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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무엇을 할 것인가?

[김이석의 올드 & 뉴] 딜런 에이버리 감독의 <루스 체인지>와 지가 베르토프의 <키노-프라우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도 5년이 지났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던 충격적인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자리에는 추모공원이 조성되었고 77층 규모의 추모탑도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추모탑이나 추모 공원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격소리는 이날의 상처를 충분히 환기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이미 너무 유명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22살의 신예 딜런 에이버리 감독이 만든 9.11 테러에 관한 영화 <루스 체인지 Loose Change>는 5년 전에 벌어진 이 끔찍한 사건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 담긴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다. 딜런 에이버리 감독은 9.11 테러가 아랍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이 아니라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시 정부가 자국민을 대상으로 만들어낸 자작 테러극이라고 주장한다. 60년대 미국 군부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항공기 테러 조작 음모, 9.11 당시의 각종 보도자료, 미국 정부가 내놓은 9.11 테러 공식보고서, 그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감독은 이 사건이 철저히 기획되고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여기서 언급된 내용들의 진위는 쉽게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감독의 주장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루스 체인지 ⓒ프레시안무비
이 영화에서 그 내용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감독과 제작자가 선택한 도발적인 배급방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다. 2005년 말 DVD로 발매되었던 이 영화는 올해 6월경 인터넷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세계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된다. 전통적인 배급방식을 완전히 포기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한줌도 안 되는 반역자들에게 납치당했다. 이 정보를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눠라. 이 정보를 퍼트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상영회든 회의든 뭐든지 다 해라! 당신에게 달렸다!" 전세계의 네티즌들은 감독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 등을 통해 이 영화를 홍보하는가하면, 각국의 언어로 된 번역판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화의 역사상 이처럼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관객의 호응을 경험한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영화가 제작되고 유통되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루스 체인지>는 영화가 탄생한 이래 100년이 넘게 유지되어 온 전통적인 영화 시스템, 즉 극장에 가서 표를 사서 영화를 보는 시스템을 배반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루스 체인지>의 감독과 제작자가 이처럼 급진적인 배급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이 무슨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마 그들은 카메라를 처음 손에 들었던 영화사 초기의 감독들처럼 자기들의 카메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로, 정상적인 배급방식에서 인터넷을 통한 무료 다운로드 방식으로 영화의 장르와 배급 전술을 바꾸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기존의 영화 시스템과 결별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런 종류의 영화가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밟아 박스오피스에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루스 체인지 ⓒ프레시안무비
영화사에는 <루스 체인지>의 경우보다 훨씬 더 급진적으로, 훨씬 더 체계적으로 영화 시스템과 충돌했던 감독들이 존재한다. 특히 지금과 같은 영화 시스템이 정착하기 이전의 초기 영화사에서 이런 사례가 빈번하게 발견되는데, 이중에서도 가장 실천적인 사례는 역시 20년대와 30년대의 소비에트 영화일 것이다. 중요한 영화사적 업적을 남긴 많은 소비에트 감독들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가장 급진적인 영화감독을 꼽으라면 지가 베르토프 Dziga Vertov를 들 수 있다. 아직 영화의 규범이 뿌리내리지 않았던 이 시대에 영화감독들은 창작자보다는 영화라는 새로운 표현매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실험자에 가까웠다. 실험자 베르토프를 매료시킨 것은 영화와 현실 두 가지였다. 감독은 영화에서 이전의 예술적 형식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재현과 표현능력을 발견하였다. 당시 소비에트 사회는 혁명을 성공시킨 자들의 환희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베르토프가 보기에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할뿐더러 편집을 통해 마술과 같은 효과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라는 장치는 혁명 직후의 열정과 환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였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새로운 예술, 그것이 바로 영화였다. 이런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당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상업적 영화 시스템과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베르토프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는 예술의 바벨탑을 폭파할 것이다." 베르토프는 이전까지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구경거리에 불과했던 영화를 진실을 말하는 매체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자신이 기획한 기록 영화 <키노-프라우다 Kino-Pravda>(1922-1925), 즉 '영화-진실'을 위해 베르토프는 소련의 광활한 영토를 누빈다. 그리고 자신의 카메라에 전차가 활보하는 대도시와 트랙터가 힘차게 밭을 가는 농촌의 모습을 담는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보드카를 들이키며 흥겹게 춤을 추는 농부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들, 생기발랄한 사람들, 살아 움직이는 세계의 모든 것이 베르토프에게는 새로운 영화적 질료들로 다가온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극장에서, 광장에서, 공장에서, 농촌에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사람들을 위해 상영되었다. 베르토프는 자신과 세계를 연결시켜 준 '영화'에 대한 벅찬 열정과 감동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나는 키노-아이(영화-눈)이다. 나는 건설자다. 나는 내가 오늘 창조한 당신을, 역시 방금 전 내가 만들어내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특별한 방에 집어넣었다. (...) 나는 키노-아이. 나는 아담보다 더 완벽한 인간을 창조한다. (...) 나는 키노-아이. 나는 어떤 한 사람에게서 가장 강하고 기술을 가진 손을 취한다. 또 다른 사람에게서는 가장 빠르고 가장 균형 잡힌 다리를, 세 번째 사람으로부터는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머리를 취한다. 그런 다음 나는 몽타주를 통해 새롭고 완벽한 사람을 창조한다."
키노-프라우다 ⓒ프레시안무비
오늘날의 영화에서 베르토프가 느꼈던 열정과 환희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영화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상품들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창의적인 감독들마저 팝콘봉지처럼 버려질 영화를 생산하느라 그들의 청춘과 재능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역사는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시스템이 영화가 가진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딜런 에이버리의 <루스 체인지>는 영화가 여전히 발현되지 않은 많은 가능성을 가진 매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잠재된 가능성을 어떻게 실재화할 것인가? 베르토프는 이렇게 답한다. "무대는 작다. 제발 삶 속으로 나오라. 이곳, 우리가 일하는 곳으로." 덧붙임 : 베르토프의 인용문은 『키노아이, 영화의 혁명가 지가 베르토프』 (김영란 옮김, 이매진, 2005)에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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