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에는 스펙터클, 즉 영화적 이미지가 제공하는 압도적이면서도 장중한 시각적 경험을 중시한 감독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영화사 초기의 그리피스나 아벨 강스, 후기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독일 우파 스튜디오 시절의 프리츠 랑, 가로화면이 극도로 긴 와이드 화면이 대중화된 시기에 활동했던 윌리엄 와일러나 스탠리 큐브릭, 그리고 현대의 제임스 카메룬이나 피터 잭슨과 같은 이들이 모두 영화적 스펙터클에 있어서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감독들이다. 지극히 서구적인 표현양식인 영화의 역사에서 동양권 감독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인데, 특히 막대한 제작비와 대규모 인적 자원이 투입되는 스펙터클 영화에 있어서 동양권 영화의 열세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 더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라는 이름이 특별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이 일본 감독이 태생적, 환경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창적인 스펙터클 영화의 영역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주정뱅이 천사>(1948), <백치>(1951), <이키루>(1952)처럼 이태리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은 초기 작품들 속에서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리얼리즘적 성향을 보였던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세계는 후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더 탐미적인 성향으로 변모하게 된다. 특히 70대에 접어들어 발표한 <카게무샤>(1980)와 <란>(1984)은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세계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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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프레시안무비 |
물론 그의 초기작 가운데서도 <라쇼몽>(1950), <7인의 사무라이>(1954), <거미의 성>(1957) 등의 작품에는 모더니즘적 경향과 스펙터클에 대한 야심이 드러나 있지만, 이 작품들은 구로자와 아키라 특유의 휴머니즘적 정서가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는 점에서나 내용과 형식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후기 영화들과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7인의 사무라이>, <카게무샤>에 이어 구로자와 아키라의 마지막 서사극으로 기록된 <란>(1984)은 서양의 고전극을 일본의 전통극의 형식을 빌려 영화적 스펙터클로 재창조한 작업이다. 80년대를 통과하면서 구로자와 아키라는 막스 테시에의 말처럼 일본뿐만 아니라 동양영화사에서 '요지부동의 산'으로 자리잡게 된다. 구로자와 아키라가 개척한 새로운 스펙터클의 세계는 그와 동일한 문화권에 속한 한국과 중국의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진시황 시대를 다룬 첸 카이거 감독의 <황제와 자객>이나 중국을 무대로 한 김성수 감독의 역사물 <무사> 등은 넓은 의미에서 구로자와 아키라의 자장 아래 놓여있는 영화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감독들 가운데 구로자와 아키라가 개척한 스펙터클 영화를 가장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현한 감독이 있다면 바로 장 이모우 감독일 것이다. 충격적인 데뷔작 <붉은 수수밭>(1988)을 발표한 이후 <국두> (1990), <홍등>(1991), <귀주이야기>(1992), <인생>(1994)과 같은 문제작들을 내놓았던 장 이모우는 2002년도 영화 <영웅>에서부터 스펙터클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런 그의 야심은 <연인>(2004)을 거쳐 신작 <황후화>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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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화 ⓒ프레시안무비 |
구로자와 아키라가 그랬던 것처럼 장 이모우 역시 초기 영화들이 리얼리즘적 색채를 띤 반면, 후기작들은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로 관객들을 압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의 초기작들은 후기작에 비하면 한결 소박하고 단순했지만 그 속에 형상화 된 끈적대는 인간의 욕망과 꺾일 줄 모르는 생의 의지는 장 이모우 특유의 색채미만큼이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후기로 접어들면서 장 이모우는 거대하고 화려한 영상을 통해 관객을 압도하려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소품에서 배경, 등장인물의 규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일반적인 상상력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 <황후화>이지만 특히 달빛 아래 황금 갑옷과 금색 두건을 걸친 십만의 병사들이 궁을 뒤덮은 국화화분을 밟으며 황제를 향해 진격하는 모습은 장 이모우가 구현하고자 했던 스펙터클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고전주의적인 이야기구조와 퇴조기 낭만주의적 정서에 중화주의의 나르시시즘이 한데 뒤섞인 <황후화>의 이미지는 황홀경을 넘어서 일종의 광기를 느끼게 만든다. 어떤 이들에게 있어 이 영화가 '과잉과 낭비, 탕진의 연쇄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영화가 폭발을 넘어서 감정과 감각 자체를 소진시키고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구로자와 아키라의 <란>은 규범적이며 이성적이며 절제되어 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의 전통극 '노'의 형식 속에 담아 낸 이 작품에서 구로자와 아키라는 정서적 반응을 유발시킬 수 있는 클로즈 업 대신 풀 쇼트와 롱 쇼트 위주로 영화를 구성함으로써 객관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또한 <카게무샤>때까지만 해도 어렴풋이 고개를 내밀던 휴머니즘적 정서는 <란>에 이르러서는 엄격한 형식의 지배 아래 종속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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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고전주의적 양식과 화려한 바로크적 양식이라는 형식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감독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이들이 영화 속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미 '천황'이라 불리던 구로자와 아키라는 말할 것도 없고, 국가적인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은 장 이모우 역시 거대한 영화적 스펙터클을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공인받기를 원한다. 이러한 이들의 야심은 극단적인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고 있는 <란>과 <황후화>에서 화자가 단순한 이야기 전달자가 아니라 사건과 상황을 판단하는 심판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두 편의 영화 속 인물들 가운데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설정된 인물이 왕 혹은 황제라는 사실을 통해 확인된다. 마치 고대의 황제나 중세의 성직자들이 거대한 구조물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상징화시켰던 것처럼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스펙터클을 구축함으로써 스스로를 혹은 그들의 영화가 환기시키는 그 무엇인가를 상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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