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욕조 안에 들어가 있는 남자의 커다란 성기가 보인다. 장면이 바뀌면 이번엔 거칠게 섹스를 하는 남녀의 모습이 나오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돈을 받고 SM(사도마조히즘)을 주도하는 펑크족 여성이 나와 거칠게 욕을 해댄다. 그렇다면 이건 포르노인가?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섹션에 소개된 존 카메론 미쳴 감독의 <숏버스>는 영화제 전부터 강렬한 섹스 코드로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왔다. 이 영화를 두고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얘기해 왔다. "섹스얘기가 없으면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영화다." 하지만 그 정도의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영화에는 마치 예전의 <살로, 소돔의 120일>에서 파올로 파졸리니가 그랬던 것처럼 한떼의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나뒹구는 난교파티까지 나온다. 게다가 그 난교파티 장면은 거짓이 아니다. 모두가 다 리얼섹스의 장면으로 관객들을 바짝 긴장시킨다.
 |
|
숏버스 ⓒ프레시안무비 |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야하고, 거칠고, 도발적이며, 파격에 파격을 가하는 장면들을 통해 이 영화를 만든 존 카메론 미쳴 감독이 하려는 얘기는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쳴 감독은 극중 인물인 숏버스(영화제목이기도 한 숏버스는 뉴욕 브루클린에 실제로 있는 언더그라운드 동성애 섹스바의 이름이다)의 마담 저스틴 본드(극중 이름과 실제 이름이 같다)를 통해 이런 얘기를 한다. "이 방엔 폭탄같은 건 없어. 여긴 그저 섹스의 궁전일 뿐이지." 펑크족 SM플레이어 세브린(린제이 비미쉬)이 채찍으로 남자들의 엉덩이를 후려 치는 호텔방도 대개는 '그라운드 제로'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남편과의 과격한 섹스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는 성문제 카운셀러인 소피아(이숙인)가 저스틴 본드와 나누는 대화의 상당 부분은 '전쟁보다는 섹스가 낫다'는 주제로 모아진다. 동성애 커플인 제이미와 제임스는 또 한명의 남자 게이를 만나 동성애 쓰리섬(threesome)을 시도한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하는데는 세상의 관습과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는 자유연애를 시도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이러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영국의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자, 성의 혁명을 치르라'고. 그래서인지 <숏버스>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존 카메론 미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려는 바는 좀더 뚜렷해지고, 또 좀더 정치적으로 변해 간다. 영화 <숏버스>는 한마디로 성정치학을 통해 급진좌파의 이데올로기를 스크린에 슬쩍 얹히려고 시도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된 캐릭터들 옆에서 이야기의 양념거리를 맛깔스럽게 뿌려대는 숏버스 마담 저스틴 본드는 한껏 우아한 트랜스젠더의 자태를 뽐내며 이렇게 얘기한다. "한때 세상을 바꾸려 했도다. 하지만 이제는 퇴장할 때를 스스로 알도다." 저스틴의 얘기대로 한때 세상의 변화를 꿈꿨던 자들은 이제 숏버스와 같은 이상야릇한, 하지만 자기들만의 공간으로 도피해 9.11이후 불어대는 광풍의 세상분위기가 끝나기를 숨죽여 기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 <숏버스>는 그래서, 매우 급진적이고 매우 좌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좌파답지 않게 비관적이고 냉소적이며 또 그래서 역설적인 유머가 가득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쓰라리지만 무척이나 낭만적인 구석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도 그때문이다.
 |
|
숏버스 ⓒ프레시안무비 |
남자든 여자든 성기가 정면으로 나오고 배우들인지, 실제 인물들인지 이 사람 저 사람 뒤섞여 진짜 섹스를 해대고 있지만 <숏버스>를 보면서 영화 내내 감독과 배우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을 변하게 하는 건, 새로운 시도이며 그 새로운 시도를 행할 수 있는 용기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랑의 섹스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건 당장은 서글픈 일이겠지만 그 섹스를 통해서라도 우리가 소통하고 가까워질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세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영화 <숏버스>는 살며시 속삭이고 있다. <숏버스>는 보는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흥분시키되 성적으로 발기시키는 영화가 아니다. 많은 포르노는 사람들을 성적으로 발기시키되 감정적으로 흥분시키지 않는다. 이 영화 <숏버스>가 결코 포르노가 아닌 것은 그 때문이다. (* 이 글은 문화일보 '오동진의 동시상영관'에 실린 글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