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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에 담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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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연기에 담긴 진실

[김이석의 올드&뉴]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와 웨인 왕의 <스모크>

언제부턴가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곧 영화산업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괴물>을 이야기할 때도 영화의 완성도나 영화의 주제보다는 박스오피스 실적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영화가 제작부터 배급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할뿐더러 그 부차적인 효과(예를 들어 한류현상)도 경제적인 지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관객 숫자가 곧 영화의 가치인양 이야기되고 고용효과가 영화제의 평가 기준인양 제시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처럼 자본의 예속이 심하고 시행착오에 대한 관용도가 낮은 탓에 영화감독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에 비해 대단히 큰 편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영화감독은 자본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일까? 불행히도 그 대답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압력을 피해나가는 감독들이 존재한다.
커피와 담배 ⓒ프레시안무비

우디 알렌, 스파이크 리와 함께 뉴욕 영화의 대표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짐 자무시가 그런 경우다. 최근 개봉한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총 1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1986년 첫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이후 마지막 에피소드가 완성되어 극장에 개봉될 때까지 무려 17년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말라르메와 같은 시인은 자신의 시를 평생에 걸쳐 고쳐 썼다고 하지만 짐 자무시가 말라르메와 같은 이상적인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이 오랜 시간을 투자한 것은 아니었다. 짐 자무시 감독은 친구들과 어울려 틈나는 대로 '커피와 담배'를 소재로 한 짧은 에피소드들을 영화로 만들었으며, 17년간의 즐거운 작업 끝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흥미진진한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웨인 왕과 폴 오스터의 영화 <스모크 Smoke>(1995)는 짐 자무시의 영화에 비하면 다소 전통적인 독립 영화의 제작 방식을 따른 영화다. 폴 오스터가 뉴욕타임즈에 성탄 특집으로 썼던 짧은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각색한 이 영화에는 마틴 스콜세지, 로버트 알트만 등을 지원해 온 웨인스타인 형제가 제작자로 참여하였으며 미국 인디영화의 단골배우인 하비 케이틀, 포레스트 휘태커 등이 등장한다. 뉴욕의 한 담배 가게 주인인 오기와 그의 가게에 들르는 손님들의 일상적 삶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는, 인간에 대한 한없는 '측은지심'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듣는 원작자 폴 오스터의 문학적 세계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스모크 ⓒ프레시안무비

짐 자무시와 웨인 왕의 영화에 공통된 모티브로 등장하는 것이 담배다. 두 편의 영화 속에서 담배는 늘 사람들의 손끝에 매달린 채로 그들의 일상적인 희로애락에 동참한다. 담배는 베니니의 수다스런 대화와 이기 팝과 톰 웨이츠의 우스꽝스런 자존심 싸움의 목격자이며 아내를 잃은 소설가 폴의 고독한 글쓰기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공중으로 흩어지는 담배연기는 별다른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을 닮았다. 하지만 그 한없이 가벼운 연기 속에 담긴 인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이 두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미덕은 이들이 창작자로서 기본적인 윤리를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와 명예 이전에 자기 가슴 속에 솟구치는 표현의 욕구와 창작의 쾌감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말이다. 마치 작가가 막 떠오른 아이디어를 위해 노트북을 펼치듯,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붓을 드는 화가처럼 이 감독들은 자신의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영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들은 개인적이고 단순하고 즐거우면서도 정직한 영화들이다. 장 뤽 고다르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면 글을 쓸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자기 영화에 투자하려는 제작자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을 때, 이 반골 감독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거기에는 어떤 망설임이나 쑥스러움, 자괴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롭게 발견한 이 매체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즐긴다. 그래서 후기 고다르의 영화들은 어떤 점에서 초기 영화들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 준다. 고다르만큼 전복적이지는 않지만 이 두 편의 영화 역시 영화에 대한 우리의 기존 관념에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도전이 되고, 관객의 기호에 영합하기보다는 자신이 체험한 생의 진실을 표현하는 영화들. 이런 영화들 덕분에 우리는 세상에 참 많은 영화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들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스모크>에는 담배 연기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인용되어 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애연가였던 럴리 경과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내기를 한다. 재치가 넘치는 럴리 경은 피우지 않은 담배의 무게를 잰 후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그 재를 조심스레 저울 위에 털고서는 담뱃재와 남아있는 꽁초의 무게를 함께 잰다. 피우지 않은 담배의 무게에서 담뱃재와 꽁초의 무게의 합을 빼면 그것이 연기의 무게라는 것이다. 하지만 깃털보다 가벼운 담배 연기 속에 담긴 생의 무거움과 깊이를 어떻게 저울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옛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삶의 가치, 예술의 가치, 문화의 가치를 정량적(定量的)인 기준으로만 판단하려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있다. 덧붙임:<스모크>의 원작자인 폴 오스터는 비공식적으로 이 영화의 연출에 관여했다. 이후 그는 <스모크>의 후속작인 <블루 인 더 페이스>에 공동연출자로 참여했고 1998년에는 자신의 소설 <룰루 온 더 브릿지>를 직접 연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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