에 대해 집중해나가는 구조를 지니는 데 비해 이 영화는 영화의 초반부에 아예 괴물의 정체를 드러내고 이야기의 중심에 그에 맞서는 현서의 가족을 배치한다."
봉준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그러니까 괴물이 당신한테 뭐냐니까? "식상한 표현일 수 있지만 주인공 가족을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이 괴물인 셈이다. 괴생물체와 싸우기도 힘든데 이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세상이다. 처음엔 괴물하고만 싸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얼마나 힘든 곳인가를 깨닫게 되는 거다." - 결국 세상을 구원하는 건 가족의 힘, 가족주의라는 얘긴가. "그건 아니다. 가족들은 오로지 납치된 딸 현서(고아성)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한강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세상에 맞서겠다는 자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한강을 뒤지며 현서를 찾다 보니 괴물과 맞닥뜨리게 되는 거고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는 것뿐이다. 근데 실제 한국 사람들도 그렇다. 어떤 재앙에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그 원인을 다 개인화시킨다. 영화에서도 그렇다. 강두(송강호)는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 현서의 손목을 놓쳤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린다. 남일(박해일)도 그 점을 들어 강두에게 발차기를 날리는 거고. 물론 그런 모습이 어리석다는 건 아니다. 현실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하고 서로를 원망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거다. 그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서글프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사실 영화에서 정치적인 코멘트와 가족들의 이야기는 평행선을 달리지 교차되지 않는다." - 근데 때론 영화속 가족주의가 과장돼 보인다. 판타지적이기까지 하고. "그런 측면에서 합동 분향소 장면이 리얼한 가족의 모습에서 판타지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넘어가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전까지는 가족이 다 모이는 장면이 없다. 합동 분향소 장면에서 현서에 대한 가족들의 감정의 실체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매우 리얼하게 분출됐다고 생각한다." - 어떤 면에선 현서를 둘러싼 가족 모두 '결핍감'을 갖고 있는 인물들로 보인다. 맞다.현서는 가족들에게 희망과 같은 존재고 우리 모두 어쩌면 희망이 결핍돼 있다. -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괴물>까지 정서적인 측면에서 당신의 영화는 모두 쫓거나 쫓기고, 어떤 일을 해결해야 하는 신경증적 강박증, 시대적 노이로제가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들이다. "내가 워낙 불안정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마다 노이로제나 히스테릭한 감성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번 영화가 전작들에 비해 더 단순하고 낙관적인 편이다. 나 스스로 <플란다스의 개>의 윤주(이성재)나 <살인의 추억>의 형사들에게 혐오와 동시에 측은한 감정을 함께 느꼈다면 <괴물>의 가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가족들 모두가 어딘가 못나고 서민적인 캐릭터들이었고 그들에 동조해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결말도 결국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다른 가능성을 남기니까 개중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한강 다리에서 자살하는 남자의 모습을 담은 첫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톤을 결정한다는 느낌이었다. "맑은 날 촬영한 장면이었는데 그 회색 구름과 톤은 전부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거다. 영화에서 환한 햇빛이 나오는 부분은 괴물이 나오기 전 초반 한강 풍경이 전부다. 괴물의 습격 이후로 영화는 다시 첫 장면의 어두운 톤으로 진행된다. 클라이맥스에서는 묵시록이나 생지옥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괴물 ⓒ프레시안무비
- 강두가 병원에서 도망쳐 한강으로 돌아온 장면에서 거대한 한강 다리 앞에 뒷모습으로 서 있는 강두의 모습을 담은 화면도 좋았다.마치 프릿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를 보는 것 같았다. "수직적인 한강 다리의 압도적인 이미지가 주효했다고 본다. 거대한 다리 앞에 선 강두의 뒷모습이 왜소하게 느껴지지 않나. 얼마 뒤에 펼쳐질 현서의 비극을 예고하는 장면이었다. 그런 느낌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반지의 제왕>을 통해 뉴질랜드의 대자연이 중간계의 공기를 입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한강을 보면서 영화를 떠올리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괴물의 사실감이 기대 이상이다. "2001년 영화 구상 당시 제일 먼저 접촉했던 컴퓨터 그래픽 업체는 뉴질랜드의 '웨타 워크숍'이었다. 그 때는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개봉하기 전이라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좋은 분위기에서 같이 일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회사가 <반지의 제왕>으로 곧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오랜 시간 협의 끝에 협상이 결렬됐고 결국 할리우드의 신생 비주얼 업체 '오퍼너지'와 손을 잡고 작업을 진행했다." - 이 영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었던 게 한두번이 아니겠다. "사실 크랭크 인 두 달 전까지 사실적인 괴물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근원적인 공포에 시달렸다. 괴물의 시각적 이미지를 구성하고 시각 효과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험난했다. '웨타 워크숍'과의 협상이 결렬됐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 얘기 하려니까 목이 다 멘다. 다행히 2004년에 <살인의 추억>이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초청되어 방문했을 때, 그곳 지인들을 통해 '오퍼너지'라는 회사와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 회사에 박재우씨라는 한국 사람이 기술 감독으로 있어서 쉽게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만약 '웨타 워크숍'에만 목을 매고 있었다면 아마 지금 다음 달 크랭크 인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봉준호 감독 ⓒ프레시안무비 김정민 기자
- '오퍼너지'와의 작업은 어땠나? "할리우드의 'ILM'이나 '소니이미지웍스', '디지털 도메인' 보다는 한 수 아래로 평가 받지만 '오퍼너지'도 좋은 회사다. 회사 이름에 사연이 있는데, 조지 루카스의 매너리즘이 싫어서 'ILM'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만든 회사라 '고아'라는 뜻의 이름을 붙인 거다. 그만큼 사람들이 젊고 개방적이다. 대개가 'ILM'에서 <스타워즈>나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티스트 개개인으로 보자면 필모그래피가 화려하다. 더구나 내부에 한국인 아티스트가 있어서 의사소통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 이 영화가 우리나라 괴수영화의 매뉴얼의 초석이 될 텐데. " 누군가 이 비슷한 영화를 찍는다고 할 때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 곧 한국 내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 아티스트의 집중력은 압도적인 수준인데 그걸 조직할 시스템이나 노하우가 부족한 실정이다." - 앞으로 작품 계획은? " 일단 놀 거다.(웃음) 엄마와 아들에 관한 얘기를 구상해서 작년부터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게 있다. 프랑스 만화책 판권도 하나 사 놨는데 꼭 영화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다. 지난번 칸에 갔을 때 원작자도 만났다. 앞으로는 이번처럼 삼 년에 한편 말고 꼭 이 년에 한편씩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행: 오동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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