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사랑과 시간의 엇갈림 : 그러나 모든 사랑은 평등하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사랑과 시간의 엇갈림 : 그러나 모든 사랑은 평등하다

[뷰포인트] 뮤지컬 <김종욱 찾기> vs.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주는 감동은 시간과 속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연인들의 애달픈 사랑에서 기인한다. 마찬가지로 영화 <사랑은 타이밍>의 제목 역시 사랑의 시간과 속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간과 속도와 사랑이 만나면 운명이 된다!

시간이 어긋나고, 속도가 어긋날수록 사랑은 격정적인 것이 된다. 짝사랑이 아릿한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 동안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를 볼 때면 늘 안타까웠던 거죠, 우리의 만남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라는 유행가의 노랫말 역시 시간이 어긋나버린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그 사람보다 나를 먼저 만났다면 달랐을 거라는 아쉬움 말이다. 스토커의 집착이 위협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인사를 한 기억밖에 없는데 상대는 10년차 애인마냥 내 옷장에 걸려있는 코트 수까지 알고 있다. 상대가 10년에 걸쳐서 서서히 사랑을 표현해 왔다면 스토커는 스토커라 불리지 않고, 일생일대의 연인이라 불렸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모든 사랑은 결국 평등하다. 다르게 보이는 것은 시간과 속도의 차이 때문이다.

사랑을 다룬 뮤지컬 <김종욱 찾기>와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역시 사랑의 시간과 속도를 다루고 있다. 두 작품 모두 뻔하디 뻔한 사랑의 이야기들도 시간의 구조를 헝클어 놓으면 놀라울 만큼 새로운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뮤지컬이기도 하다.

그가 내 곁에 없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한다 : 김종욱 찾기

'로맨틱 코메디의 본좌'라는 타이틀이 과장이 아닌 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현재까지 약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창작 뮤지컬이다.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인도에 배낭 여행을 가서 만났던 첫사랑 '김종욱'을 찾으려고 하는 여자의 좌충우돌 사건담이다. 첫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과정과 첫사랑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병치되면서 이야기는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애절하게 흘러간다. 첫사랑 김종욱은 현재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두 남녀는 왜 헤어지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김종욱 찾기
여자 주인공이 첫사랑을 찾으려고 하는 까닭은 그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첫사랑의 감정이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부재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감정. 이런 감정을 냉혹하게 환상 혹은 착각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동서고금에 존재하는 이별한 연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감정 역시 모두 도매금으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옆에 없다고 감정이 사라진다면 극단적인 경우 데이트 후 헤어지고 집에 가면 감정도 소멸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시간의 길이를 늘려서 데이트 후 헤어지고 집에 갔다가 다시 만나는 기간을 1년이라고 잡아보자. 그렇다면 그 1년은 관계의 현재형이 된다. 여자 주인공은 이러한 방식으로 사랑을 유예한다. 만남- 사랑- 이별이라는 공식에서 이별을 지우기 위하여 만남부터 지연시키게 된다. 처음 보는 순간 호감을 느꼈으면서도 일부로 외면하고, 상대방과 마주칠까봐 일정을 바꾸고,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시간의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흐르게 만들어 버린다. 사랑이 아직 절정에 도달하지 않았기에 이별은 영원히 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작품의 말미에 이르게 되면 관객들은 그녀가 '의도적으로 유예한 시간'이 실제로 흐름이 늦어진 게 아니라 정상적으로 흐르는 시간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람 시계를 1시간 늦춰서 학교에 1시간 늦게 갔는데 수업은 여전히 제 시간에 맞춰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사랑이, 만났다가 다시 재회하는데 1 시간이 아니라 10년이 걸리는 사랑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시간과 속도는 인위적으로 유예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이 작품의 결론이다.

그가 나를 떠났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 The last 5 years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한 연인들이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미워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자의 시간은 헤어짐에서 만남으로 흐르고, 남자의 시간은 만남에서 헤어짐으로 흐른다. 교차되는 시간축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은 퍼즐처럼 장면들을 끼워 맞추게 된다. 현재의 캐시가 제이미가 떠났다는 것을 깨닫고 슬퍼할 때, 5년 전의 제이미는 이제 막 캐시와의 첫 데이트를 끝내고 흥분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시간축이 달라지기 때문에 연인들의 감정의 빛깔이 달라진다. 감정의 대비로 인한 아이러니와 슬픔이 작품을 끌어가는 힘이 된다.

▲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사랑은 해피엔딩이 드물다"라는 뮤지컬 홍보 문구처럼 이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과장된 신화를 보여주진 않는다. 단지 시간의 축을 나누어서 극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두 남녀의 감정에 깊이가 주어진다. 서로 다른 시간축의 교차는 소설, 영화, 연극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되었다. 특히 교차 편집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이미 영화가 다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아날로그적으로 보이는 이 소박한 배치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배우의 현존 때문이다. 즉, 무대 위에서 살아 숨쉬고 눈 앞에 선명하게 움직임이 보이는 배우의 감정 연기로 서로 다른 축이 교차될 때 아이러니와 비극성이 배가된다.

두 남녀의 시간축이 만나는 지점은 결혼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던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이들은 각기 다른 시간을 향해 멀어진다. 장면을 교차해서 편집할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무대 위에서는 배우의 장면 교차는 쉽지가 않다. 시간과 장소가 달라질 때마다 배우가 의상과 분장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5년 후 장면 -> 암전 -> 5년전 장면과 같은 식으로 배치하다보면 분장과 암전의 시간만으로도 공연 한 편의 길이가 나올 것이다. 더군다나 똑같은 배우인데 관객들이 무슨 수로 5년 전과 후를 빠르게 감지해낼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은 편집이 연극에서는 장르상의 한계로 인해 난이도가 높은 연출 방식이 되어버린다. 뮤지컬은 이 한계를 모놀로그로 극복한다. 5년 후의 장면은 캐시의 입장에서만, 5년전의 장면은 제이미의 입장에서만 진행되는 것이다. 오직 결혼식 장면에서만 두 배우가 같은 시공간에서 만나게 된다.

결혼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고, 작별의 편지를 쓰는 제이미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있는 5년 전의 캐시의 모습이 교차된다. 제이미가 영원한 작별을 고하며 "안녕"이라고 말할 때, 무대의 반대쪽에서는 캐시가 데이트 후 방금 헤어진 제이미에게 행복한 혼잣말로 "안녕"이라고 말한다. 시간축이 다르지만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연인들이 있다면 다른 시간에서 다른 감정으로 사랑의 시작과 끝을 말하는 연인들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불행하고, 더 행복한가를 규정할 수는 없다. 단지 시간과 사랑이 어떤 식으로 다르게 변주되는가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글의 도입부에서 지적했듯이, 모든 사랑은 결국 평등하다. 다르게 보이는 것은 시간과 속도의 차이 때문이다.

ㅁ 공연 정보 ㅁ
뮤지컬 <김종욱 찾기>
공연일시: 2007년 10월 23일(화) ~ Open run
공연장소: 대학로 예술마당 1관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뮤지컬해븐
문의: 02-501-7888


뮤지컬〈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공연일시: 2008년 11월 28일 ~ 2009년 2월 22일
공연장소: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
출연진 : 이건명, 배해선, 양준모, 김아선
제작: 신시뮤지컬컴퍼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