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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인간은 고독하게 투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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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인간은 고독하게 투쟁한다

[Film Festival]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리뷰

<쉘 위 댄스> 이후 10년만에 내놓은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는 치한 혐의로 체포된 뒤 합의를 거부해 12차 공판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재판에 임하게 되는 평범한 청년 가네코 텟페이의 여정을 다룬 법정드라마다. 작년 일본에서 개봉된 후 일본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여우조연상, 미술상, 편집상을 수상했으며, 영화잡지 [키네마준보] 선정 최고의 작품, 감독, 남우주연, 각본으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독자들이 뽑은 최고의 영화의 자리도 석권하며 평단과 관객 양측에서 열렬한 지지와 환호성을 받았던 작품. 한국에서 공식적으로는 이번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통해 처음 소개된 이 영화는 당초 알려졌던 것처럼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영화라기보다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사법제도 틈새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고독하게 투쟁하는 숭고한 인간을 다루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물론 기나긴 법정투쟁의 과정 동안 주인공 가네코 텟페이가 처한 억울한 사연과 이를 한층 더 심화시키는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이 일부 고발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단순히 그 현실을 폭로하는 데에서 두 발짝 더 나아간다.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영화는 가네코 텟페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작하지만,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피해자는 그를 범인으로 착각할 만한 충분한 상황적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를 범인으로 단정하며 편견을 일부 드러내는 검사나 판사마저도 자신의 위치에서 멋대로 주관을 이입하는 대신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법적 판단에 매달린다. 그런가 하면 그에게 호의적이며 무죄 추정의 원칙에 충실했던 첫 판사도 피해자에게는 유도심문을 하는 등의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이렇게 어느 한 편을 일방적, 선정적 옹호하는 대신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고 집행해나가는 불완전한 사법제도의 본질 그 자체를 차분하게 고찰하며 등장인물 모두, 심지어 우리의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인물마저도 사려깊은 태도로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취조'라는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던 평범하고 순진한 청년 가네코 텟페이는,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만들어진 사법제도가 '현실적' 불완전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간임을 깨달아간다.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판사의 최종판결문이 낭독되는 그 순간 삽입되는 그의 독백은, 영화 초기에 어리숙하고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가 인간의 이성을 근간으로 했던 근대적 의미의 '계몽된 인간', 나아가 자신의 도덕적 양심에 근거해 자신의 존재와 존엄성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숭고한 인간'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요소이다. 대체로 건조하고 치열하게 구성된 공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장면이 묵직한 울림과 여운을 남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처음 그가 혐의를 인정하고 손쉽게 유치장을 나오는 대신 1년이 훨씬 넘는 재판을 선택한 것은 그저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으니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다소 나이브하고 순진한 믿음 때문이었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또다시 긴 싸움을 선택하며 항소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계몽된 인간, 숭고한 인간이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인 셈이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은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법적 공방 장면들로 영화를 구성하면서도, 그저 현상이 아닌 본질을 통찰해는 예리한 안목과 더불어 이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드러내는 연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가네코 텟페이 역을 맡은 카세 료 역시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을 매우 섬세하고도 설득력 있는 연기로 그려낸다.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는 7일 한 번 더 상영될 예정이며, 국내에 수입되어 7월경 일반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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