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 출생 이후 2500년간 동양의 유교문화권 국가를 지배해온 이 말이 그러나 최근 정보화 사회, 인터넷 신유목 사회로 접어들면서 별로 통용되지 못하고 있다. 가정과 국가의 개념이 파산되고 오로지 인터넷 세계를 떠도는 개인의 신유목 시대에 이 말은 그 효용을 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선거철만 되면 이 말이 그 효용가치를 극대화시키며 선거 판세를 좌지우지 한다. 자신과 집안을 잘못 다스려 대세를 그르치고 통탄하는 후보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 세상에도 하늘의 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때 전 3권으로 출간된 정찬주의 장편역사소설 <하늘의 도>(문학에디션 뿔 펴냄)는 작금의 우리의 정치 행태, 선거판을 떠올리며 도대체 지금 이 시대 이 세상에도 하늘의 도, 천도(天道)라는 것이 필요하며 그 천도는 우리 개인의 가슴과 사회에 어떤 이상으로 남아있는가를 돌아보게 하고 있다. 하늘의 도란 결국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현실적 수신의 도덕으로 지치(至治)에 이르러 세상만사 평안케 하는 도에 다름 아니다.
"도대체 하늘의 도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도록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이 아닐까. 도학에서 인간의 절대선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천도라 하고, 그 천도가 천인합일(天人合一)사상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옛 선비들은 하늘의 도를 닦아 실천하는 선비를 군자라 하고, 비록 부귀영화를 누린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이를 소인배라고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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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군자와 소인배를 바라보는 데 지나친 이분법으로 화를 불러들인바 없지 않지만 수신과 제가로 군자가 된 다음에 세상에 나아가 인(仁)과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나는 지극한 정치[至治]를 펴자는 그들의 명분과 의리는 오늘날 진흙탕 현실정치를 볼 때 여전히 유효하고 지극히 당연한 것 같다. 역사가 현재의 삶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일진대, 그 거울에 비추는 우리 자신과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작가가 밝힌 대로 장편소설 <하늘의 도>는 수신제가 이후에 세상에 나아가 어짐과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나는 정치를 펴려했던 군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이상이 현실정치를 어떻게 올바로 이끌다 무엇 때문에 좌절되고 또 이상세계 건설을 위한 영원한 귀감으로 남았는지에 대한 역사소설이다. 무엇보다 소설이기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든지 '천도'라는 딱딱하고 어려운 경전이나 도덕적 용어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쉽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프레시안>이라는 인터넷 매체에 연재되면서 작가와 독자의 쌍방향 소통에 의해 다듬어진 작품이기에 독자와의 폭넓은 공감을 나눌 수 있다.
<하늘의 도>는 조선 성종조부터 연산군을 거쳐 중종조까지의 사화와 반정, 즉 권력 다툼을 시대적, 사건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3대 사화, 즉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와 중종반정의 파행적 정치사 속에서 천도를 지켜 백성과 세상을 평안하게하려 했던 청류사림들의 이상과 좌절을 담고 있다. 기득권층과 신흥세력,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대립과 갈등을 보여주며 보수와 개혁, 이상과 현실의 괴리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조광조의 삶과 이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인간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인간 세상이기에 져버려서는 안 될 도덕과 이상을 독자들 가슴가슴에 물으며 각인시키고 있다.
너희는 순정한 마음으로 개혁하고 있나
<하늘의 도> 1권 '천도가 무너진 땅'에서는 연산군의 등극으로 시작된 잔혹한 정치가 펼쳐진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로 깨끗하고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하늘의 도는 땅에 떨어지면서 현실 사회에서의 천도의 필연성을 환기시킨다. 2권 '깨어나는 청류사림'에서는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세운 '중종반정'과 그로 인해 일어선 훈구대신, 소인배들의 정치적 피폐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3권 '지극한 정치를 펴다'에서는 조광조 등 청류사림들이 '하늘의 도'를 제창하며 정계에 진출해 개혁을 하다 결국 왕권과 훈구대신들과 부닥치며 좌절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설은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은 후 그의 개혁적 동지들의 후일담으로 시작돼 조광조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시작과 끝이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구조를 취함으로써 현실정치와 개혁의 갈등이란 어느 한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낫고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꿈이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되는 숙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양 공, 우리들의 개혁은 좌초됐을 뿐 실패한 것은 아니오. 순정한 마음으로 개혁의 씨를 뿌렸으니 뒷사람들이 반드시 열매를 거둘 것이오." 소설 말미에서 조광조가 사약을 앞에 두고 개혁의 동지 양팽손에게 한 말이다. 이 말처럼 개혁에는 성공도 실패도 있을 수 없다. 성공해도 결국은 파당으로 부패하니 남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결국 '순정한 마음'이다. 작가는 조광조의 입을 통해 지금 현실의 개혁세력들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기도 하다. '너희들 정녕 순정한 마음으로 개혁의 씨를 뿌리고 있느냐'고.
여느 장편소설과는 달리 <하늘의 도>는 한 인물, 한 사건이 작품을 이끌지 않는다. 기승전결이나 암시 등 소설작법에 따라 꽉 짜이고 긴장되게 작품을 이끌지 않고 우리의 옛날 이야기하듯 넉넉하게 작품을 써나가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많은 인물들이 나와 각자의 현실과 이상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대하소설적 품을 이 작품은 지니고 있다.
정찬주는 <산은 산 물은 물>, <다불>, <암자로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등의 소설과 산문으로 불교와 차(茶)에 정통하며 대중적 독자들로부터 호응받는 작가다. 이번 장편 <하늘의 도>에도 이런 작가의 해박한 불교와 차에 대한 이해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시대와 인간세상, 사람을 바라보는 어질고 너그러운 혜안이 유교적 입장에서 현실정치를 바라보게 하면서도 개혁에 상처 난 마음들을 부드럽게 위무하고 있다. 작금의 정치판에 빗대 의미 있게 읽힐 뿐 아니라 개혁, 순정한 사회를 가꾸기 위한 순정한 가슴들 속에서 두고두고 읽혀도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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