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파니 평등파니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민주노동당의 불행이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당은 그들 두 세력의 동거로만 이루어진 핵가족이 아니다. 다양한 세대가 들어와 살고 있는 작지 않은 집단이었다. 그 중 나 같은 무정파 당원들은 나 홀로 독립세대를 이뤄 끼어 살았지만 요즘은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터줏대감들의 등살에 자리를 지키기가 무척 힘겹다. 그 동안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지만 막상 당이 뿔뿔이 흩어지는 지경이고 보니 나름 정치적 소수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 당 대회 대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프레시앙의 한 사람으로서 늦은 감이 있지만 나름의 의견과 고민을 밝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다.
대선패배 반성의 왜곡, 정파대결 격화
대선기간 내내 당의 불협화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민중경선제를 둘러싸고 내홍을 겪었고 후보선출 과정에서도 그러했고 후보의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또 그러했다. 심지어 선거운동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그러했다. 한마디로 갈등의 심화과정이었고 고작 3%라는 선거 결과가 나오자 당내 이견은 마침내 폭발했다.
폭발의 점화는 참담한 대선결과에 대해 '변화와 혁신'이란 당 안팎의 평가가 광범한 공감을 얻어가며 확산되는 것으로 시작됐으며 아울러 당권파가 최우선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평가였다. 이에 따라 지도부 전원은 사퇴했고 비대위 구성이 본격 논의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성급하게도 신당 창당과 재창당이라는 재건축을 요구하고 나섰고 '종북주의 청산'이라는 설계도까지 제시하자 당내 분란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며 왜곡되기 시작했다. 대선패배에 따른 '변화와 혁신'의 요구는 큰 이견 없이 당 전체가 공감하는 과정이었으나, 종북주의 논란이 확산되는 순간 대선패배 반성을 통한 변화와 혁신의 노력은 정파갈등에 잠식당하기 시작했으며 당 대회에 이르러서는 '변화와 혁신'의 왜곡된 일부이자 정파갈등의 첨예한 상징인 '당원제명'만이 모든 것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대선 평가와 반성을 폭넓게 펼쳐내지 못하고 '종북'이라는 협소한 부분만을 핵심으로 잡아 문제제기에 나선 신당파의 경솔함이 우선 비판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당 외부를 통해 그것도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는 등 매우 부적절한 방식으로 종북논란을 확산시킨 것은 분열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반발해 반대파인 당권파는 최초 자숙하던 분위기를 내던지고 빌미를 잡아 다시 역공에 나서며 폐기해야 할 '패권'을 다시 꺼내 휘두를 준비에 들어갔다. 일부는 당 안에서 신당창당을 공공연히 조직하고, 당권파는 대선패배의 책임은커녕 대선의 교훈조차 잊은 채 일부의 반대파와 극한 대립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후퇴를 최소화 하려는 대결의 악순환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비대위를 세우는 것조차 당원들을 지치고 힘겹게 했으며 이 과정에서 당원들은 당에 희망이 있는가 없는가를 심각하게 자문하기 시작했고 적극적 당원들은 한결같이 정치적, 이념적 선택을 강요받기 시작했다. 즉 당 내의 정세는 합의가 아닌 대결로 치달았고 그 대결은 당의 붕괴까지도 가능하다는 강렬한 승부수였다.
당권파의 역공세, 위기의식의 실종과 예측되는 파국
비대위의 권한을 놓고 벌인 당권파의 저항 또는 소극적 패권은 무책임했다. 그 효과는 당이 비상한 시기임을 망각하게 하는 것이었으며 기울어진 패권의 막대를 다시 반대로 기울인 후에야 비로소 정치의 균형을 논할 수 있는 일상적인 평화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 중이 제 머리조차 깎지 못하는데 하물며 뼈를 깎는 대수술(혁신)을 스스로 할 수 없음을 당권파는 인정해야 했다. 그 방식이 비대위에 전권을 주고 혁신안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거부된다면 당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점점 자명해지고 있었지만 정파적 이해에 관련된 핵심당원들의 위기의식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여곡절 끝에 비대위는 출범했고 위기탈출을 위한 작은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당은 생존이냐 붕괴냐의 기로에 서있다는 당 내 정세는 더욱 확고해 졌다. 반면 이를 극복하고 혁신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는 기존 당권파의 후퇴라는 것이 넓은 공감을 획득했고 이를 정치의 상식이자 도의로 이해하는 당원들이 존재했지만 위기감이 실종되자 상식 또한 사라지고 말았다.
비대위는 다소 치우친 인적 구성을 보였다. 그러나 균형을 위한 막대 구부리기로 용인되고 인내돼야 했다. 혁신안의 치우침도 대선패배에 따른 당권파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반성과 후퇴가 있어야 당이 유지 될 수 있다는 당내 정세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혁신안의 공격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당권파와의 타협과 봉합이 아닌 강한 문제제기를 통해서만 비상한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대선패배의 책임을 묻고 반성을 요구하는 당연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권파는 오직 자신들의 사상에 대한 공세가 지나치다는 공감을 확산시켰고 나아가 공세를 꺾어내기 위한 패권의 재등장을 예고하기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국가보안법이었던 게 당의 불행이다. 이견이 있을 수 없는 국가보안법 문제의 등장으로 인해 정치적 책임의 문제가 진보적 가치논쟁으로 왜곡됨으로써 당 대회는 충분히 예상된 파국을 외면했다. 한편 비대위는 당 대회 직전 당의 생존을 위해 수정혁신안을 제출함으로써 당을 살리기 위해 불필요한 오해와 왜곡을 막고 어느 정도 정치적 타협을 유도하려 했지만 위기의식을 잃어버린 세력들은 어떠한 타협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은 당을 지키는 것 자체가 현 상황에서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진보적 원칙이라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고 당 대회의 최대 목적은 이를 확인하고 당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비대위 혁신안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것임을 새겨듣지 않았다.
비대위의 성격과 한계
비대위의 성격은 대선패배의 반성을 통해 당 혁신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기존 당권파의 문제를 지적하고 극복하려는 것은 상식적이고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비대위의 성격과 내용적인 유사성을 띠고 있는 일부 세력이 분당론을 들고 나오는 등 성급한 분열양태를 보였음에도 비대위는 이들과 분명한 구별선을 긋지 않음으로써 비대위의 위상은 크게 위협받기 시작했다. 일부의 분열주의적 행위는 당권파에 빌미를 제공했고 이에 근거해 당권파는 비대위의 중요성을 깎아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권파의 일상적 패권을 바로잡기 위해 비상시기 비대위의 일시적 패권은 균형 잡힌 당을 바라는 당원들 사이에 충분히 용인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른바 일심회 사건을 둘러싼 분당론자와 당권파의 충돌 그리고 다함께 등 일부세력이 이 충돌에 적극 가담함에 따라 대선에서 대대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형성된 당 붕괴위기라는 정세는 잊혀가고 있었다. 이로써 비대위의 위상은 전혀 비상하지 않은, 구구절절 따져 물어 내 입장과 원칙을 주장하고 관철시켜내야 하는 일상적 지도기구로 전락하고 말았고 대대는 각 입장들의 투쟁대회가 되고 말았다. 비대위는 초기부터 분당론과는 형식적 단절이라도 분명한 선 긋기를 해야 했으며 국가보안법 문제로 혁신안의 내용을 왜곡시키는 주장들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했다. 비대위는 대대 직전 수정된 혁신안을 제출해 양 극단을 통제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을 뿐만 아니라 안타깝게도 최초 혁신안을 폐기하지 않음으로써 왜곡과 오해의 소지를 여전히 유지했다.
비대위는 절대적인 시간도 부족했지만 깊이 뿌리박은 당내 불신은 비대위의 한계를 너그럽게 인정하지 않았다. 당권파의 사상적 경향에 대한 제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일심회라는 쟁점을 피해 효과적으로 제출할 시간이 없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소위 일심히 자체는 당의 혁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이 쟁점은 이미 비대위의 뜻에 따라 폐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당의 단결과 혁신을 위해선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필요했는데 이로 인해 비대위는 결국 국가보안법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하고 말았다.
당 대회, 문제의 집약
당 대회는 대선패배 반성의 왜곡, 종북주의 부각, 책임의식의 부재, 위기의식의 실종, 패권주의의 재등장, 당내 정세에 대한 무관심 등의 갖가지 문제가 집약돼 나타난 반면, 탈당 또는 분당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당권파의 후퇴와 당의 혁신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당원들의 최후통첩은 이들 문제의 집약된 등장으로 인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
첨예했던 제명문제와 달리 "패배"를 "실망"으로 바꿔버린 대선평가에 대한 수정안 통과는 비대위의 존재이유와 당 대회의 개최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황당한 처리였다. 이로써 당 대회의 비상한 의미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이를 부추긴 것은 '다함께'였다. 이들의 문제제기가 조직적이었던 아님 그간의 활동관점이 개인에 반영되어 돌출된 경우였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붕괴위기의 탈출이라는 당 대회의 의미를 유념하지 못한 이들 그룹은 결과가 불러 올 파국에 대한 고려없이 제 나름의 원칙적 문제제기에만 몰두한 것이다. 다함께는 당의 운명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하고 발언했다. 이를 기폭제로 하여 당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후퇴를 감내해 당의 단결과 혁신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던 그룹들과 이를 요구해 온 대의원들의 정치적 판단은 설 자리를 잃었다.
두 당원의 징계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다함께는 오직 국가보안법 문제로만 연결시키고자 하는 소통거부를 계속했고 자주계열은 편향적 친북행위에 대한 합의를 해줄 의사가 없었으며 이를 제외한 여타의 의견들 또한 비대위의 특수한 지위와 의미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혁신안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한 것이다. 각 의견그룹은 생존을 위한 당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속한 정파나 입장의 생존만을 위해 색깔이 옅어진 당내 여론에 자신들의 색깔을 입히고자 했다.
당원 제명 문제를 반드시 국가보안법의 인정과 불인정의 문제로 몰아대는 것도 일방적 태도였지만 사실 당규위반 문제만으로 얘기하는 것도 어색했다. 단순히 당규위반 수준의 문제라면 당의혁신과정으로써 쟁점이 될 이유도 없었으며 당 대회에서 굳이 첨예하게 다룰 내용도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자주계열의 사상적 경향에 대한 견제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비대위는 당 내부의 합의수준(강령 또는 당헌당규)을 넘는 친북을 편향적 친북의 기준으로 삼고자 했으며 이 정도의 반성은 있어야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당을 함께 꾸려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들이대는 것은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었으며 정치적 방어를 위한 외피에 불과했다. 모순적이게도 양 쪽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한 채 에둘러 서로의 목적지에 닿으려 했지만 오히려 이는 비상정세를 왜곡시키는 효과만을 낳았던 것이다.
싫든 좋든 의도했든 하지 않았던 자주파의 후퇴와 반성이 당 혁신을 추구하기 위한 전제이며 그 자체가 혁신이기도 하다는 입장들이 당의 존립을 내걸고 혁신안 지지를 요구하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당 대회에서 소통거부와 정치적 합의를 거부하던 환호성은 거부를 넘어 상대에게 근본적 상실감을 안긴 행위로써 그 또한 탈당과 분당을 강요한 행위나 다름없는 '정치적 학살'이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상적인 파악이지만 그동안의 상황에 대한 나의 판단은 이렇다. 내 입장에서 정리하자면 대선 이후 상황은 당의 혁신과 당의 수호가 하나의 중요한 진보적 가치였다고 생각하는 소수가 자신들이 신념으로 갖고 있는 입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다수(분당파, 자주파, 다함께, 평등파.... 등등)의 충돌 속에서 사라져간 시간이었다. 이렇게 고래싸움에 등 터진 새우들 또는 사라져간 이들을 혁신파라고 칭할 수도 있지만 민주노동당답게 그 폭과 내용이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분파로 규정할 수 없다. 굳이 명칭이 필요하다면 민주노동당파라고 '했다면' 영광스러울 것이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는 내적 질서(다양한 견해의 연대와 연합)가 하나의 희망이고 새로운 진보적 가치를 생산하는 소중한 토대라고 본다. 이 희망의 근거를 허물지 않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사상적 입장은 객관적 정세(대선패배)에 의해 때론 양보할 수도 마땅히 후퇴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부류로 민주노동당의 창당정신과 부합하고 민주노동당의 유지의 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은 당연히 당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며 상대적으로 정파적 색체도 흐리다. 대다수의 무정파 당원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에 반해 당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그룹들은 당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대방과 정치적 합의를 우선으로 상정하지 않으며 그 방식(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다. 패권주의를 낳는 태도이기도 하고 창당정신이나 당을 유지해 온 방식과도 맞지 않다. 당연히 정파적 경향이 매우 강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지도구심을 당 밖에 놓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민주노동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로써 상호존중과 소통, 정치적 절충과 합의, 불가피한 양보는 거부되었다. 그도 아니면 다함께처럼 자폐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 본연의 창당정신이 짓밟힌 이상 당에 남아있기가 민망해져버린 민주노동당파 당원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간판은 여전히 남아있겠지만 그 정신은 파괴되었고 다시 '진보'는 거리를 떠돌고 현장을 떠돌아다녀야 할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를 고민하고 불가피한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할 당 대회였다. 당을 떠나는 당원들은 늦었지만 탈당을 통해 마지막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뒤늦게라도 긴급했던 이들의 정치적 주장을 담아낼 수 있다면 또 다시 민주노동당의 희망을 논할 수 있다. 어차피 무정파였던 나는 두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이미 실패한 일인 것은 분명하기에 정파에 상관없이 수많은 당원들이 떠나고 있다. 나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합의가 실패한 이상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무엇이 최선인가를 확신할 수 없다. 특히나 민중을 위한 현실적 길은 무엇인지 묻게 되지만 해답이 없다. 이런 우유부단함이 나를 무정파로 만들었지만 지역에서 신당을 논했던 이들을 적극 비판했던 당사자인 만큼 그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해답을 당이 보여주지 못한 이상 그 일원인 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방식이 꼭 탈당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탈당의 무게로 제기한 문제인 만큼 책임 또한 그 만큼의 무게로 달아야 하지 않을까? 이 갈림길에서 난 부릉부릉 제자리에서 공연한 공회전만 하고 있다. 시원하게 출발하고 싶지만 지나 온 길의 추억과 새로운 길의 희망 모두를 놓지 않을 욕심에 엉거주춤 비겁하다. 그러나 당장 내일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언제나 난 항상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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