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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무용 <홍등>, '장이모우스러움'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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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무용 <홍등>, '장이모우스러움'의 함정

[뷰포인트] 장이모우 연출의 발레 <홍등> 리뷰

장이모우 감독은 어느 순간부터 영화 감독 보다는 공연 예술 감독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총예술감독을 맡아 거대하고 화려한 스케일의 공연을 보여주었고, 국내에서도 공연했던 오페라 <투란도트>, 초대형 야외 공연인 '인상(印象) 시리즈' - 구이린(桂林)을 배경으로 한 인상 유삼저(印像劉三姐), 항저우(杭州)의 인상서호(印象西湖), 리장(麗江)의 인상여강(印象麗江) - 는 화려한 색채와 거대한 세트의 영상미로 호평을 받고 있다. 영화와 공연이 분명 서로 다른 장르이고, 이 장르를 오가는 아티스트들의 경우 곧잘 '연극적인 영화' 내지는 '영화적인 기법을 차용한 무대'라는 수식어를 듣기 마련인데 장이모우만큼은 어느 장르를 선택하던 '장이모우스럽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 한 아티스트의 일관된 연출 기법이 장르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장이모우가 던져주는 화두는 오래되고도 굳건한 믿음 - 즉, 영화 연출 기법 내지는 공연 연출 기법이 따로 존재한다 - 라는 지점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탈 장르적인 어딘가에 장이모우의 작품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르라는 것은 의외로 뛰어넘기 쉬운 장벽으로 만들어진 카테고리란 뜻이 되는 것일까. 그 대답에 대한 또 하나의 실마리가 바로 장이모우의 발레 <홍등>이다. 발레 <홍등>은 10월 17일 성남아트센터를 시작으로 약 한 달 간 여러 공연장들을 순회하며 국내 관객들과 만났다.
홍등
발레 <홍등>은 중극 경극과 발레를 접목시키려는 의도 아래 2001년, 장이모우와 중국국립발레단이 협력하여 만든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부잣집에 셋째 부인으로 팔려가게 된 주인공은 시집을 간 첫날 예전에 사랑했던 경극 배우를 떠올린다. 강간처럼 이루어진 첫날밤 이후, 연회에서 경극 배우들이 공연을 하게 되고 셋째 부인은 옛사랑과 조우하게 된다. 둘째부인은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남편은 대로하여 셋째부인과 경극배우를 가둔다. 셋째 부인이 없어지면 남편의 사랑이 자기를 향할 거라 믿었던 둘째부인은 냉랭한 남편의 반응에 상처받아 스스로 홍등을 밝히고, 멋대로의 행위에 대로한 남편은 둘째 부인마저 함께 죽인다. 사형 집행의 날, 둘째부인은 과거를 참회하며 셋째부인과 경극배우에게 용서를 빌고 세 사람은 죽음을 맞는다. 이는 봉건 제도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내용보다는 간통을 저지른 여인에 대한 남편의 질투심이 폭발한 스토리로 읽힌다. 갑작스러운 둘째부인의 참회나 남편의 대로가 둘째부인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개연성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림자극으로 표현되는 첫날밤의 폭력성이라던가, 셋째부인과 경극배우의 밀회를 마작 게임에 비유해서 표현한 장면, 좌절한 둘째부인이 방안 가득 홍등을 밝히는 장면, 남편의 분노를 샀다는 이유로 세 사람이 가혹하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들은 이미지 자체가 주는 강렬함이 커서 비약되는 이야기 전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 화려한 이미지, 그러나 과연 발레가 맞긴 한가 공연을 보는 내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작품이 발레가 맞는 걸까? 우선, 만든 이들이 발레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발레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중국식의 발레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 아래 제작도 중국국립발레단에서 했으니까. 하지만 의문이 솟아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모던 발레이며 창작 발레니까 고전 발레의 격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는 해도 발레를 발레라고 규정할 수 있는 동작들이 보이지 않는 느낌마저 든다. 누군가가 이 작품을 발레를 가미한 모던 댄스라고 말한다고 해도 충분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을 것이다. 공연 전체를 통해 발레리나 혹은 발레리노의 테크닉에 환호하며 박수를 칠 만한 안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2막의 남성 군무는 뮤지컬 군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레리노의 동작들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안무가 평이했다. 배우들을 무대 위에 세워놓아도 지금 정도의 퀄리티는 유지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장면마다 발레의 테크닉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연출적인 화려함으로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연출 테크닉이지 무용수들의 몸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몇몇 장면들은 '무용수'가 아니더라도 상관없게 되어버린다.
홍등
발레의 테크닉을 최소한 사용하고, 다른 요소들을 더 부각한 공연이 있을 때 이 공연은 실험적인 발레인 것일까, 아니면 발레의 요소를 가미한 퍼포먼스인 것일까. '발레'와 '댄스 퍼포먼스' 사이의 장르적 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발레가 매우 현대적으로 안무가 짜여져 모던 댄스와 유사한 형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발레'라고 만들었다면 발레적인 어떤 요소가 아티스트의 표현 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뜻이 되어야 한다. 소설로도 쓸 수 있고, 영화로도 만들 수 있고, 연극으로도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였다면 그래야만 했던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장이모우의 작품에서 항상 부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사진으로 찍어도 될 이미지가 영화로 구현된다면 바로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발레로 구현된다면 바로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장이모우의 작품에서 그러한 장르적인 고민은 읽히지 않는다. 말하고 싶은 이미지가 먼저 있고, 그걸 그대로 영화로 만들거나 발레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는 연극이나 미술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장르는 수단일 뿐이고, 이미지에 종속되는 도구일 뿐이다. 그리하여 어떤 장르의 작업을 하던 간에 '장이모우스럽다'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나 장르 내에서 실험적인 성취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장이모우의 이미지가 장르적으로 구현되었을 뿐이다. 예술가의 다양성이 곧 예술의 풍요로움을 가져온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장이모우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고, 긍정적인 것이다. 장르의 구성 요소를 들먹이면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장르의 퇴보를 가져오는 편견이기도 하다. 장이모우라는 천재적인 이미지 연출가에 대해서는 경외를 바칠 수 있으나 다음 세대의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기는 한다. 한 개인의 이미지와 상상력에 오롯이 기대고 있는 부분인 까닭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디까지 장이모우의 이미지의 힘이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염려도 있다. 아름답고, 거대한 이미지의 향연이 소중하기는 하나 '이것이 전부다'라는 생각이 들게 될 때 한편으로는 식상함을 느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 공연 개요
제작: 중국국립발레단 편극, 연출, 예술총감독: 장이모우 예술총감독 및 제작, 발레단 단장: 쟈오루헝 작곡: 천치강 안무: 왕신펑, 왕유엔유엔 무대미술디자인: 쩡리 의상디자인: 제롬 카플란 조명디자인: 장이모우지휘: 리우쥐 연주: 중앙발레단 오케스트라 셋째부인: 쭈옌. 짱지엔, 왕치민 둘째부인: 멍닝닝, 찐지아, 쭈옌 첫째부인: 찐지아, 뤼나 경극배우: 뤼찌인, 황쩐, 셩스동 영감: 황쩐, 추이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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