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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을 오히려 삶의 동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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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고통을 오히려 삶의 동력으로

[Film Festival] 랜스 해머 감독의 인상적인 데뷔작 <발라스트> 리뷰

동생이 약물과다 복용으로 죽은 뒤, 상실과 절망감에 빠져있던 형은 결국 자신의 입에 총을 넣고 쏘아 자살을 시도하지만 무위로 끝난다. 병원에서 돌아와 무력한 상태에 있는 그에게, 총을 든 꼬마가 집에 쳐들어와 그를 위협하며 지갑의 돈을 강탈해 간다. 그러나 매일 총을 들고 찾아오는 아이를 귀찮아하기는커녕 번번이 받아주는 이 남자, 사실은 아이와 알고 지내는 사이처럼 보인다. 과연 이들은 어떤 관계인 걸까. 이들은 어쩌다 총을 겨누고 그걸 받아주는 관계가 된 걸까? 랜스 해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발라스트>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일단 이 영화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촬영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감독에게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과 로빈>, <프랙티컬 매직>의 시각효과를 담당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게 만드는 화면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남자와 아이, 그리고 아이의 엄마, 이렇게 세 사람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 96분짜리 영화는 자신의 분신을 잃고 그 상실감에 고통받는 남자와, 삶의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다가 누군가의 죽음 때문에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모자(母子)가 서로 조금씩 마음을 열고 화해하며 관계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묵묵히 쫓아간다. 화면은 입자가 다소 거칠고 핸드 헬드를 많이 사용한 데다 점프컷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그러면서도 두 인물을 찍은 숏에서는 컷으로 나누기보다 카메라를 이동하거나 초점을 이동시키는 방식을 즐겨 사용한다. 게다가 영화에는 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영화의 엔딩 타이틀마저도 음악이 전혀 없는 고요한 침묵 상태에서 올라간다. 배우들은 모두 이 영화로 데뷔를 한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발라스트

우리의 인물들은 과거의 어떤 상처 때문에 모두들 고통받고 있으며, 그들은 마치 그 상처를 입 밖으로 꺼내면 아픔이 더 커질 것이라도 한 듯 도저히 그 상처를 수면으로 꺼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스산한 삶은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미시시피 삼각주의 황량한 풍경을 똑 닮았다. 그러나 남자와 모자가 마주치는 회수가 많아질수록,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상처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영화가 한참 진행이 되고 이들 사이에 띄엄띄엄 오가는 대사를 통해, 이들이 그토록 어렵게 조금씩 입에 올리는 자신들의 상처를 통해 나중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어렵게 하나하나 개봉되면서, 우리는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과 무게에 조금씩 동참하게 된다. 영화의 전체 이야기는 퍽 단순하지만, 이런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퍼즐식 구성 때문에 그들의 별 거 아닌 신상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그것이 마치 영화의 큰 반전이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곧 그들의 자그마한 감정과 느낌에도 하나하나 깊이 이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발라스트>는 고통과 절망이 아니라 희망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다른 식의 '관계맺기'와 이를 통한 구원에 관한 영화다. 배의 앞뒤 경사에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배에 일부러 싣는 짐을 뜻하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들에게 상처와 짐이었던 것들을 오히려 삶의 새로운 동력과 버팀목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자신과 서로의 상처를 대면하고 그것을 감싸안으며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는 아픈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다른 이에게서 '받은' 상처뿐 아니라, 내가 다른 이에게 '준' 상처를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 겪는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토닥이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것을 용감하게 해내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영화의 스타일 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큰 울림을 주는 것, 그리고 그 울림이 아무 음악도 사운도 효과도 없이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 시간 동안 점점 더 큰 파문을 그리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발라스트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 영화다. 랜스 해머 감독이 각본과 편집을 직접 담당한 장편연출작으로, 이미 언급했듯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촬영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7일 한 번 더 상영될 예정이며, 국내에는 아직 수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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