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뮤지컬 산업이 성장하면서 국제 시장을 겨냥한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고 있다. 해외 작품들이 국내서 라이선스로 재공연 되는 기간 또한 짧아지고 있다. 국내 공연들은 국제 시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해외 공연 시장의 동향 분석을 위해 '뮤지컬‧연극계의 아카데미'라 불리는 토니상과 올리비에상 수상작들을 소개한다. |
<사운드 오브 뮤직>은 1965년 줄리 앤드류스 주연의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 속 '도레미송'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멜로디다. 뮤지컬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킹 앤 아이> 또한 1956년 영화로 만들어졌고 삽입곡 '쉘위댄스(Shall We Dance)'는 추후 다른 영화 제목으로 사용될 만큼 널리 알려졌다. <남태평양>은 여전히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으며,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해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있는 이 모든 작품들은 뮤지컬계의 전설적인 듀오, 로저스(Rogers)와 해머스타인(Hammerstein)의 합작품이다. 위 작품들 외에도 두 사람은 토니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인 1943년 <오클라호마!>를 무대에 올려 뮤지컬의 역사를 새로 썼다. 로저스와 헤머스타인은 함께 토니상 35개, 아카데미상 15개와 풀리쳐상과 2개의 그래미를 손에 넣었고, 로저스는 역사상 토니상과 아카데미, 풀리쳐, 그래미(Grammys)와 에미(Emmys)를 동시에 모두 손에 넣은 2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됐다.
세기의 만남,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 ⓒ Newstage |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는 따로 불리기보다는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은 1940년대에서 1950년대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미국 뮤지컬계의 명인으로 손꼽힌다. 그들의 협력관계는 콜롬비아 대학에서부터 시작됐다. 로저스는 당시 로렌츠 하트(Lorenz Hart)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면 해머스타인은 오페라 작곡가로서 성공적인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하트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면서, 로저스는 해머스타인과 새롭게 힘을 합치게 됐다. 그들이 처음 함께 만든 <오클라호마!(Oklahoma!)>는 이전의 뮤지컬과 다른 구조를 내세웠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초기 작품인 <오클라호마!>와 <캐루셀(Carousel:회전목마)>는 뮤지컬의 정의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뮤지컬의 역사를 새로 쓰다 - Oklah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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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는 토니상이 만들어지기 전인 1943년 3월 31일 처음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이는 개막과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955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로 만들어진 <오클라호마!>는 같은 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오클라호마!> 이전의 뮤지컬은 구체적인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뮤지컬들은 스타에게 의존했고, 음악이 그 상당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클라호마!>는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상세한 플롯을 담고 있었고, 음악은 그 이야기를 더욱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버무려진 요소 중 하나로 극 속에 녹아들었다. <오클라호마!>는 1944년 풀리쳐상에서 특별상을 거머쥐었다. 초연된 <오클라호마!>는 토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모습을 보여, 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오클라호마!>는 1993년 토니상 50주년을 맞아 특별상을 수여받았으며,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끊임없이 리바이벌되면서 올리비에상을 비롯한 여러 유수 뮤지컬 시상식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거두어 들였다.
예술 속에 사회를 비추다 - South 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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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은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사회에 대한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오클라호마!>가 플롯을 지닌 뮤지컬의 탄생을 알렸다면, <남태평양>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 즉 오락을 위한 뮤지컬이 아닌 우리네 사회상을 비추는 '의식 있는 뮤지컬'의 출발을 알렸다. <남태평양>의 관객과 평단 사이에서의 성공은, 더 많은 극작가들이 더욱 더 과감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작품에 투영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남태평양>은 1949년 민감했던 인종차별 문제를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풀어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원한 그들의 하모니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마지막 합작품은 1959년 처음 빛을 본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오스트리아 민요로 오해를 받기도 하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삽입된 '에델바이스'가 두 사람이 함께 빚어낸 마지막 음악이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 막을 올린 이듬해 해머스타인은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뮤지컬이 첫 선을 보인 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두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도,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흥얼거리고 있다. 사회를 향한 그들의 따뜻한 관심과 시선, 그 진심어린 마음이 만들어낸 그들의 음악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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