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에게 고함>은 김영남 감독의 첫 번째 영화이고, <쓰리 타임즈>는 세계적인 거장 허우 샤오시엔의 열여덟 번째 영화다. 이처럼 갓 데뷔한 신인감독의 영화와 세계적인 거장의 영화를 비교한다고 하면 영화를 만든 당사자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신인감독으로서는 당연히 부담스러울 것이고, 거장으로서는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연륜과 경력의 차이야말로 이 두 편의 영화를 함께 비교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다. 김영남 감독의 <내 청춘에게 고함>이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쓰리 타임즈> 모두 세 쌍의 연인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영화다. 두 감독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 쌍의 연인들은 이야기 전개상 아무런 관계도 없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 이보다 앞서 연인들에 대한 옴니버스 영화를 만든 바 있는 왕가위 감독은 <중경삼림>과 같은 영화에서 인물들이 한 공간에서 스쳐가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아주 느슨하게나마 등장인물들 사이의 연관성을 표현하곤 했지만, 김영남 감독이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에서는 이런 미약한 연관관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독립된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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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감독의 <내 청춘에게 고함>은 동일한 시간대에 속하는 세 쌍의 연인들의 사랑을 추적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20대 초반의 무용과 학생과 그의 남자 친구이며, 두 번째 에피소드는 20대 후반의 공중전화 수리공 근우와 이웃집 여인 사이의 기이한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결혼한 30대 초반 부부의 모습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일종의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다. 비록 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근우를 제외한 이 영화 속 모든 등장인물들이 사랑에 대한 믿음이나 열정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겪는 심적 고통의 원인이 잃어버린 사랑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여전히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자들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세 쌍의 연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허우 샤오시엔의 <쓰리 타임즈>는 제목 그대로 세 개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연애몽', '자유몽', '청춘몽' 세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각각 1911년, 1966년, 2005년 세 가지 시대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대만의 역사가 일상 속에 녹아든 영화를 만들어 온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개인의 연애사 속에 시대성을 끌어들이고 있다. 감독의 설명을 빌리면, 1966년은 대륙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났던 해이고 냉전이 시작되면서 대만이 폐쇄적인 분위기로 흘러갔던 시기다. 하지만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오히려 더 순수한 사랑에 몰두하곤 했다. 1911년은 청이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세워졌던 해다.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이 시기는 남녀 간의 사랑의 방식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생겼던 시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현재 시점인 2005년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사랑보다는 육체적 사랑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다. 감독은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대에 속한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을 살펴보면서 사랑의 의미를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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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에게 고함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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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30대의 김영남 감독에 비해 60대의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사랑과 청춘에 대해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내 청춘에게 고함>의 인물들은 육체적으로 젊지만 정신적으로는 심한 피로와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극중 인물 중 유일하게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는 인물인 근우마저도 세상에 대해서는 극도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너무 일찍 세상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지쳐버린 듯한 이들을 통해 드러나는 청춘의 모습은 쓸쓸하고 불안해 보이며 그들의 사랑 또한 덧없게만 느껴진다. 청년기를 막 통과한 감독의 눈에 삶이란 담장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운 일이다. 따라서 섣불리 뒤돌아보기보다는 조심조심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겨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다 발을 헛딛고 추락하기를 되풀이한다. 그래서인지 'Do not look back'이라는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내 청춘에게 고함'이라는 우리말 제목과 어우러져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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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타임즈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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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에게 고함>이 청춘에 대한 체험적 영화라면 <쓰리 타임즈>는 청춘에 대한 관찰의 영화다. 이른바 '대만 3부작' 이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에서 청춘은 중요한 영화적 소재로 등장한다. 일찍이 <펑쿠이에서 온 소년>(1983), <동동의 여름방학>(1984), <동년왕사>(1985)와 같은 자전적인 성장영화를 만들어 온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남국재견>(1996)이나 <밀레니엄 맘보>(2001), <카페 뤼미에르>(2003)와 같은 영화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서 젊은이들의 삶을 바라본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청춘의 속성이 그런 것처럼 하나같이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존재들이다. <밀레니엄 맘보>의 주인공 호스티스 비키는 건달 남자친구로부터 떠나지 못하고, <카페 뤼미에르>의 요코는 미혼모가 되겠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부모를 놀라게 만든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적 고민은 자기 한 몸 건사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이 젊은이들을 어떻게 이해할까라는 문제다. 자신의 체험(연애몽)과 선조의 삶에 대한 상상적 체험(자유몽) 그리고 현실에 대한 관찰적 체험(청춘몽)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쓰리 타임즈>는 60줄에 접어든 감독의 회고담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시대에 대해 답을 구하는 모색의 영화다.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에서 놀라운 점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 대한 노감독의 예의와 존중의 태도다. 마치 <카페 뤼미에르>에서 요코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그를 돌보곤 했던 친구 하지메처럼 허우 샤오시엔은 완전한 이해나 소통이 불가능한 이 세대를 염려와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들 삶에 존재하는 진정성을 살핀다. 비록 기성세대의 눈에 그들은 하릴 없이 거리를 누비고, 사랑 없는 섹스에 몰두하고, 최소한의 책임도 회피하려하는 존재들로 비칠지라도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앞으로의 세상은 그들의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낙관과 비관보다 앞선 세상의 순리인 것이다. 덧붙임: <쓰리 타임즈>는 허우 샤오시엔 영화 세계의 요약판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소재나 형식면에서 이 영화의 세 개의 에피소드는 감독의 영화 세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감독 자신도 '연애몽'은 <펑쿠이에서 온 소년>, '자유몽'은 <상하이의 꽃>, '청춘몽'은 <밀레니엄 맘보>와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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