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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스트 | |
우리의 인물들은 과거의 어떤 상처 때문에 모두들 고통받고 있으며, 그들은 마치 그 상처를 입 밖으로 꺼내면 아픔이 더 커질 것이라도 한 듯 도저히 그 상처를 수면으로 꺼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스산한 삶은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미시시피 삼각주의 황량한 풍경을 똑 닮았다. 그러나 남자와 모자가 마주치는 회수가 많아질수록,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상처와 대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이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영화가 한참 진행이 되고 이들 사이에 띄엄띄엄 오가는 대사를 통해, 이들이 그토록 어렵게 조금씩 입에 올리는 자신들의 상처를 통해 나중에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어렵게 하나하나 개봉되면서, 우리는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과 무게에 조금씩 동참하게 된다. 영화의 전체 이야기는 퍽 단순하지만, 이런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퍼즐식 구성 때문에 그들의 별 거 아닌 신상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그것이 마치 영화의 큰 반전이 계속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곧 그들의 자그마한 감정과 느낌에도 하나하나 깊이 이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발라스트>는 고통과 절망이 아니라 희망과 새로운 시작, 그리고 다른 식의 '관계맺기'와 이를 통한 구원에 관한 영화다. 배의 앞뒤 경사에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배에 일부러 싣는 짐을 뜻하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들에게 상처와 짐이었던 것들을 오히려 삶의 새로운 동력과 버팀목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자신과 서로의 상처를 대면하고 그것을 감싸안으며 상대의 고통을 이해하는 아픈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것은 내가 다른 이에게서 '받은' 상처뿐 아니라, 내가 다른 이에게 '준' 상처를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 겪는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토닥이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이것을 용감하게 해내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영화의 스타일 때문에 다소 지루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큰 울림을 주는 것, 그리고 그 울림이 아무 음악도 사운도 효과도 없이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는 시간 동안 점점 더 큰 파문을 그리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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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스트 | |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섹션에서 상영되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된 영화다. 랜스 해머 감독이 각본과 편집을 직접 담당한 장편연출작으로, 이미 언급했듯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촬영상과 감독상을 수상했다. 7일 한 번 더 상영될 예정이며, 국내에는 아직 수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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