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의 '옥중 스승'이었던 노촌 선생은 1980년 출소 후 '이문학회(以文學會)'라는 한학 관련 모임을 만들어 후학양성과 작품활동에 힘써왔다. 시인 신경림, 한명숙 국무총리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 문우서림 김영복 대표, 가수 박치음 등이 그의 제자다.
노촌 선생의 제자인 김명호 교수의 추도사를 싣는다. <편집자>
원로 한학자이자 한말 의병사 연구가이신 노촌(老村) 이구영(李九榮) 선생께서 지난 20일 별세하셨습니다. 일부 언론에 '북 공작원 출신 장기수 한학자'로 소개되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 신영복 교수의 옥중 스승으로 세간에 알려진 바로 그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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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노촌 선생님! 이제 저희들 곁을 정말 떠나시는 겁니까. 외유내강의 강인한 의지로 그동안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몇 번이나 기적적으로 회생하신 선생님이셨기에, 며칠 전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시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볼 적에도 또 한 번의 기적을 믿는 마음 아주 없지 않았는데, 이는 결국 불초제자의 어리석은 희망이었을 뿐입니다. 한국현대사의 거센 탁류 속에서 파란만장했던 팔십여 년 세월을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끝까지 꿋꿋하고 깨끗하게 살아내신 선생님께 충심으로 깊은 존경을 바치며 삼가 영전에 통곡하옵니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 지금은 충주댐으로 수몰지구가 되고만 충북 제천의 산골 마을에서 명문 양반가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지요. 남한강의 지류와 월악산의 한 자락이 만나는 선생님의 아름다운 고향은 한말 의병항쟁의 한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고향을 각별히 사랑하여 아호도 고향마을 이름을 따서 노촌이라 지으셨지요.
생전에 신영복 교수와의 대담에서 술회하셨듯이 '<시전(詩傳)>과 육혈포'야말로 선생님의 삶을 집약한 상징물이라 하겠습니다. 일찍이 선생님의 선친께서는 두꺼운 <시전>의 책 가운데를 도려내고 그 속에 육혈포를 감추어서 만주로 퇴각한 의병부대에 보내셨다지요.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에 주자의 해설을 붙인 책 '<시전>'이 곧 양반 출신으로 한학을 독실하게 수학하신 선생님의 유학자로서의 일면을 상징한다면, 그 속에 간직한 '육혈포'는 의병항쟁에 헌신한 선친과 작은아버님의 뒤를 이어 항일운동과 통일운동에 떨쳐나섰던 운동가로서 선생님의 실천적인 삶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유학자요 '의병의 후손'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선비정신으로 당대의 사회운동에 투신한 것이 아니셨습니까.
생전에 선생님은 "그 시대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당신의 사상적 중심이었노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한 말씀대로 평생을 살다 가신 선생님의 기구한 인생 역정은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자서전에 소상히 밝혀져 있으니 다시 무얼 덧붙이겠습니까. 아무쪼록 이 책이 잊히지 않고 한국현대사의 소중한 증언으로서 두고두고 널리 읽히길 바랄 따름입니다.
1980년 선생님은 장장 22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한학을 연구하던 '인생의 원점'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옥중에서 필생의 과제로서 착수했던 한말 제천 지방의 의병 사적 정리를 마무리하는 한편, 한학 연구모임인 이문학회(以文學會)를 결성하여 오늘날까지 열성적으로 이끌어 오셨지요. 선생님께서 편역하신 <호서의병사적(湖西義兵事蹟)>은 한말 의병사 연구에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헌이 되었고, 이와 같이 의병사 연구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선생님은 1998년 제천시 문화상을 수상하셨지요. 그리고 독립기념관에 의병 관련 자료를 기증한 데 이어 다시 제천시에도 무려 6천여 점의 귀중한 자료를 기증하시어, 금년 7월 제천시 장락동에 성대하게 건립된 의병도서관에 소장되기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어짊을 돕는다'는 <논어>의 한 구절에서 이름을 따온 이문학회는 선생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문학회는 나날이 발전하여 2000년대 들어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고택에 새 둥지를 마련한 뒤부터는 매주 두 차례 강독회를 열고 매월 학회지도 발간하며, 예술인들을 초청하여 공연 마당을 열기도 하는 등으로 더욱 활기찬 활동을 벌여 왔지요. 그리고 2004년에는 선생님의 한시와 산문을 모은 문집이 <찬 겨울 매화 향기에 마음을 씻고>란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작년 5월에는 선생님의 글씨를 모은 서예전도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지요.
아아, 그러나 노촌 선생님! 기어코 선생님과 영결할 순간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선생님을 모신 영구에는 신영복 교수가 손수 쓴 명정이 덮였습니다. 선생님의 단아하신 모습, 해맑고 천진하신 미소, 조용조용 말씀하시던 음성을 다시 어디서 뵙고 어디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장차 '국내 최초의 한문대학'을 창설하려던 원대한 포부는 이루지 못하셨지만, 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제자들에 의해 이문학회는 굳게 지속되고 발전할 것입니다. 분단으로 인해 끝내 만나지 못한 북의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책임감도 부디 잊으시고, 천민자본주의에 찌든 추악한 인간들로 인해 받으셨던 고통에서도 놓여나서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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