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토프 강스
출연 라다 미첼, 데보라 웅거, 숀 빈
수입,배급 미로비전 |
등급 18세 관람가
시간 124분 | 2006년 뉴미디어의 지각 변동에 민감한 관객이라면,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E3 같은 세계적인 게임 엑스포의 중심 주제는 '영화와 게임'이었으며, <대부><스카페이스> 같은 작품들이 속속 게임으로 발표되었다. 반대로 영화보다 더 뛰어난 서사 구조와 시각적 장치를 가지고 있는 멋진 게임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타깃이 되어 스크린으로 옮겨진다. <툼레이더><레지던트 이블> 등은 그런 작품 가운데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경우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데드><블러드 레인><얼론 인 더 다크> 등은 게임 팬들의 맹비난을 받은 데다 영화 팬들마저 고개를 돌린 작품이다. 그렇다고 게임 원작 영화를 얕잡아 볼 것만은 아니다. 그 자신 열렬한 게임 팬인 크리스토프 강스 감독의 <사일런트 힐>은 지금까지 발표된 게임 원작 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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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힐 Silent Hill ⓒ프레시안무비 |
일본의 코나미 사가 발표한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인 <사일런트 힐>은 호러 게임 팬들 사이에서 이미 드높은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원작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찾아 사일런트 힐로 들어가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렸는데, 영화 버전에서는 주인공이 어머니로 바뀌었다. 평범한 주부인 로즈(라다 미첼)는 딸 샤론이 밤마다 몽유병을 앓듯 '사일런트 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뒤 샤론과 함께 사일런트 힐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갑자기 교통사고가 발생한 뒤 샤론은 사라져 버리고, 이제 로즈는 여성 경찰 시빌의 도움을 받아 안개 자욱한 사일런트 힐을 찾아 헤맨다. 30년 전 의문의 화재로 인해 잿더미가 된 그 곳에서는 그로테스크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일단 <사일런트 힐>은 상당히 웅장하고 화려한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비록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포영화의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한 요소가 많다. 이 영화가 다른 게임 원작 영화보다 볼거리가 많다면, 그것은 쟁쟁한 실력파 스탭들이 이 영화에 함께 했기 때문이다. <펄프 픽션>의 작가이자 <킬링 조이>의 감독으로 유명한 로저 애버리가 원작을 여자들의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면서 영화적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오랜 파트너로 그로테스크한 생물학적 공포영화의 미술을 책임져 왔던 프로덕션 디자이너 캐롤 스피어도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성과물을 보여준다. 학교와 호텔과 교회로 이어지는 영화의 주요 공간들은 독특한 디자인과 색감으로 마치 게임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언더월드><고질라><아이, 로봇> 등을 통해 할리우드에서 가장 독특한 크리처 디자이너로 이름을 굳힌 패트릭 타토풀로스는 <사일런트 힐>에서도 무시무시한 크리처들을 창조해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들은 바로 로즈가 이 기상천외한 크리처들에 맞서 탈출하는 장면들이다. <사일런트 힐>의 후반부는 마치 <악마의 씨>를 떠올리게 하는 유사 종교극이다. 사일런트 힐의 사람들은 어둠의 마수를 피하기 위해 교회로 피신하지만, 그 곳에는 어둠보다 더 무섭고 악명 높은 광신도 집단이 지배하고 있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처벌하고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광적인 청교도 단체가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은 흥미롭긴 하지만 개운하지는 못하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모성애이지만, 그 것은 선하면서도 어리석은 가치로 그려질 뿐이다. 여자들끼리의 연대, 또는 여자들끼리의 전쟁을 묘사한 <사일런트 힐>에서 남성 캐릭터는 거의 아무런 순기능도 하지 못한다. 화려한 볼거리에 정치적 올바름과 이야기의 세밀함은 희석되고 만다. 하지만 원작 게임의 팬이라면, 그리고 롤러 코스터 같은 크리처 액션을 좋아하는 공포영화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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