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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리고 박광수 감독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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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리고 박광수 감독을 생각한다

[특집] <칠수와 만수>, <그들도 우리처럼> 그리고 신작 <눈부신 날에>

박광수 감독이 신작 <눈부신 날에>를 내놨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이 개봉된 지도 어언 10여 년이 지났다. 신작 발표 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화계에서는 박광수 감독의 이름이 서서히 잊혀지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눈부신 날에> 역시 개봉관을 잡지 못해 1년 가까이 영화사 창고에서 잠자고 있어야 했다.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들마저도 박광수 감독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우리 사회의 지배 담론이 급격하게 변화했다고 해도 이건 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박광수를 비롯해서 장선우, 이명세와 같은 이름이 중요한 것은 이들이 198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른바 '한국영화 뉴웨이브'를 대표하던 감독이었다는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이들의 영화가 지금 우리 영화계의 주력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의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한국영화인들이 잃어버린 스승, 잃어버린 선배를 다시 만나는 일인 셈이다. 그동안 폐업 직전의 비디오가게의 선반을 뒤지는 방법 외에는 다시 볼 수 없었던 이들의 영화들이 최근 DVD로 출시됐다.박광수의 대표작 두편을 회고한다.
신작 <눈부신 날에>는 어떤 영화?
야바위판에서 벌어진 싸움으로 유치장에 갇힌 종대(박신양)에게 선영이라는 여자가 찾아와 준이라는 7살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유치장에서 빼내주고 돈을 줄 테니 몇 달만 함께 살아달라는 조건에 마지못해 응한 종대는, 아빠라며 따르는 딸 준이에게 점점 마음을 연다. 그러나 종대는 준이가 시한부 인생임을 곧 알게 되고, 준이에게 줄 생애 마지막 최고의 선물을 준비한다. 1998년에 개봉한 <이재수의 난> 이후 박광수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한 장편영화. 애초 '컨테이너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으나 개봉을 앞두고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4월 19일 개봉.
한미 FTA 마지막 협상이 벌어지던 지난 주, 전국 곳곳에서 협상체결 반대를 주장하는 세력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공권력간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이 대거 연행되고 한 택시운전사는 분신까지 감행했다고 한다. 어떤 정치인의 표현대로 마치 80년대의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듯한 그런 풍경이었다. 다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80년대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억눌렸던 자유의지들이 곳곳에서 표현되기 시작했던 그런 시대였다.
박광수 감독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우리 사회가 들끓고 있는 와중에서도 우리 영화계는 유독 동떨어진 행보를 보였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우리 영화들이 <매춘>, <어우동>, <무릎과 무릎 사이>같은 에로영화였다는 사실은 우리 영화계와 기성 영화인들이 얼마나 체제순응적인 행보를 보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중의 검열제도 등으로 인해 다른 문화예술장르에 비해 영화가 더욱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었다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당시 우리 영화계가 보여주었던 무책임한 행보에 대한 비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그 무렵 우리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았던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광수 감독은 장선우 감독과 더불어 기성 영화인들이 외면했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했던 감독이었다. 특히 박광수 감독은 80년대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거대 담론과 현실적 문제들을 자신의 영화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이른바 '사회파 감독'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의 데뷔작인 <칠수와 만수>(1988)는 당시 대학로 극장가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동명의 연극을 각색한 작품이다. 칠수와 만수는 날품팔이로 하루하루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페인트공이다. 어느 날 그들은 한 옥외 광고판의 도색작업을 맡게 된다. 광고판 속의 육감적인 여인은 고단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칠수와 만수의 삶을 조롱하는 듯하다. 잠시 일을 멈추고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광고판 위에서 칠수와 만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점점 더 열기를 더해간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해 그들은 광고판 위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건물 옥상 광고판에서 뭔가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건물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발견하고는 시위를 벌이는 오해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경찰과 구조대가 모여들고 언론사의 취재가 시작되면서 칠수와 만수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반사회적인 인물로 관심을 모으게 된다. 소동이 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찰이 무리한 구조작업에 나서자 칠수와 만수는 광고판 아래로 몸을 던진다.
칠수와 만수 ⓒ프레시안무비
블랙코미디의 형식을 빌린 억압, 소외, 소통 불가능성과 같은 80년대의 이슈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큰 반향을 불어 일으켰다. 비록 이 영화의 목소리가 현재의 관점에서는 물론 원작 <칠수와 만수>에 비해서도 조심스럽고 우회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합법적인 포르노그래피 이상은 아니었던 당대 우리 영화계의 경향을 생각할 때 이 영화가 우리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칠수와 만수>가 개봉되었던 1988년에는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이 개봉된 해로도 기억할 만한데, 우리 영화계에서 이처럼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광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1990)은 최인석의 장편소설 <새떼>를 각색한 작품으로 블랙코미디였던 <칠수와 만수>에 비해 정통 리얼리즘극에 가까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탄광촌으로 도피한 운동권 학생 기영과 허무주의에 사로잡힌 탄광주의 아들 성철, 탄광촌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던 작부 영숙의 관계를 통해 근대화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하던 문제의식들을 그려낸 이 영화는 박광수 감독을 80년대 정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인정받게 해준 영화이기도 하다. 시위 주동 혐의로 수배를 받고 탄광촌으로 도피한 대학생 기영은 그곳에서 신분을 감추고 연탄공장에 위장 취업을 한다.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들던 폐광 직전의 탄광촌에서 기영은 다방 작부 영숙과 연탄공장 사장의 아들 성철을 만나게 된다. 기영이 오기 이전부터 성철의 정부 역할을 해왔던 영숙은 망나니 성철과는 모든 것이 정반대인 기영에게 자연스레 호감을 느끼게 되고, 기영 역시 영숙의 순수한 마음에 조금씩 끌리게 된다. 영숙과 기영의 관계를 알아차리면서 성철은 더욱 병적으로 영숙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그것은 성철이 영숙에게서 잃어버린 어머니의 그림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성철과 예기치못한 다툼에 휩쓸리면서 신분이 탄로난 기영은 탄광촌을 떠날 결심을 한다. 영숙 또한 새로운 삶을 살기위해 기영과 함께 떠날 결심을 한다. 이를 알아차린 성철은 영숙을 강제로 붙잡으려고 하고, 이를 뿌리치려던 와중에 영숙은 뜻하지 않게 성철을 살해하게 된다. 영숙은 경찰에 연행되고 기영은 맨 처음 탄광촌을 찾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기차에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한다.
그들도 우리처럼 ⓒ프레시안무비
민주화 운동 세대의 전형적인 인물 기영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미성숙한 인간 성철, 그리고 완강한 현실의 굴레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영숙이라는 인물군은 당시 우리 문화계에 유행하던 리얼리즘 이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의 고민 또한 구체적이기보다는 관념적이며 추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전형성 은 비단 박광수 감독의 영화뿐만 아니라 80년대 당시 이른바 리얼리즘 계열의 예술작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특징이었다. 따라서 지금 다시 박광수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 중 하나인 80년대의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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