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제도'로 유지된 폐쇄적 집단, 관료사회
한국 사회에서 관료가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특별하다. 이 특별한 위상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지만, 불안정하였던 근현대사의 구조적 특성에 기인하는 바가 매우 크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고시제도'로 인하여 관료는 우리 사회에서 아주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고시제도를 통하여 일정 지력(知力) 이상을 갖춘 사람만이 관료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기에, 한국의 관료사회는 일반 사회의 직업군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다른 차원의 구별된 사회이다.
이 특별한 관료들은 해방 이후 단기간의 압축적 국가형성(state-building)과정에서 결속력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그 위상은 더욱 더 견고해질 수 있었다. 카프카가 말하는 견고한 '성(castle)'이 오래 전부터 구축된 것이다. 현재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견고한 성에 입성하기 위하여 경쟁하고 있다.(참고로 지난 2006년 10월 서울시 공무원 채용시험 경쟁률은 162:1)
관료는 권력의 측면만이 아니라 양적으로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중앙 공무원 기준으로 약 60여만 명에 이르고 있는 거대집단이다. 게다가 이 집단은 보수적 퇴출 장치로 높은 안정성도 동시에 누리고 있다.
관료는 중앙 행정기관만이 아니라 입법, 사법, 선거, 교육 등 국가 전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OECD의 2006년 자료에 따르면, 이 관료들이 연간 사용하는 우리나라 재정규모는 약 218조 원으로서, 국내총생산의 28.1%(2004년 기준)에 이른다. '관료자본(bureaucratic capital)'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관료, 정책 의제 설정부터 집행까지 독점
규범상 관료의 권한행사는 '공익'지향성 이라는 명분에 의하여 정당화된다. 비록 국민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렵거나 의구심이 들지라도 '관료'이기 때문에 당연히 '공익적'인 것으로 수용되고, 정당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이 공익적이고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근거는 늘 불충분하다. 관료이기 때문에, 관료에 의한 결정이기 때문에 '공익적'이라고 할 정도로, 관료는 본래적으로 공익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당연히 받아들여 왔었다.
소위 '관료적 간섭주의(bureaucratic paternalism)'가 사회 전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관료적 특성들에 근거한다. 그러나 많은 영역에서 관료적 자율성이 법이나 혹은 국민의 기대 이상으로 과잉 적용되고 있으며(과잉 간섭주의), 이로 인하여 시민사회는 자율성을 상실한 피동적 대상으로 부지불식간에 전락하였다.
관료의 막강한 권한과 절대적 영향력은 당연히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관료적 독점성에 근거한다. 비록 일부 정책과정이 정치인이나 시민사회 등 외부에 개방되지만, 기본 골격은 늘 관료에 의하여 독점적으로(양보하여 과점적으로) 관리,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책결정과정에 상시 접근하여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오직 관료들뿐이며, 관료 이외의 주체들은 극히 제한적인 권한과 정보, 영향력을 가진 비상시적 참여자에 불과하다.
정부 내 정책결정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전 단계에 해당하는 의제(agenda)나 정책문제(policy problem) 설정단계인데, 이 단계의 실질적 관리자도 관료이다. 즉 문제설정에서 부터 마지막 집행과 평가의 전 과정을 관료가 '상시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관료는 행정부만이 아니라 국회에도 근무하고 있으며, 입법과정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국회의원에 못지않다. 즉 국회 각 상임위원회별로 소속되어 있는 전문위원이나 입법조사관들은 입법 전문성에 근거하여 각종 법안의 논의과정에서 매우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라는 소속은 다르지만, 동등한 특징과 위상을 지닌 '관료'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회사무처 약 3000여 명, 사법부 약 1만4000여 명, 그리고 중앙선관위 2000여 명 등 비록 규모면에서는 행정부에 못 미치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관료들이 공공부문 전 영역에 걸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관료들은 정치적 중립성의 선언적 표방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앞서서 가치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의 가치 정향과 행동양식은 국정운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동안 관료개혁을 논의함에 있어서, 행정부를 제외한 입법, 사법, 선관위 등에 소속되어 있는 관료들에 대한 논의는 매우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 신뢰도, 10점 만점에 3.3점
국가공무원법에는 관료들이 반드시 준수하여야 할 주요한 가치들로서 성실, 청렴, 친절공정의 의무 등이 규정되어 있다. 관료들이 의무적으로 추구해야 할 공익적 가치들은 법 규정만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각부 장관 등 고위 정무직을 통해서도 제시된다. 예를 들어서 새 대통령이 제기하는 국정운영 방향은 관료들의 가치판단과 행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관료에 대해서 규범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말하지만, 실제는 고도의 정치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公職(public servant)'이라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다. '公(public)'의 어원은 'pubes'로서, 원 뜻은 '다수' 혹은 '다수를 배려함'이라는 점에서, 공직은 본래부터 '다수를 배려함'을 마땅히 추구하여야 할 핵심가치로 받아들여야 하는 특별한 직업이다.
그런데 관료들은 법 규정에 명확하게 제시된 가치들만을 수동적으로 수용, 적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특히 '관료 정치적(bureaucratic politics)'관점에서 보면, 관료는 공익적 가치만이 아니라 관료에게 귀속되는 '사익'적 가치들도 추구한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공직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을 뿐이다.
문제는 공익 지향성을 전제하는 관료임에도 불구하고, 이 관료에 의하여 주도되는 정책이나 판단, 활동들이 과연 공공성에 어느 정도나 부합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는데 있다. 기준도 매우 불명확하다.
가장 쉬운 것은 '합법성' 관점에서 정책결정이 법률적으로 주어진 규정을 어느 정도나 충족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 제,개정 자체가 관료적 가치를 부정적으로 반영한다면, 이것만을 근거로 공공성을 판단하는 것도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활용 가능한 방법은 관료에 의해 관리되는 '정책과정' 그 자체의 공공성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즉 정책과정 자체가 공공성의 가치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이 과정이 다수의 관련자(시민 혹은 이해관계자 등)들에 의하여 높은 신뢰를 받을 경우, 과정 및 결과로서의 정책은 공공성이 있는 것으로 제한적이나마 인정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료를 포함한 공공부문에 대해서 우리 국민들은 매우 불신하고 있다. 2006년 KDI 조사에 따르면, 국정운영 관련 주요 주체들의 신뢰수준(10점 기준)에 대해서, 교육기관(5.4), 시민단체(5.4), 군대(4.9), 대기업(4.7), 경찰 (4.5),법원(4.3), 검찰(4.2), 지자체(3.9), 정부(3.3), 정당(3.3), 국회(3.0)순으로 조사되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3.3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게 나타났다.
참고로, 미국의 하버드대와 US News & World Report가 2005년에 공동으로 조사한 미국 국민들의 신뢰도(4점 만점) 조사자료 따르면, 군지도부(3.21), 의학계(3.11), 교육계(2.98), 종교계(2.94), 비영리자선 단체(2.94), 경제계(2.78), 주(州) 미만단위 지방정부(2.78), 주정부(2.71), 의회(2.66), 연방정부(2.64), 언론(2.39)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신뢰도를 보이고 있으며, 공공부문의 경우에 있어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관료에 대한 개혁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강도로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관료의 정당성은 국민에 의해 결정
관료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의 요구는 오래된 것이지만,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민주주의 진전과 관료 개혁의 필요성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정치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관료가 사실은 매우 정치적인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급격하게 증대된 시민권은 관료적 가치 및 역할방식에 대한 본격적 문제 제기와 더불어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화, 시민권의 상승, 그리고 관료 개혁은 서로 연관되어 논의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관계에 있다.
그 동안 우리 관료사회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윤리를 제고하며, 효율성을 확보하는 등 관료개혁을 위한 많은 방안들이 활용되었다. 관료적 가치의 획일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지역, 성, 직업 등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대표관료제가 강조되었고, 공직자의 사익 추구 및 공익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이해충돌 방지제도나 공직자 재산등록제도 등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정보공개제도를 통하여 정부 정책과정 및 주요 정보를 공개하고자 하였다. 또한 관료적, 계층제적 의사결정의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하여 각종 위원회를 도입하였고, 공청회나 자문회의를 통하여 시민사회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용하고자 하였다. 전자정부를 위한 막대한 투자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관료를 포함한 공공부문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매우 깊다.
관료사회는 여전히 폐쇄적이며, 부정부패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국민들의 정보접근권은 제한되며, 위원회는 형해화 되어있고, 공청회는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관료사회에 대한 개혁이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비판적으로 말하면 형식적 제도만이 도입되었을 뿐 변화는 애초부터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 스스로 수많은 참여제도와 거버넌스 구축을 강조하였지만 사실상 허위의 제도(pseudo governance)들 이었으며, 국민들로 하여금 착각에 빠지게 하였을 뿐이다.
정부 내 많은 의사결정체계들이 거버넌스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거버넌스들은 매우 폐쇄적이며 불균형적이어서 진정한 거버넌스로서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공공성을 지향하는 탈관료적 거버넌스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보, 인력, 의사결정이라는 관료사회의 핵심적인 영역에서 '개방성'이 확보될 수 있어야 한다. 죽 국민의 정보 주권을 확보하여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며, 이를 통해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동등한 수준의 정보(권한)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공직사회에 대한 진입로를 대폭 확장하여 공직사회가 특별한 사람들만의 폐쇄적 집합체가 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의사결정과정에 관료들만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활발하게 실질적으로 참여하여, 말 그대로 참 거버넌스(good governance)가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관료의 정당성은 관료 자신이 아니라 신탁자인 국민에 의하여 결정된다. 관료와 국민과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공직이라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 신탁 때문이다. 믿음이 배반된다면 구태여 공직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관료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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