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위원회 소관 행정사무감사가 이제 막 끝났다. 민주노동당 구의원이 건설위원회 소속이 웬말이냐는 말을 자주 듣고는 한다. 필자가 건설위원회로 소속 상임위원회를 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강북구의 복지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주민생활국이 건설위원회 소관이다. 영유아보육조례 주민발의안을 심의하고 통과시켜야 할 상임위가 건설위라는 것이다.
건설위의 피감기관은 영유아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주민생활국,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을 총괄하는 도시관리국, 강북구의 건설업부과 교통업무 및 재난안전을 총괄하는 건설교통국이다.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필자는 의회 사무국까지 총 4개 국의 감사를 닷새 간 진행했다.
강북구의 유일한 민주노동당 구의원으로서 서민의 편에 서서 알찬 행정사무감사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가지고 있었지만, 혼자서 진행하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었다. 육아휴직 후 10월에야 업무복귀를 한 관계로 구정업무 파악이 늦어진 탓도 있다. 하지만 서민생활을 지켜내는 진보감사를 위해 보육의 공공성 약화, 복지전달체계의 불합리성,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서민생활 피해, 민원처리의 불합리성 등을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한 감사를 진행하기로 굳은 마음을 먹었다.
감사 첫날 필자는 감사장소인 강북구청에 긴장된 마음으로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래서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날 아침 강북구청 앞에는 과장급 이상의 구청 간부들이 의원들을 마중하기 위해 일부러 나와 있었다고 한다.
감사준비를 위해 자료를 의뢰하거나 업무개선을 위한 지적을 하면 소극적이거나 목을 뻣뻣하게 세우던 구청 측의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행감 때만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은 내용은 앙상하고 일상은 권위적인 우리 의회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의원들도 행감 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감사장 한쪽에 마련된 휴게실에는 정회를 할 때마다 여직원들이 간식과 음료를 내오고 있었다. 감사가 길어져서 휴식을 취할 때 간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큰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제 손으로 간식과 차를 가져다 먹는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음식과 차를 나르는 그 공무원들의 원래 소임은 지역주민들에게 행정서비스와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원들에게 제공되는 간식과 음료 등의 비용은 피감기관 직원들 몫으로 할당된 업무추진비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필자가 문제제기를 하자 몇몇 의원들은 "일년에 한번 하는 행정사무감사 때 음료와 간식 정도 대접받는 것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필자의 지적에 동의를 해줘 내년부터는 절대로 피감과의 직원들이 나와서 음료나 간식을 대접하지 않기로 했다.
감사장에서 국장은 앉아서, 과장은 서서 답변을 하는 것도 관행이라고 했다. 다행히 이번 행정사무감사부터는 국장과 과장이 모두 앉아서 답변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렇게 당연한 조치도 매우 개혁적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앞으로 의회 운영위원장으로서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많은 구태를 바꿔나가야겠다는 새로운 결심도 하게 됐다.
감사업무를 너무 열심히 해도 탈인가 보다. 의원에게 제공된 노트북을 감사장에 설치하니, 공무원들이고 의원들이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라고 한마디씩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노트북을 감사장에 가지고 나온 사람은 필자뿐이었다. 필자가 보기에는 방대한 자료가 필수적인 행정사무감사에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텐데 말이다. 공짜로 제공받은 노트북을 이럴 때 쓰지 않으면 언제 쓰나 싶었다.
닷새 간의 행감 일정은 종합감사와 강평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 닷새 간 보았던 의원들과 피감기관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태도를 생각하면 구정업무 전반에 걸쳐 지적된 그 많은 사항들이 얼마나 제대로 개선될지 불안하다. 감사 이후에도 수시로 해당업무에 대한 점검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필수적일 것 같다. 일년에 일주일만 반짝 하는 척 하면 끝인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일상적인 감사업무가 가능해야 한다.
이제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남았다.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된 사항들이 효율적으로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오늘따라 책상에 놓여진 2007년 예산안이 유난히 두꺼워 보인다.
한 선배 의원은 예산안 심의는 행정사무감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투명하고 효율적인 예산이 의정활동의 기본 아닌가 싶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낭비성, 선심성 예산은 없는지, 복지예산은 충분히 책정되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겠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