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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앤티크〉로 알아보는 동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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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앤티크〉로 알아보는 동인문화

[띠동갑 여자 둘의 난상수다]〈1〉수면 위로 떠오른 동인문화 집중탐구

N : <앤티크> 보고 나오면서 이 영화는 딱 한 마디로 정의된다, 생각했어요. "유쾌한 괴작." 뮤지컬 시퀀스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동인녀를 타겟으로 잡은 영화는 <앤티크>가 처음 아닌가요? 예고편에서부터 키스씬이 막 나오면서 "나 동인물이에요."라고 도장을 콱 찍었던데. 실제로 영화도 마치 거대한 팬픽 같았어요. 원작을 영화화한 건데도 어쩐지 팬픽 분위기더라고요.

S : 으하하. 원작부터가 동인지와 진지한 출판물의 경계에 어정쩡하게 걸쳐져 있는 만화잖아요. 그 작가의 다른 '공식적인' 만화들에서는 오히려 그런 코드나 웃기는 대사는 별로 안 나와요. '마성의 게이' 같은 대사도 사실 얼마나 웃기는 대사예요?

N : 그러게, 김재욱이 영화 초반에 "전 마성의 게이거든요." 할 때 웃겨 죽을 뻔했어요. 김재욱의 대사톤이 영 어색해서 더 웃긴 것도 있고요. 그런데 감독이 너무 영리한 것 같아. 그 장면에서 주지훈의 반응이 말 그대로 '웃다가 뒤로 넘어지는' 거잖아요. 관객들이 할 법한 반응을 아예 배우한테 하게 해서 텍스트 안으로 집어넣어 버리니까, 관객의 입장에선 순간 느꼈던 민망한 어색함이 확 줄더라고요. 그런데 작가가 자기 스스로 야오이 버전의 속편을 그리기도 했다면서요?

▲ 서양골동양과자점
S : 네, 자기 작품의 동인지를 자기가 냈죠. 전 보진 않았는데 속편은 전형적인 BL만화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 씬들이 많이 있고… (편집자 주 - BL만화 : BL은 Boys' Love의 준말이다.)

N : <후회하지 않아> 때만 해도 이송희일 감독이 배우 캐스팅 때문에 고생을 꽤 했다고 알고 있어요. 물론 강도높은 정사씬이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호모포비아가 있는 사람들도 많고 "한번 게이 역할을 맡으면 완전히 그걸로 찍힌다" 식의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갖고 있고요. 불과 몇 년도 안 지났는데 <앤티크>의 김재욱은 공식석상에서 정말 게이처럼 보인다는 말이 가장 큰 칭찬이었다고 밀하고 있잖아요. 다른 인터뷰에서 "키스씬 찍을 때 내가 정상인인 걸 분명히 알았다"고 말해서 욕을 먹긴 했지만.

S : 욕먹을 만하네요. 정상인이 뭐예요, 정상인이. 그럼 게이는 비정상이란 건가?

N : 촌스럽기도 하죠. "저 동성애자 아니에요" 굳이 막 강조할 건 또 뭐람.

게이 로맨스에 진짜 게이는 없다?

N : 그런데 여성들은 어째서 남자와 남자의 게이 로맨스를 좋아하는 걸까요?

S : 유명한 만화 대사도 있죠. "게이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어요!"라고.

N : 외화들에선 게이들이 여자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죠. 게이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게 이성애자 여자들의 환상으로 자리잡기까지 했고요. 근데 난 이거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실제 게이들의 삶하곤 별 상관이 없잖아요.

S : 사실 게이라고 다 그렇게 잘 생기고 몸매 좋고 옷 잘 입고 여성친화적인 건 아니죠. 여자라고 다 예쁘고 화장 잘 하는 건 아닌 것처럼요. 그래도 여자, 하면 다양한 유형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게이, 그러면 무조건 예쁘고 세련되고 옷 잘 입는 남자, 이렇게 정형화된 감이 있죠. <퀴어 아이> 같은 쇼나 <퀴어 애즈 포크> 같은 시리즈들이 인기를 끌었잖아요. 외화나 미국드라마를 통해서 팬시한 게이에 대한 환상이 널리 유포된 면도 있어요. 상당히 정형화된 게이 캐릭터가 정착됐죠. 쇼핑 좋아하고 옷 잘 입고 패션감각 뛰어나고, 기타 등등.

N : 실제 동성애자 진영과 동인녀들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도 그런 것과 관련이 있죠?

S : 동인녀물은 정형화된 게이 캐릭터를 소비하는 장르니까요. 진짜 게이의 삶에 관심을 표한다기보다는, 판타지적인 이미지만 소비하는 측면이 좀더 크다고 할 수 있어요. 게이들 입장에선 기분좋은 일은 아니죠.

N : 맞아요. 실질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인권이라든가, 성적소수자 운동에 연대한다던가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게 <후회하지 않아>의 경우예요. 이송희일 감독도 아마 처음엔 동인문화를 좀 비판적으로 여겼던 것 같은데, 소위 동인녀라 할 수 있는 여성관객층이 <후회하지 않아>를 열성적으로 지지해주는 현상을 보고 동인문화에 대해서 생각이 좀 바뀐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이송희일 감독이 직접 얘기해줘야 하는데...

S : <왕의 남자>나 <후회하지 않아>같은 퀴어 취향의 영화들이 <놈놈놈>과는 다른 방식으로 동인녀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소비와 생산을 동시에 하는 창조적 팬덤

N : 그런데 동인녀들은 정작 자신들의 취미가 주류화되고 공론화되는 건 별로 원하지 않는 분위기라죠?

S : 원래가 아는 사람끼리만 알음알음 즐기는 마이너 문화였으니까요. 사회적인 시선이 그리 좋지도 못하고요. 그런데 동인 문화라는 게 꼭 '게이가 나오는' 영화나 소설, 만화를 소비하는 것으로만 연결되는 건 아니에요. 동인은 원래 동인지 내는 사람이잖아요. 기본적으로 자기들이 좋아하는 원작에 대해 팬들 스스로 팬픽을 창작하고 자기들끼리 돌려보는 거거든요. 원작에 나오지 않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메꾸어서 뭔가를 생산하는 사람들이니까, 소비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생산하고 자기들끼리 유통하는, 소비자와 창작자를 겸하는 사람들인 거죠. 동인지에 워낙 그런 게 많아서 어느 순간 동인지 = 야오이, 이런 공식이 돌긴 했지만. 그래서 동인녀들은 원작에서 아예 게이라고 설정돼 버리면 오히려 별로 안 좋아해요.

N : 아, 그래요? 의외네요.

S : 상상해서 메꿀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지잖아요. 요즘 동인녀들한테 인기있는 영화는 오히려 <모던 보이>나 <놈놈놈> 같은 거예요. <모던보이>에서 해명과 신스케의 관계 같은 거 있잖아요. 게이라고 명시된 건 아닌데 왠지 이상야릇하게 유난히 끈끈한 남자들의 우정. 특히 <놈놈놈>은… 요즘 동인 시장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게 <놈놈놈>일걸요.

N : 아니, 대체 거기서 누구랑 누구를 엮는다는 거예요?

S : 전 영화 본 직후에는 태구(송강호)랑 창이(이병헌)가 대세일 줄 알았는데 뚜껑 열어보니 창이랑 도원(정우성)이데요. 역시 비주얼인 거죠.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동인녀코드? 그게 뭐야?

N : 사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90년대 초반에는 말이죠, 특히 홍콩누아르 같은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들의 끈끈한 우정 같은 걸 동성애자 진영에서 '그거 실은 동성애다'라고 분석했었어요. 물론 호모포비아 마초 남자들은 "아니 사나이들의 멋진 우정을 그런 식으로 모욕하다니!"라며 마구 흥분을 했었지만. 역사적으로도 실제로 동성 애인 관계였던 사람들을 그냥 '우정'이라고 탈색, 왜곡시킨 예가 많지요. 그런데 이젠 그걸 찾아내는 게 일종의 '동인녀 코드'가 된 셈이네요. 동인녀 코드에선 뭐랄까, '싸나이들의 우정'이 조롱당하는 의미가 덧붙여지는 것도 같아요.

S : 동인녀 코드란 게 정확히 뭐냐, 라고 하면 아무도 명확히 대답하진 못할걸요. 다만 그런 게 있긴 있구나, 느낄 뿐이죠. 게다가 우린 동인녀도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작가가 던져주는 커플을 성별 상관없이 그대로 지지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동성커플이든 이성커플이든지요.

N : 하하 맞아요, 전 <닥터 하우스>에서 S씨가 어느 커플을 지지했는지 알고 있죠! 동인녀 코드란 게 모호하긴 해도 분명 있는 것 같긴 해요. 일본의 야오이 문화가 들어오면서 파생된, 뭔가 좀 인위적인 것들이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하고요. <호텔 아프리카> 같은 만화에서 게이 로맨스를 그리는 방식은 그냥 사람과 사람이 좋아한다는데 성별이 무슨 상관이냐 정도였다고 기억해요. 게다가 관계가 무척 아름다웠고요. 어떤 공식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저도 자연스럽게 그 커플들을 지지했었죠. 그런데 이정애 만화는 그런 것과 좀 달랐던 것 같고, 요즘 동인 문화엔 이정애 만화에서 얼핏 보였던 어떤 특정한 표지들이 좀 더 강화된 느낌이거든요. 옛날과는 다른, 뭔가 코드화된 것, 공식이란 게 있다는 느낌?

S : 일본의 영향만은 아니에요. 한국의 동인 1세대가 오자키 미나미의 만화 <절애>나 일본만화 <슬램덩크>에 입문하면서 형성된 건 맞지만, 미국에서 들어온 드라마나 쇼도 많죠. 아까 팬시한 게이의 전형적인 캐릭터가 시장에 정착된 얘기도 했잖아요. 꽃미남들이 인기를 끌면서 그런 전형성이 더 굳어지기도 했고요.

여자들은 꽃미남 게이를 좋아한다?

N: 아, 역시 대세는 꽃미남이죠. <앤티크>도 연기보다는 꽃미남 배우들의 마스크에 더 힘을 줬고요. 특히 주지훈 캐릭터의 경우는 내가 감독이었어도 캐스팅할 때 "이 캐릭터는 무조건 멋져야 돼!"라고 외쳤을 것 같아요. 그런데 꽃미남이라고 근육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겉으로는 말랐어도 옷 속엔 나름 잘 발달된 근육을 숨기고 있어야죠.

S : 절대 근육이 크면 안 되죠. 반드시 잔 근육이어야 해요! 메트로섹슈얼, 일명 거울을 보는 남자들이 뜬 건 최근의 일만은 아니에요. 꽃미남이 인기가 많은 게, '여성들에게 안전한 남자'라는 느낌이잖아요. 야오이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다 꽃미남이고요.

N : 여자들이 게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것과 연관이 있겠네요. 게이들은 적어도 성의 측면에선 상대적으로 안전한 남자로 여겨지잖아요? 여자들에겐 단순한 신체상해보다 성폭력과 강간에 대한 공포가 더 구체적이니까요.

S : 과거엔 마초적인 남자들에 대해 육체적으로 여성들을 보호할 수 존재라고 보는 측면이 더 컸다면, 근래 들어서는 마초들이 여자에게 폭력적일 수 있다고 인식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과거에도 폭력이 없었던 건 아닌데, 그런 인식이 더 커진 거랄까요.

N : 이건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과 달리 사회에서 남성과 부대낄 일이 많아졌잖아요. 상사도 남자, 동료도 남자인 상황에서 과거의 과도한 남성성을 여성에겐 동경보단 위협으로 작용하는 면이 더 크죠. 게다가 여자들이 자신만의 경제권을 가지기 시작했고요.

S : 사회인이 된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야오이를 소비하는 심리를 그런 방향에서도 이해해 볼 수 있겠네요. 야오이에는 주로 잘난 남자가 나오잖아요. 얼굴도 잘생기고 돈도 잘 버는 일명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남자가 동성과의 사랑에 목매달다가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좀 스트레스 해소가 되지 않겠어요?

N : 그건 상대가 여자여도 마찬가지잖아요.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S : 소위 '동인질'을 할 때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경우도 많거든요. 연예인이나 아이돌 스타를 등장시킬 경우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여자들도 가질 수 없어!"라는 심리도 일부 있긴 하지만, 요즘엔 정치인이나 회사의 재수없는 상사를 등장시킨 동인물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여자들도 많아요. 그리고 거기에 폭력적인 코드를 좀 넣는 거죠.

N : "너도 당해봐라"인가요? 자기를 억압하는 권력에 대한 반항과 같은 성질을 갖는 측면도 있는 거군요. 그런데 이런 얘기가 나가면 남자들이 겁 좀 먹겠는걸요. 하하. 그런데 동인녀들 사이에 <앤티크>가 정말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긴 한 건가요?

S : 단체관람 이야기도 있는 것 같던데요. 그런데 꼭 동인 문화와 연관짓지 않아도 일군의 여성들이 특정 영화에 열광하는 경향 자체는 <앤티크> 이전부터 있어왔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형사>가 개봉되었을 때에 처음으로 언론에 그렇게 컬트적인 인기가 가시화되었던 것 같은데…. 당시 '형사폐인'이라 불렸던 팬들은 대체로 여성이었죠. <왕의 남자>나 <놈놈놈>도 그렇고요. 한 번 '꽂힌' 영화를 몇 번씩이고 재관람하죠. 열 번 본 사람도 봤어요. 남자들은 별로 안 그러잖아요.

N : 맞아요, 여자관객들이 취향은 좀 까다롭긴 해도 한번 찍으면 어마어마한 충성심을 드러내는 열성적 지지자가 되죠. 그런데 정작 동인문화가 주류화되는 걸 반기질 않으면서도 이렇게 공공연해진 이유가 뭘까요?

S : 동인녀들이 길티 플레져로서 즐겨 왔던 자신들의 취미를 떳떳하게 대중 앞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욕망의 발현이 아닌가 싶어요. 과거엔 반쯤은 자기비하적인 취미에 가까웠는데 그런 시선도 변했으면 하는 욕망도 있는 것 같고요.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변하고 있으니까, 자신들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과 스스로의 시선 역시 변화해 나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N : 주류화되는 건 반기진 않는다, 그러나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다는 건, 그러니까 별 편견 없이 인정받는 마이너 문화이길 원하는 건가요?

S : 블로그 같은 곳에선 동인녀들이 익명성을 빌리긴 했어도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지 오래잖아요. 영화나 방송 같은 메이저한 상품에서 동인 코드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게 그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1세대 한국 동인녀, 즉 <절애>와 <슬램덩크>로 동인계에 입문한 소녀들이 20대 중후반, 더 높게는 30대까지에 걸쳐 포진되면서 구매력을 갖추게 됐고, 그들 중 일부는 진짜 생산자 입장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여성들의 포르노 vs. 창조적인 하위문화

N : 그런데 <후회하지 않아> 때를 생각해 보면, 남자들만 나와서 로맨스를 펼치고 있는데 살짝 소외감이 들더라고요. 영화가 날 밀어내고 배제하는 느낌이랄까. 온갖 영화들이 다 이성애를 당연히 전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성애자들이 느껴왔을 소외감과 배제감은 정말 어마어마하겠구나, 새삼 느끼기도 했죠. 동인물은 어떨까요?

S: 소위 야오이에 등장하는 게이 로맨스는 등장인물이 다 남자라곤 해도 로맨스 자체는 꽤 여성적이고 관계지향적이에요. 여성이 배제된다는 감각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야오이도 할리퀸처럼 결국 여성이 생산하고 여성이 소비하는 로맨스니까. 그런데 소위 말하는 '동인질'이라는 걸 할 때는 원작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지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약간 껄끄러운 느낌이 들긴 해요.

N : 난 사실 동인문화에 살짝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이, 그런 식으로 여성을 지우는 게 여성이라는 자신의 성에 대한 혐오나 부정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서거든요.

S : 가끔은 진심으로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여성성에 대한 스스로의 혐오나 부정이라, 좀 세게 말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여성이 배제됨으로써 한편으로는 여성성이 보호받는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동인물이란 게 스토리는 일반적인 남녀커플 이야기와 별 다를 바가 없으면서도 성별만 남남으로 설정된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이야기 속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자가 여성이 아니니까, 그걸 보는 여자 입장에선 덜 불편할 수 있죠.

N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앤티크>만 해도 김재욱이 전형적인 데이트 폭력 피해자인데, 만약 그 캐릭터가 여자였으면 난 정말 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좀 서글퍼지는걸요. 동인물을 보거나 직접 창작하는 행위가, 여성들이 실은 자신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현실의 공포를 '안전한 방식으로' 반복 재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 트라우마가 강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상처가 됐던 일련의 행동을 조금씩만 변형해서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성애자 여성들이 연애관계에서 경험하는 폭력을 그런 식으로 재현해보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역시나 다른 소수자에게 폭력적인 방식이긴 하지만요.

S :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후회하지 않아> 같은 경우도 사실 이야기만 놓고 보면 뻔한 얘기잖아요? 부잣집 도련님이 가난하고 몸 파는 여자한테 빠져서 매달린다, 거기서 성별만 남남이 된 건데.

N : 그건 원래 이송희일 감독의 의도라고 알고 있어요. 일부러 아주 전형적이고 진부한 플롯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고. 성별만 남남으로 바꾸었을 때 과연 이야기가 어떻게 새로워지는가를 보여주는 거죠.

S : 그러니까 동인녀들에게 <후회하지 않아>가 그렇게 지지를 받는 거죠. <왕의 남자>나 <후회하지 않아>나 그 바닥에서는 굉장히 상투적인 코드거든요. '대세'가 아니예요. 그런데도 동인녀들이 반응을 보였고, 지금의 <앤티크>에까지 온 거죠. 그래도 <앤티크>가 그런 여성들의 판타지를 완전히 반영하는 건 아니에요. <왕의 남자>든 <후회하지 않아>든 <앤티크>든 남자 감독이 자기가 만들고 싶어서 만든 영화일 뿐이지 딱히 동인녀들을 노리고 만들었다든가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도 동인 코드가 점차 보편화되면서 시장성을 획득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이젠 N씨도 그게 뭔지 아실 정도니. 근데 우린 동인녀도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막 해서 기사 써도 되나?

N : 아무튼 나보다 S씨가 더 잘 아는 건 사실이니까 이거 정리는 S씨가 하세요.

S : 흥! 칫! 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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