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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의 일기 | |
좀비영화들의 부활에 자극이라도 받았다는 듯, 조지 로메로 감독의 새로운 좀비영화 <시체들의 땅>(국내 제목 : 랜드 오브 데드)가 2005년 개봉되었다. 사실로 말하자면 <시체들의 땅>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보다 훨씬 일찍 촬영을 끝냈지만 <새벽의 저주>가 성공하고 나서야 개봉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거지만. 좀비로부터 살아남은 인간들은 요새도시를 건설한 독재자 하에 극심한 빈부의 격차와 계급차를 경험하는 한편, 좀비들이 지능과 각성을 갖게 되며 인간들에게 대적하게 된다는 <시체들의 땅>은 평단의 미지근한 반응과 함께 당시 2,200여 개의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개봉 주 박스오피스 4위에 그쳤고, 미국 내 수입은 고작 2천만 불을 간신히 넘기고 종영했다. 하지만 조지 로메로는 좀비영화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올해 초 미국에서 개봉한 <시체들의 일기>는 고작 42개 극장에서 개봉해 총수익이 아직 백만 불도 넘기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조지 로메로 감독은 <시체들의 일기>의 흥행성적과 상관없이 2009년 개봉을 목표로 <시체들의 일기>의 속편 제작을 발표한 상태다. 국내에서는 <시체들의 일기>가 이번 전주영화제를 통해 처음 소개된 것으로 아직 수입사가 나서지 않은 상태다. <시체들의 일기>는 수업과제로 공포영화를 찍고 있던 일군의 영화과 학생들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출몰한 좀비들을 맞닥뜨리면서 찍은 영상물로 구성한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좀비영화와 <블레어 위치>의 결합이라 할 수 있지만, 실제처럼 보인답시고 극도로 눈이 피곤하도록 좌우상하로 흔들어대는 카메라는 보지 않아도 되는 건 너무나 다행한 일이다. 영화 속 영화의 감독 제이슨이든 일행 중 한 명이든 혹은 CCTV 카메라든, 누군가의 카메라 속 화면으로만 구성된 이 영화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데브라의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와 현실,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관계에 대한 통찰을 직설적으로 발언한다. 아마도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 당시 평론가들의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직설법에서 기인하는 듯하지만, <시체들의 일기>는 직설법으로 말하는 영화라도 촌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드문 영화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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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들의 일기 | |
데브라의 내레이션을 빌자면 "누군가가 사고를 당했을 때 사람들이 멈춰서는 건 사고당하는 이를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구경하기 위해서"이고, 나아가 이를 찍어 인터넷에 올려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기 위한 것인 게 오늘의 현실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은 채 이를 기록하려는 '기록자의 욕망'은 카메라를 든 자에겐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영화 속 영화의 감독인 제이슨은 친구가 바로 눈앞에서 좀비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카메라를 놓고 그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그대로 카메라에 담으며 심지어 영화를 찍는 현장과 혼동해 '컷! 컷!'을 외쳐댄다.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편집을 해 유투브에 자신이 촬영한 것을 업로드하고 순간접속자의 숫자를 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즉 우리의 일행들이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영상을 보여주면서 조지 로메로 감독은 이들의 '기록의 욕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좀비들을 '재미'로 묶어놓고 사냥하며 목을 날려대는 인간들의 모습은, 감독의 전작 <랜드 오브 데드>에서 살아남은 인간들 사이에서조차 또다시 극심한 계급과 빈부의 차를 만들어내며 다른 이를 착취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제이슨과 일행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실을 기록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했던 '진실'은 이렇게 한순간 다른 이들의 유희로 전락하고 만다. 쇼핑에 열을 올리며 소비자본주의 사회에 중독돼 가는 중산층들을 향해 "너희가 바로 좀비들이야!"라고 외쳤던 조지 로메로의 영화들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 오락 액션영화를 위해 재활용되는 현실에 대한 조지 로메로 식 대답인 것일까?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조지 로메로의 '불쾌감'만을 전달하는 영화는 아니다. 현실을 가공하거나 재구성하여 영화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고민해 봐야 할, 카메라와 현실 사이의 관계, 그리고 현실과 영화를 중계하는 카메라의 존재에 대해깊은 성찰과 고민을 보여주는 메타 영화라는 게 오히려 이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 될 것이다. <시체들의 일기>는 전주영화제 기간 중 5월 3일 심야상영(불면의 밤 - 호러의 밤) 때 단 한 번 상영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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