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중 한 명인 루웨이 작가가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하는 마스터클래스'에서 아청 작가와 공수창 감독에 이어 7일 세 번째 마스터클래스를 가졌다. 루웨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듬해인 1950년 북경에서 태어나 서안에서 자랐고, 현재도 서안에 거주하고 있다. 66년에서 76년까지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하방당해 농촌에서 노동자로 일했으며, 스무살이 갓 넘었을 당시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가 장이모, 첸 카이거 등 중국 5세대 감독들을 대거 길러낸 서안영화제작소에 들어가 한동안 미술 담당으로 일했다. 동료들이 영화감독들이 되면서 그와 시나리오에 대해 상의하는 일이 많아졌고, 우연한 기회로 결국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와 장이모 감독의 <인생>, 그리고 최근에 국내에서 개봉한 왕 취엔안 감독의 <투야의 결혼>까지, 루웨이의 손을 거친 영화들은 모두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들이며 최근의 영화들을 제외하면 주로 중국 5세대 감독들의 영화들이기도 하다. <투야의 결혼> 상영 이후 2시부터 시작된 강연은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임재근 교수가 모더레이터를 맡고 같은 학교 통역대학원의 김진숙 교수가 통역을 맡아 진행됐다. 일방적인 강연의 형태 대신 임재근 교수의 전반적이고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 루웨이가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이후 객석에서의 질문이 이어졌다. 마스터클래스인 만큼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이 주로 참석해 열띤 질문을 던졌고, 이에 루웨이는 짧지만 굵직한 답변들로 화답했다. 아래는 이 시간에 오고간 질문과 답들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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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작가 루웨이 ⓒ프레시안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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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분야에 비해 영화에서 작가는 다소 보조적인 역할로 비춰지곤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시나리오 작가의 역할과 한계는 무엇인가? "비유로 얘기해보자. 감독이 사령관이라면 시나리오 작가는 참모이다. 감독이 건축현장의 총책임자인 소장이라면 시나리오 작가는 설계자다. 그렇기에 시나리오 작가는 한 영화의 전체 질을 좌우하게 된다."
많은 작가들이 결국 감독으로 전업하는 것은 최종 권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신도 이미 극영화 한 편을 연출한 바 있는데, 앞으로도 자신의 각본을 다시 연출할 생각이 있는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면 감독을 맡기고, 적절한 사람이 없다면 내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아장커나 왕가위 등 시나리오 없이 촬영하는 날 즉석에서 대본을 주는 감독들도 있다. 완성된 시나리오로 작업하는 경우와 즉석대본으로 작업하는 경우 영화에 어떤 차이가 발생할까? "굉장히 다른 차이가 발생한다. 지아장커나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내러티브가 강한 영화가 아니다. 왕가위 감독도 홍콩에서 유일하고 대륙에서도 그런 감독의 숫자는 많지 않다. 전체로 치자면 1% 정도 될까? 그들은 천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하는 것일 텐데, 그들이 진정한 천재인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할 것이다. 사실 나는 그런 식의 방식에 좀 회의적이다. 영화란 돈을 많이 들여서 하는 작업인데 그런 식으로 해서야..."
그들의 영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많이 보지 못했다. 두 편 정도 봤는데 잘 찍었더라. 지아장커 감독의 영화는 다 봤는데 일부는 좋더라. 내가 좋다고 느꼈던 영화는 시나리오가 원래 있었던 영화다. 그 영화를 보고 지아장커 감독에게 "이거 시나리오 있지?"라고 물어봤더니 "당연히 있지"라고 대답하더라. 지아장커 감독도 원래는 시나리오 전공이었다. 그는 한때 돈을 벌기 위해 연속극 대본을 쓰기도 했다."
당신은 이야기의 서사성에 주목하는 것 같다. 역사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게 표명하며 중국 근현대사에 관련한 작품이 많다. 역사라는 것도 기승전결이 또렷한 서사성이 강한 재료이기도 하다. 당신은 영화가 반드시 통합의 서사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영화란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 철학, 현실, 생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할 땐 이야기가 전달되어야 한다. 이야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 철학자는 될 수 있겠지만 영화제작자는 될 수 없다."
당신은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각색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 장이모의 <인생>도,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도 마찬가지다. 각색 작업을 중점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각색과 순수 창작 시나리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각색이든 창작이든 하나의 작품을 위해서 준비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다만 각색작업은 테크닉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순수창작보다 각색이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다. 창작을 하는 경우 차라리 더 자유로울 것이다. 각색을 하든 창작을 하든 영화에 기본이 되는 플롯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영화가 90분이 됐든 길면 160분이 됐든 그 시간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플롯의 규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시나리오 이론에 관한 얘기다. 책을 몇 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시나리오 이론서가 나보다 더 명확하게 얘기를 해줄 것이다. 전세계 영화학교에서 헐리웃식 영화 작법을 위해 보는 책들이 있다. 나도 이런 책들을 봤고 적지 않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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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무비 |
중국 4대 기서(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를 함부로 각색하지 않겠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유로 당신의 역량이 아직 부족해서, 두 번째로 중국의 유구한 전통문화가 보존돼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떤 이야기든 원형이 있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변형, 재창조되는 법이며 삼국지만 해도 여러 번 영화화된 바 있는데, 원형 서사를 보존한다는 것과 변형 및 재창조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당신이 각색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가 정말 그 이유 맞는가? "참 어려운 얘기다. 우선 우리가 이런 위대한 작품들을 찍을 만한 자격이 있는가, 정말 그 작품들을 존중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영국 작가가 쓴 작품을 영화화한 적이 있는데, 만약 우리의 감독들이 로만 폴란스키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런 위대한 작품을 영화화하는 일에 참여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4대 기서를 각색하지 않겠다며 내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 답한 것은 나의 솔직한 답변이다. 그런 작품들을 각색할 자격이 아직 내게는 없다. 나보다 더 재능있는 사람들이 해야겠지."
그러나 당신은 오우삼 감독의 <적벽>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적벽> 역시 삼국지 중 적벽대전을 영화한 것 아닌가? "맞다, 참여햇다. 하지만 내 재능이 나아져서 그런 건 아니다. 오우삼 감독에게 "삼국지(역사)를 기반으로 할 것인가 삼국지연의(소설)를 기반으로 할 것인가" 물어봤다. 즉 역사를 존중하는 입장인 것인가, 이야기 즉 드라마의 입장인 것인가 물어본 것이다. 오우삼 감독은 역사적인 사실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드는 영화는 그러므로 정극영화라 할 수 있고, 삼국연의와는 상관이 없다. 오우삼 감독은 작품을 각색할 수 있는 전권을 나한테 주었다. 이 작품은 삼국연의와는 상관이 없고, 따라서 내가 내 말을 뒤집은 것도 아니다."
<패왕별희>, <인생>, <진송> 등 5세대 감독들과 주로 작업해왔고 그 감독들은 80년대 이래 중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이란 칭호를 받으며 대내외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런 찬사는 주로 서양의 영화제에 의한 것이었고 이들은 해외에서 힘을 키워 다시 중국 내부로 귀환하는 여정을 거치면서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짙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제 5세대 감독들은 "영화는 상업적이어야 하며 나는 이제 상업영화만 찍겠다"고 선언하며 실제로 <황후화>, <무극>, <영웅>, <연인> 등의 영화들을 내놓았다. 그런데 왕 취엔안 감독의 <투야의 결혼>은 5세대 감독적 혐의가 짙게 나타난다. 소수민족을 다루는 근래 중국영화들의 경우, 중국 내부에서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는 이러한 행위가 한족 입장에서 소수민족을 대상화하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중국 5세대 감독들이 서구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았던 그 방식 그대로 일종의 '셀프 오리엔탈리즘'의 방식이 아닌가 싶고, 투야의 결혼식 같은 장면도 오리엔탈리즘적인 숏으로 촬영되었다고 보인다.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떠한가? "먼저, 첸 카이거나 장이모 같은 5세대 감독들에게는 그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에는 그들이 영화를 위해 영화를 찍으며 영화에 헌신했다면, 요즘은 영화가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가장 큰 변화일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학술적인 분야에 속하는 이야기로, 에드워드 사이드가 얘기한 학설이다. 그러나 어떤 학설이든지 언제나 그에 반하는 다른 학설들이 있고, 양자 모두 자신만의 근거와 이론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필요한 얘기는 오리엔탈리즘도, 옥시덴탈리즘도 아니고 바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동양인이냐 서양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란 영화를 볼 때 감동하곤 하는데, 그 영화를 볼 때 이게 무슨 주의인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카메라를 들고 찍는 주체와 찍히는 대상 사이에는 권력관계가 발생하지 않는가. 바로 여기에서 오리엔탈리즘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몽고족이 어떻게 '보여지는가', 몽고족을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몽고족이 직접 몽고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한족이 몽고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다르지 않겠는가. "내가 예전에 좋게 본 영화 중에 러시아 감독인 니키타 미할코프 감독이 몽고족에 관해 만든 영화인 <왈카>가 있다. 월카는 방목하는 말을 잡아들이는 고리를 가리킨다. 이 영화는 서양에서 상당히 유명세를 얻었고 92년엔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다. 러시아 감독이 몽고족에 대해 찍은 것이다. 그 감독이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나는 영화를 찍을 때 작품 속의 권력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다. 내가 <투야의 결혼>에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투야라는 여인의 운명이다. 영화학과 사회학을 이렇게 연관짓는 것은 또 하나의 신성한 영역으로,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구상에서 탈고에 이르기까지 작업을 하면서 대략적인 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특히 중점을 두는 과정이 있다면? "내 경험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시작이냐 중간이냐 결론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감동시킬 수 있다면 이 시나리오는 아주 잘 써질 것이다. 감동시킬 수 없다면 그 어떤 테크닉도 작가를 구해줄 수 없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시나리오의 규범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내용이다."
중국에서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경제적 대우는 어떠한가? "중국영화의 제작 상황이 아직 낙후돼 있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와 영화에서의 분업작업이 아직 성숙했다고 보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의 지위에 대해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달까."
단도직입적으로, <투야의 결혼>으로 얼마를 받았나? "한국돈으로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중국 세무국에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계약을 명시적으로 하는 편인가? "경우에 따라 다르다. 예전에는 없었다. 장이모 감독이 해달라고 하면 가서 해준 후 돈을 받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작자가 돈을 지급하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은 계약서가 꼭 있어야 한다. 만약 돈을 받고 시나리오를 넘기지 않는다면 그가 나를 고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이모 감독의 <인생>과 위화의 원작소설을 모두 봤다. 소설에서 주인공 부귀는 가족 모두가 죽고 혼자 남았지만 영화에서는 부귀가 나름 행복해진다. 이렇게 각색한 이유가 있는가?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찍고 싶었던 게 보통의 일반 가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가정에서나 가족 구성원이 죽거나 새로 태어나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가족 모두 죽고 노인네 한 명만 남는 건 그리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부귀를 그렇게까지 불쌍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부귀가 보통의 일반적인 가정을 이루기를 원했다. 슬픔도 있지만 그 사이에 어느 정도의 기쁨도 누리기를 바랐다. 그런 슬픔을 한 사람에게 모두 몰아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투야의 결혼>에서 여주인공을 보다보니 <인생>에서 부귀의 아내가 떠올랐다. 당신의 여성상은 어떠한가? "인내하는 강함은 중국 여성의 특징이다. 다만 한 사람은 한족이고 한 사람은 몽고인이다."
북부지역의 여성과 남부지역의 여성은 차이가 있는 듯하다.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문화는 다를 수 있겠지만 본질적인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좋은 시나리오의 특징은 결국 감동을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영화 뿐 아니라 모든 예술 형태의 궁극적인 의미나 목표가 바로 감동이 아닌가? 그렇다면 영화만이 가지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장점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여기에서 특히 시나리오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나에게 예술이라는 건 감동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영화는 종합예술인 덕에, 모든 예술 분야에서 감동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영화에서는 보다 종합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영화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시나리오는 모든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이다. 나는 이것이 시나리오와 배우의 차이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가 배우보다 힘든 것이다. <투야의 결혼> 시나리오에서는 주요인물이 네 명인데, 시나리오 작가는 결국 네 명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나리오 작가가 어려운 점이다."
<투야의 결혼>에서 특히 썬거의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썬거나 투야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가? 보통 캐릭터를 먼저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야기와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캐릭터를 만들어내는가?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때는 먼저 플롯을 생각하고 나중에 인물을 떠올리는가 하면 그 반대도 있다. 보통은 플롯보다 인물을 먼저 생각한다."
<투야의 결혼>에서 우물이 그토록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된 이유가 무엇인가? "우물을 파는 행위는 썬거라는 인물의 구혼의 방식이다. 우물을 파는 방식으로 투야와 자신간의 관계의 돌파구를 삼는 것이다. 그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영화에서 보면 알겠지만 그 지역은 물이 부족한 곳이므로 우물을 판다는 건 필요한 것을 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투야가 떠나려 하는 것도 그곳에 물이 없기 때문이다. 투야가 결혼해서 다른 곳으로 가려 할 때 썬거가 "내가 우물을 팔게"라고 말하는 건 곧 "내가 우물을 팔 테니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몽고족은 유목민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 우물은 원래 한 마을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다. 유목민은 우물을 파고 그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나 시놉시스를 공개했을 때 이미 그런 영화는 있지 않냐는 반응을 얻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도 계속 원하는 대로 밀고 나가는 게 좋을까, 다른 이들의 말을 듣는 게 좋을까? "정말 신경써야 할 것은 이야기가 중복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있는가, 그 인물을 얼마나 이해하는가이다. <투야의 결혼>과 비슷한 플롯을 가진 영화는 중국에서도 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투야라는 바로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투야는 투야다. 중요한 것은 계속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다. 관심이 있으면 재능도 생기는 법이다. 관심이 없으면 재능도 사라진다."
시나리오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농촌에 가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고 간 뒤 이후 다시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내 시나리오에는 오탈자가 많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고 실수도 하셨을 것 같다. "지금도 매일 틀리고 실수한다. 내게 충고를 청한다면 내 경험을 말해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는 "만약 당신이 진정한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면 당신의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이 말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정치도, 전쟁도, 사랑도, 심지어 주식마저도 드라마로 봐야 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면 당신의 삶 그 자체가 드라마가 해야 한다."
아직도 중국에는 영화 심사제도 (주 :검열)가 있는데 지금도 있는지? 심사제도에서 문제가 있었거나 이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자기검열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물론 있다. 너무 많아서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 없다."
최근 중국에서 전문적인 시나리오 전문 교육기관이 많이 있는지? "제일 유명한 두 곳을 소개해 주겠다. 하나는 북경의 영화대학인데 여기엔 시청각작품과가 있고, 커리큘럼을 보면 시나리오를 교육하는 곳이다. 중앙희극대학에는 희극문학과가 있다. 여기에서는 주로 무대 대본을 다루고 시청각 문학도 가르친다. 상해에도 희극학원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 세 학교는 시나리오 전공 쪽에서는 비교적 좋은 학교다."
보통 작가들은 마감이 다가올 때에 초인적인 역량이 발휘되곤 한다. 당신도 그러는가? "기한, 시한이라는 건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까지는 반드시 완성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제한된 시간 안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다른 감독들에게서 의뢰받고 쓰는 경우가 많은가, 먼저 작업한 뒤 감독에게 제안하는 경우가 많은가? "반반 정도 되는 것 같다."
먼저 작업해서 가져갔다가 퇴짜를 받은 적도 있는지? "당연히 있다. 20년 전에 시나리오를 하나 써서 가져갔더니 제작자가 돈이 안 된다며 거절하더라. 유명한 화가의 어린 시절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작업을 하면서 무척 행복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가져야 할 것은 자신의 작품이 거절당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심성을 가져야 하고 가난에 대해 두려움을 크게 가져서는 안 된다."
작품이 완성되면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주곤 하는가? 그런 친구들이 많은가? "당연히 있다. 하지만 많지는 않다. <패왕별희>는 제작자나 감독이 보기 전 딱 두 사람이 봤는데, 영화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 친구들이 말하길, "첸 카이거가 네 시나리오대로만 찍으면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해줬다. <패왕별희>는 내가 쓴 시나리오 중 가장 시나리오에 가깝게 찍은 영화고, 다른 건 딱 한 장면밖에 없다. 첸 카이거와 아주 성공적인 협력작업을 했던 예에 속한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갈 때 개인적 습관이나 징크스 같은 것이 있는가? "특별한 습관은 없고, 글이 잘 안 풀리면 산책을 하곤 한다.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산책을 하는데, 이 시간이 인물 속으로 내가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때로 내가 찾지 못했던 답변을 음악이 주는 경우가 많다."
한국전쟁에 대한 자료를 많이 보내고 있다고 들었다. 개인적 관심 때문인가, 다른 작품의 구상을 위한 것인가? "<적벽> 시나리오를 쓰면서 전쟁에 관한 자료를 많이 봤는데, 2차대전사는 물론 태평양전쟁사 등을 보면서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사를 보게 됐다. 장인어른이 한국전에 참전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아내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했고 졸업하고서 미국 공군에서 의료 서비스를 했다. 같은 가족이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나라에서 일을 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은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전쟁에 관심이 많고 그 안에서 많은 중국인과 한국인이 희생됐다. 우리 영화계도 역사에 대해 직면할 필요가 있다."
시안에서 자란 것이 역사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준 면이 있는가? "내가 살고있는 서안은 중국 역사의 발원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환경이 분명 내게 끼친 영향이 있을 것이다. 장이모도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이다."
<투야의 결혼>을 개봉 때에도 봤지만 지금 다시 보니 느낌이 달랐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소수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이 좋을까, 방대한 양의 영화를 많이 보는 게 좋을까? "두 가지 방법 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많이 봐야 하고, 일부 중요한 작품들의 경우 연구하는 자세로 반복해서 봐야 한다. 내 경우 중요한 작품의 경우 필기하면서 보고 시나리오, 감독, 연기, 음악, 미술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 작품을 분석한다. 그렇게 연습을 계속해 나가다 보면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커진다. 나는 중학교만 졸업한 사람 아닌가. 가방끈은 짧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영화를 이해하게 됐다."
<투야의 결혼> 같은 종류의 이야기는 중국에 이미 많다고 했는데, 썬거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서 실제 모델이 된 사라밍 있는가. 엔딩 크레딧에서 실제 인물이 출연한 것도 같은데?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인물에 대해서도 완성한 것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대충 남자, 여자로 썼다가 배우가 결정되고서 배우의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 영화에서 직업배우는 딱 한 명, 투야뿐이고 다른 배우들은 모두 일반인을 캐스팅한 것이다. 바투르는 내몽고 초원에서 발견한 사람으로, 양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나중에 영화를 찍고서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했다. 내몽고 관청에서 "우리 내몽고에 이런 훌륭한 배우가 있다니" 하더라. 바올리어는 한 식당의 사장님인데, 영화를 찍을 곳을 찾으러 다니다가 밥을 먹었던 곳인데 음식이 아주 맛이 있었다. 그래서 사장과 친구가 됐다. 그 분은 나중에 "연기가 식당보다 훨씬 쉽다"고 말했다. 썬거는 경마를 구경갔다가 발견한 사람으로, 여자주인공을 꼬셔보려고 하더라. 투야 역할의 배우가 몽고족 의상을 입고 있으니 그냥 평범한 몽고여자로 생각했던 거다. 이 사람 참 재밌구나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역할을 제안했다. 사실 그는 농부로, 말을 상당히 잘 타기 때문에 말을 타면서 곡예를 해서 돈을 벌기도 한다. 몽고 현지 사람들이다, 모두. 나는 그들의 연기에 모두 만족한다."
비전문배우를 캐스팅했을 때 연기 지도 같은 것이 어려웠을 것 같은데, 어떤가? "영화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와 감독은 공감대가 잘 형성돼 있었고, 우린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1/3은 좋은 배우고, 1/3은 나쁜 배우, 나머지 1/3은 그저그런 배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좋은 배우를 찾는 건 쉬운 일이다."
이 객석에서도 캐스팅할 만한 사람이 있는가? "난 시나리오 작가라 그럴 일은 없을 듯. 이 자리에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추천권이 있지 않나? "바트르는 내가 추천했는데 감독이 한번 보더니 캐스팅하더라. 썬거는 감독이 결정했고, 바울리어는 나와 감독이 동시에 결정했다. <패왕별희> 때도 캐스팅에 내가 관여를 했는데, 진정한 협력은 모든 사람이 제안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장에서 원래의 시나리오가 변하는 경우, 특히 작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감독에 의해 변하는 경우가 있는가? "현장에는 이따금 가고, 당연히 현장에서 각본이 변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변하는 경우, 그건 그럼 당신 시나리오다, 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감독이 나보다 더 낫긴 하지만 대체로 나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한다. 감독들이 자신이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라 말해주고 싶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 작가가 되려면 천성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는가, 정식적인 교육을 받으면 되는가? "음악을 무척 좋아해서 자주 듣는데, 특히 세계 각지의 민속음악을 즐겨 듣는다. 중세 기독교의 종교음악도 좋아한다. 사실 중국 서북지역 민가에 대해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 할 수 있어서 음악학교 학생들에게 민속음악사 과목을 강의한 적도 있다. <패왕별희>의 경우 경극과 곤극 두 가지가 포함되는데 나는 그 둘 모두의 훌륭한 경극이다. 첸 카이거가 그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날 선택한 것은 매우 정확한 선택이었다. 내가 경극과 곤극에 대해 이해가 없었다면 그 시나리오를 쓸 수 없었을 테니까.
대사를 너무 추상적으로 쓰는 것이 내 단점이다. 어떡하면 좋을까. "교육기관들이 시나리오를 쓰는 테크닉은 가르쳐줄 수 있겠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의 정신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본인에게 달린 문제다. 그 인물의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선생이 해줄 수 있는 건 인물의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뿐,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을지는 말해줄 수 없다. 인물들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게 아닐까 싶다.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면 정확하고 생동감있는 대사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엄마에 대해 쓴다면, 자신의 엄마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중국영화들은 420편 중 60%가 주선율영화(중국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강한 바탕에 조금 더 세련된 예술성을 가미한 영화)이지만 5세대 감독들이 대거 상업영화로 전환했고, 최근 상업영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찍는 감독은 극히 일부분인 듯하다. 앞으로 중국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어려운 질문에 내가 어떻게 답을 하겠는가. 만약 한국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런 질문을 해도 '글쎄요'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너무 덩치가 커서 내가 답하기 어렵다. 나는 내 영화가 어떻게 돼야겠다에 대해서밖에 모르겠다. 중국은 14억 인구를 가진 큰 국가다. 내 영화에 대해 물어본다면 명확히 답할 수 있다. 14억 인구의 영화가 어떻게 되겠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답을 할 수 없다."
이후의 계획 "앞으로도 계속 인정받는 작품을 쓰고 싶다. <패왕별희>나 <인생>, <투야의 결혼>처럼 인정받는 작품을 쓰고 싶다. 한국의 관객들도 이 작품들을 좋아해주신 걸로 안다. 한국의 관객들이 이렇게나 많이 <패왕별희.를 본 것을 보고 깜짝 놀랐고 감동도 받았으며 행복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웅>이나 <황후화>처럼 돈을 많이 들였으나 보고 나면 입맛이 쓴 그런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다."
지금 작업중인 작품? "있다. 방금 전 하나 완성했고 올해 안에 한 작품 더 쓸 계획이다.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건 아니고 역사물이 될 예정이다. <진송>이란 역사물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영화는 사실 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하나 새로 써보려 한다."
1996년과 2006년 사이에 필모그래피가 비어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영화의 본질은 장르의 문제라 생각하는데, 모든 유형에 다 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기가 어떤 타입인가를 보셔서 결정해야 한다. 거기엔 물론 시나리오도 포함된다. 작업방법도 결정될 수 있을 거고. 백만달러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화와 2만달러 짜리 영화는 시나리오 작성 방법부터 달라진다. 내가 작업할 영화의 규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유형과 대상을 결정해야 한다. 영화는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만큼 관객이 누구냐를 보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작품 많이 썼다. 다 찍지는 못했고, 찍다가 중단되기도 했다. 시나리오 작가는 자기 운명에 대해 충분한 심리적 준비를 해야 한다. 시장에 일단 진입했으면 자기 자신도 일단 상품이다. 시장에서 내가 때를 잘못 만났다거나 느낄 때도 있겠지만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 10년간 많은 시나리오를 썼는데 6, 7편 가량 된다. 때로는 팔리기도 했지만... 다 내 탓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정부 당국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가. "어떤 사회 환경이든 시나리오 작가는 영향을 일정 정도 받기 마련이다. 작가의 선택이 작품의 생명력을 결정한다."
해외공동제작이 활성화된 지금 한국에 와서 작업할 생각은 없는지? "물론 있다.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패왕별희>의 경우 투자는 홍콩에서 했기 때문에 온전히 중국영화라 하기는 어렵다. 한국 회사에서 나에게 시나리오를 의뢰하려 했던 적도 있다. 원나라가 멸망한 후 원에 있던 한국인들이 다시 돌아가려는 얘기를 다룬 <무사>다. 처음 의뢰 얘기가 나왔을 때 나도 기뻤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식이 끊기더라.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날 찾지 않은 건 역시 실수한 거라고 생각했다. 무예 장면은 아주 훌륭하더라. 그런 액션장면에서 한국영화계가 거의 모든 테크닉을 마스터했구나 느꼈다. 액션은 일류, 하지만 이야기는 삼류였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말 인상적. 감동을 주는 것과 인간에 대한 이해는 사실 너무나 어렵다. 이를 어떻게 얻었는가? "사람에 대해 표현할 때 그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매우 중요하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못 한다면 그 시나리오는 완성될 수 없다. 소설을 읽을 때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다면,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내가 <패왕별희>를 쓸 때도 눈물을 흘리며 썼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던 사람도 울었다고. 네 번째로 본 사람은 첸 카이거 감독의 아버님인데 그 분도 눈물을 흘리셨다. 만약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기 작품에 한 번도 눈물 흘려본 적이 없다면 과연 그가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을까, 의심한다."
<투야의 결혼>를 보며 객석에서 종종 웃음이 터진다. 그 유머는 작가의 원래 의도인가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둘 다 맞다. 쓰지 않았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겠는가. 썼는데 연기를 못 했다면? 그래서 내가 써놓고 배우가 제대로 연기를 해야 관객들이 제대로 웃을 수 있다."
한국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중국의 문화, 역사 등을 배우려면? "우선 중국의 좋은 소설, 영화가 좋은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문화라는 건 상당히 추상적인 큰 개념이다. 자료도, 전통예술도 좋고, 이런 과정을 통해 민족의 '영혼'을 다룰 수 있겠지. 나는 가끔 한국영화를 보며 굉장히 감동을 받곤 하는데, 그럴 때 한국사람과 내가 아주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사람들의 문제가 내 문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으로 답변이 됐으리라 믿는다."
인사말 : 오늘 영화 보러 와줘서 감사하다.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뻤다. 한국제작사에서 내게 찾아와 한중 합작영화를 하자고 했으면 좋겠다. 중국 제작사에서 여러분들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단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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