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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 다 좋은 것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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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 다 좋은 것이 아냐

[신기주의 이야기 속으로] <놈놈놈>의 흥행을 바라보며

아홉 시 뉴스에 나오면 영화가 대박이 난다는 얘기가 있다. 영화가 극장 안을 벗어나서 세상 밖의 화두가 되면 관객이 몰린다는 얘기다. 요즘은 아홉 시 뉴스보단 <100분 토론>이다. <100분 토론> 흥행의 법칙은 반도체 분야의 황의 법칙처럼 꽤 증명됐다. <100분 토론>에서 <디 워> 찬반 논쟁을 다뤘을 때 <디 워>는 흥행 질주를 했다. <괴물> 찬반 논쟁을 다뤘을 때도 <괴물>은 천만 관객을 모았다. 토론 프로그램에 나온다는 건 토론할 거리가 있단 얘기다. 영화의 품질만 따지자면 평론에서 떠들고 말 일이다. 토론 거리가 되려면 사회 문제가 돼야 한다. 말이 말을 낳아야 한다. 지금까지 천만 영화란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낸 영화였다. 예외가 없었다. <실미도>는 북파공작원이라는 감춰진 역사를 들춰냈다. 명예훼손 공방과 추모 집회가 이어졌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천만 자체가 이슈였다.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모두 분단 문제의 연장에 있었다. <웰컴 투 동막골>도 마찬가지였다. <왕의 남자>는 이준기와 동성애였다. 이준기 신드롬은 <왕의 남자> 흥행의 절반이었다. <괴물>엔 논란의 반미 이슈가 있었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있었다. <화려한 휴가>는 광주였다. 울분이었다. 분노였다. <디 워>는 애국주의였다. 한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는 팝업창에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 영화 산업의 발전과 북미 시장 개척을 위해 <디 워>는 반드시 흥행을 해야 합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우리 사이트는 <디 워>의 불법 파일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디 워>는 불법 영화 다운로드 사이트마저 한국 영화 산업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이런 이슈들은 천만 영화들에게 뒷심을 실어줬다. 대체로 개봉 2주차를 전후해서 500만 관객을 돌파한다. 700만에서 800만이 고비다. 천만이 또 고비다. 이 땐 영화의 힘만으론 부족하다. 영화가 시사 상식이 돼야 한다. 그 때 이런 이슈와 논쟁이 도움이 된다.
괴물
<괴물>은 반미 영화가 아니다. <괴물>이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다는 논쟁도 달갑지 않다. 하지만 어떤 이슈가 영화를 집어삼킬지는 누구도 모른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왕의 남자>가 이준기 신드롬을 만들어낼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동성애 코드는 차라리 흥행엔 부담이었다. 천만 영화와 사회적 이슈 사이의 관계는 이미 여러 차례 분석됐다. 흥행을 위해서 이슈를 조작해낸다는 음모 이론도 있었다. 노이즈 마케팅 얘기였다. 그러나 이슈를 조작해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작게 시끄러울 순 있다. 그러나 천만 명이 뜻대로 움직이진 않는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각각 이슈에 맞춰서 임기응변을 하거나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을 뿐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450만 관객을 넘겼다. 이제부터가 고비다. 700만이 어렵고 천만이 어려워서 다. 공식대로라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한테도 뭔가 이슈가 나와줘야 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전국 900개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 <괴물>을 생각하면 스크린 독점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김지운 감독은 얼마 전에 할리우드로부터 미국에서 웨스턴을 연출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디 워>를 생각하면 한국 영화의 미국 진출 이슈가 등장할 만도 하다. 잃어버린 만주 땅에서 총 쏘고 말 달리는 상상을 했으니 억지스럽지만 <실미도>처럼 우리의 잊혀진 역사를 되새김질할 수도 있고,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동포애나 형제애를 얘기해볼 수도 있다. 거꾸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이런 이슈가 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에 뒷심이 달릴 거란 얘기도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는 오락 영화다. 영화는 현실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한반도의 중력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게 이 영화의 목표였고 성취다. 그러나 정작 흥행에선 상상력의 끝으로 달린 탓에 어떤 공식에서 벗어나 버렸다. 천만 공식 말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한국 영화는 천만 시대에 접어들면서 위험해졌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스크린에 투영되는 이미지는 현실의 어떤 모습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현실이 아니다. 현실의 모방이다. 그런데 한국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가 현실이었다. <실미도>와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대중이 반응한 건 그것이 현실이라고 여겨서였다. 영화도 현실에 대해 발언하지만 스스로 현실이 아니란 걸 인정하는 조심성은 적었다. 마치 뉴스나 미디어처럼 현실을 반영하는 척 했고 거기에 대중영화 특유의 감정을 실었다. 영화가 뉴스보다 휘발성이 큰 건 당연했다. <디 워>는 영화를 보는 오락 행위를 지극히 극단적인 애국 행위와 동일화시켰다. <괴물>에선 없는 이슈가 만들어졌고 <왕의 남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덩어리진 사회다. 하나의 사회적인 이슈가 삽시간에 모든 아젠다를 집어삼킨다. 중앙집권적인 미디어 구조와 개개인의 냄비 성향과 인터넷 네트워크가 그런 특질을 증폭시켰다. 자본주의의 소비지향성은 사회적인 논쟁마저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영화도 그런 소비의 불길을 일으킬 좋은 땔감이다. 불길이 일어나면 흥행으로 돈을 벌지만 그 때 제기된 이슈는 상영이 끝나면 함께 사라진다. 현실이 아닌 영화가 현실을 교란시키고 있다.
왕의 남자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대중이 세상을 인식하도록 강요한다. 아직도 사회를 반영하지 않거나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는 영화를 매도한다. 김지운 감독은 <프리미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무언가를 그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그게 리얼리즘이고 리얼리즘만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 대중문화의 강력한 현실 인식은 오히려 대중의 상상력을 제안하고, 그것이 자본과 만나면 영화를 보면서도 대중이 분노하고 울컥하도록 유혹한다. 사실 그건 뉴스 미디어가 충분히 하고 있는 일이다. 그 부작용도 분명하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8월 1일이면 500만을 넘길 테고 개봉 3주차인 8월 3일엔 550만 돌파가 눈앞이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으로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100분 토론>에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큰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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