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있었던 1차 모금 전달식에 이어, 지난 2일 2차 모금 전달식이 도쿄의 에다가와 조선학교에서 열렸다. 국내에서 모금해 전달한 금액만 무려 7억 원에 이른다. 2차 모금 전달식에 다녀온 홍승권 삼인출판사 부사장이 편지글 형식으로 방문기를 보내왔다.<편집자>
S형, 선선한 가을 날씨가 여름 내내 늘어진 몸에 상쾌한 자극을 줍니다.
이런 상쾌한 계절, 지난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일본 동경에 있는 에다가와조선제2초급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봄에 SBS의 다큐프로를 통해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학교 운동장 반환소송 때문에 60년의 역사를 가진 이 학교와, 60여 명의 동포 아이들이 졸지에 배움의 터를 잃을 뻔한 이야기를 잘 알게 되었었죠.
결국 법원은 시가의 1/10 가격에 불하하라는 중재명령을 내려 사실상 학교 측과 동포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되었지만 넉넉지 못한 에다가와 지역의 동포들에게는 1억4000만 엔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일본 땅의 동포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외면해왔던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보며 프로를 보는 내내 눈시울을 훔쳐야 했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란다'라는 곡을 작곡한 가수 이지상 씨와 교사 황의중 씨 등이 앞장서서 지난 5월부터 기금마련을 위한 활동을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
작가회의 정희성 이사장, 수경 스님, 박원순 변호사 등 종교·사회단체의 신망 받는 어른들이 이름을 걸고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기울였고, 리영희 교수와 이철수 화백 등 65분의 명사들이 애소장품을 기꺼이 내놓아 전시판매 행사를 하는 등, 수많은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에 참여해 주셔서 총 7억여 원을 모금하여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당초 조용히 학교 측에 전달만 하고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만 현지의 학부모들을 비롯한 동포와 교사들이 푸짐한 음식과 마실 거리, 게다가 공연까지 준비해 놓고 기다리셔서 '오른손'이 계면쩍고 민망한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학부모와 일본인들로 구성된 후원단체 구성원들을 직접 뵙고 인사를 나눈 일은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
일본인들은 소송사태가 불거질 때부터 자신들과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데도 이 학교를 살리기 위해 모임을 꾸리고 물심양면으로 큰 노력을 기울여, 별로 의지할 데가 없는 동포들과 학교에 큰 힘이 되어왔습니다. 저로서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깊이 존경심이 우러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모두들 즐거이 춤사위를 할 때 잠시 운동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학부모로 보이는 제 또래의 남자분이 다가옵니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처럼 남쪽의 동포들이 도와주고 방문해 주니 너무 고맙다고 합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중2인 아이와 현재 6학년과 4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학부모였습니다.
아마도 본인이 이미 2세인 듯한데 자신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0살 때 부산에 계신 할머니가 삼촌(삼촌은 민단계열 분이랍니다) 집에 오셔서 아버지와 함께 인사를 하러 갔는데, 할머니께서 '너희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빨갱이가 되었다'며 인사도 받지 않으려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아버지한테 '그래도 아이들 교육은 잘 시켰구나.' 하시더랍니다. 삼촌네 아이들은 우리말을 할 줄 몰랐답니다.
그분한테는 그 일이 엄청난 충격과 상처로 오랜 기간 남아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재일동포들이 그러 하지만(약 80~90%가 남한이 고향) 이분 역시 육체적 고향은 남쪽(경상도)이나, 마음의 고향은 그동안 재일동포 문제에 물심양면으로 관심을 기울여왔던 북쪽일 수밖에 없었노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이제 남쪽에 대한 생각들이 그전과 달라지게 되었노라고 하십니다.
비로소 '또하나의 조국'을 찾은 기쁨과 감격이 그분의 얼굴에서 느껴집니다.
|
기금전달식을 하는 날이 마침 노무현대통령이 방북하는 날이었고 해서 컴퓨터와 빔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모습을 현지 동포들과 함께 시청했습니다.(일본 방송은 생중계를 하지는 않더군요)
7년만에 이루어지는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 그것도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상징적의미가 겹쳐진 만남이었고, 에다가와에서는 남쪽의 동포가 민단계열이 아닌 동포를 만나는 뜻깊은 만남을 기리며 우리 일행(11명)은 앞에 나가 답가로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동포들도 그러했지만 우리로서도 7년 전에는 꿈도 꾸기 힘들었던 일을, 이제야 가능한 현실이 한스럽기도 하지만, 우선은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쪽의 우리로서는 미안한 마음뿐이지만 동포들은 그동안 두 개의 조국 중에 하나의 조국만 있었던 셈이었고 그나마 북한의 경제상황이 피폐해진 데다가 '납치사건'이 겹쳐지면서는 더욱 숨죽이며 살 수밖에 없었을 상황에서 남쪽의 동포들이 찾아오고 관심과 작으나마 지원의 손길이 펼쳐지는 데 대하여 동포애를 확인하며 더할 수 없이 감격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
이제 그들에게 '또 하나의 조국'을 선사하며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며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을 떠나는 날, 다시 한 번 에다가와 조선제2초급학교를 방문하여 수업참관 등을 하였습니다. 40년 된 낡은 교사는 비가 오면 여기저기 새는 곳이 많았습니다. 시설이 열악할 건 말할 나위 없었구요.
차별과 박해도 서러울 텐데 한창 자라나는 어린 2세들을 이렇게 열악한 시설에서, 그것도 일본학교 같으면 한 푼도 내지 않을 교육비를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많이 부담하며 학교에 보내는 학부모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동포들의 90%가 취업이나 연금지급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 고통스러운 차별을 피하여 귀화하고 있는 형편에서 과연 나 같으면 온전히 정체성을 지키며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을 해보았으나 대답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떠나는 우리들을 향해 아이들이 일제히 현관과 난간 쪽으로 나와 '안녕히 가세요'하고 열심히 손 흔들며 인사합니다.
맑고 티 없이 자라야 할 이 아이들이 일본 당국으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혜택이나 다른 차별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교실을 비롯한 시설만이라도 남부럽지 않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열망이 생기게 되더군요.
|
'또 봅시다'며 선생님들과 동포들과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공항으로 가며 보이는 차창 밖 동경 시내의 모습은, 약 14년 전 방문했던 동경과 달리 훨씬 더 번화한 모습이었습니다.
좀 전의 에다가와 모습하고는 너무나 격세지감이 있는 모습입니다.
이 지체의 모습을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하여야 한다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의 남쪽의 무관심과 외면이 이런 결과를 낳았겠다는 생각에 이르면 자책감이 크게 짓누릅니다. 이제라도 과거의 잘못을 씻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이 있다는 사실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고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