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코프스키와 소더버그의 영화 <솔라리스>는 폴란드의 SF소설가 스타니슬라프 렘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SF 작품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1961년 발표된 렘의 소설은 SF소설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작품이다. 두 개의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솔라리스'. 심리학자 켈빈은 이 행성 주변에 머물면서 행성을 관찰하고 있던 우주정거장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의 실태를 조사하고 연구원들의 심리상태를 검진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캘빈은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자살하거나 미쳐가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원인이 사람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솔라리스'의 기이한 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구원들이 '방문자'라고 부르는 이 존재들은 환영임에도 불구하고 실체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은 구체적인 형상들이었다. 켈빈 앞에도 10년 전에 자살한 아내가 나타나고 켈빈도 다른 연구원들처럼 충격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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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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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렘은 인간의 상식과 지식의 범주를 초월하는 존재를 통해 우주 공간의 광대함에 비해 협소하기만한 인간세계를 드러냄으로써 우주 공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기억, 무의식적인 욕망을 물질화시키는 괴행성 '솔라리스'다. 초자연적인 실체와의 대면에서 존엄성을 상실하고 무너져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이 소설 속에는 인간들이 즐겨 다루곤 하는 우주정복의 신화 따위가 들어설 틈이 없다. 렘은 우주란 확장된 지구가 아니며, 인간은 광대한 우주 공간 속에 한 점만도 못한 지구에 속한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전 작인 <안드레이 루블료프>에서 드러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적 이상은 소비에트 정권에 의해 말살된 러시아의 문예전통을 자신의 영화를 통해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비록 원작자가 동구권 출신이라고는 해도 러시아적 전통과 SF소설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타르코프스키적인 세계가 살아있는 독창적인 SF영화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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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소더버그의 <솔라리스>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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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두 개의 비화가 있는데, 첫 번째는 타르코프스키가 이 소설의 영화화를 결정한 이유다. <안드레이 루블료프> 이후 번번이 소련 당국의 방해로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타르코프스키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에게 덧씌워진 민족주의적 색채를 지우고자 하였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다민족 체제인 소비에트 연방의 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감독의 창작활동을 제한하고 있던 소련 당국으로서도 이 제안을 물리치기는 어려웠다. 이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당시 미국과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던 소련 정부가 미래사회와 우주 공간을 다룬 이 영화가 소련 우주산업의 우월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르코프스키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대거 삽입하고, 우주 에피소드 또한 대부분 우주선 내부에서 전개되도록 함으로써 소련 당국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리고 말았다. 이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들인 것은 <타이타닉>의 감독 제임스 카메룬이었다. 제임스 카메룬은 직접 이 영화를 연출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자 당시 <트래픽>, <오션스 일레븐> 등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던 스티븐 소더버그에게 이 영화의 연출을 맡긴다. 소더버그의 단짝이기도 한 조지 클루니의 합류는 새로운 <솔라리스>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앞서 말한 것처럼 타르코프스키는 렘의 원작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원작과는 달리 타르코프스키는 이 영화에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기억을 물질화시키는 행성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참모습과 직면하게 만든다. 추악한 괴물에서부터 자신 때문에 고통 받다가 자살한 아내에 이르기까지 솔라리스가 회생시킨 기억들은 모두 인간의 내면에 실제로 잠재되어있던 것들이다. 타르코프스키는 '솔라리스'의 초월적인 힘을 빌려 인간들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인간들의 욕망은 얼마나 추악한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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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의 원작보다는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재해석에 가까운 소더버그의 <솔라리스> 또한 우리가 잊고 지내는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더버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캘빈과 그의 아내 해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럼으로써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나 렘의 원작과는 달리 소더버그의 영화는 '사랑의 상처' 혹은 '잘못된 사랑'이 남긴 회환, 그리움 등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연출 덕분에 소더버그의 영화는 좀 더 쉽고 선명하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렘의 원작이나 소더버그의 영화와 크게 다른 점은 타르코프스키가 이 나약하고 추악한 인간들이 어떻게 위로받고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는 점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캘빈이 되살아난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캘빈의 어머니가 캘빈의 몸을 닦아주는 장면이 비중 있게 그려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렘의 주인공, 회한에 사로잡혀 우두커니 서있는 소더버그의 주인공과 달리 타르코프스키의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고 겸손히 무릎을 꿇는다. 엄청난 줌 아웃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타르코프스키는 예술가의 권리로서 나약한 존재 크리스 캘빈이 속죄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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