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로서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필자는 구의원으로 당선된 뒤인 지난 8월 2일 건강한 딸아이를 출산했다. 두 달가량의 산후조리기간을 마치고 의원 활동을 재개했지만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필자를 대신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침마다 피곤한 모습으로 현관문을 여는 친정 어머니, 엄마 젖 대신 젖병을 빨아야 하는 아이를 보며 집을 나설 때면 육아와 사회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복귀 후 지역 주민들로부터 출산 축하 인사를 넘치게 받으면서, 그래서 더욱 강북구에 한 명밖에 없는 민주노동당 구의원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격려를 받으면서 두 달의 공백을 보상하도록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곤 한다.
공교롭게도 이번 회기에 필자가 상임위에서 첫 번째로 심의하게 될 안건이 바로 '강북구 영유아보육조례개정 주민발의안'이다.
이 안이 어떤 것이던가. 지난해 강북구 '꿀꿀이죽 사건'으로 촉발된 '영유아보육조례개정 주민발의운동'이 7000여 명의 주민 서명을 받으며 입법적 결실을 목전에 둔 듯 했으나 구청의 늑장 대응으로 결국 4대 구의회 임기만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됐던 안이다. 구청에 항의 면담을 가고, 항의 기자회견을 한 끝에 가까스로 5대 구의회에 재상정하기로 약속 받아낸 안이다.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던 그 주민발의안을 간신히 살려내 심의를 앞두게 됐으니 필자의 감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강북구 개청 이래 최초의 '주민발의' 안을 다루게 된 만큼 민의에 기반을 두고 섬세하고 적극적으로 심의해야겠다는 의지도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안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과정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구청 측에서 구의회에 주민발의안을 상정하면서 함께 첨부한 의견서의 내용이 필자를 긴장시켰다. 대부분 예산부족과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의원들도 주민발의안을 원안대로 처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주민들이 요청한 해당 상임위원들과의 간담회도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구의회에서 다뤄지는 모든 법안은 신중하고 적극적인 마음가짐으로 혹여 지역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을지 살뜰하게 살펴야 하는 것이 기본일 것이다. 특히 지역의 7000여 주민들이 일일이 서명하여 만들어진 주민발의안인 다음에야….
필자는 올해 서대문구민 8000여 명이 서명·발의한 서대문구 영유아 보육조례 전부개정안이 사실상 폐기되고, 공공보육·참여보육·안심보육과는 거리가 먼, 기존의 보육조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서대문구청의 개정안을 중심으로 통과되었던 예를 익히 알고 있다. 구로구에선 학교급식조례 주민발의안이 의회에서 부결된 사례도 있었다.
두 사례는 주민의 뜻을 받들라고 뽑아줬더니 구청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구청의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는 모양을 만천하에 드러내며 지방자치의 정신을 짓밟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강북구에서도 두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 되풀이되지는 않을까 솔직히 우려스럽다.
그러나 현실을 탓하며 주저앉아 있거나 한 숨만 쉬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주민들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보육조례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 될 수 있도록 강북구의원 모두를 설득해 나가는 데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보육은 우리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다. 사실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만큼 좋은 세상이 어디 있는가. 아이 키우기 좋은 강북구를 만들자는 취지에 결국은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 갓난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구의원으로서 필자가 이 일에 열의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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