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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화 소년, 중년 감독이 되어 한국을 다시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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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영화 소년, 중년 감독이 되어 한국을 다시 찾다

[핫피플] 10년만에 한국 방문한 레오 카락스 감독 인터뷰

레오 카락스 감독이 자신의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와 두 번째 연출작 <나쁜 피>를 내놓은 것은 모두 80년대지만, 한국에서 레오 카락스 감독은 철저하게 '90년대의 감독'으로 기억된다. 이미 유럽에서 '영화 천재'로 자리매김을 한 레오 카락스 감독이 내놓은 세 번째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1991)이 국내에서 가장 먼저 개봉된 탓이다.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씨네필들의 대부분이 극장에 몰려가 이 영화를 보고 열광의 찬사를 바쳤다는 건 (과장이 좀 섞이긴 했어도) 대체로 '진실'이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에 불었던 '예술영화의 붐'을 타고 그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와 <나쁜 피>도 90년대 중반에 정식으로 극장에서 개봉했다. 레오 카락스 감독이 한국을 처음으로 찾은 것도 이 즈음이다. 전통적인 내러티브나 서사 방식을 따르는 대신 폭발적인 이미지들의 연속으로 느슨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있던 그의 영화들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무수한 씨네필들이 그의 영화를 추억하는 것 역시 줄거리보다는 몇몇의 '장면들'을 통해서다.



레오 카락스 감독


그리고, 정확히 10년만이다. '천재 영화소년' 레오 카락스 감독이 중년의 감독이 되어 한국을 다시 찾았다. 평생 단 네 편만의 장편을 내놓았고, 그나마 최근 10년간은 옴니버스 영화 <도쿄!>의 한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연출을 하지 않았던 터다. 90년대에 당시 20대였던 씨네필들이 밤잠을 설치며 저마다 열렬한 애정과 찬사를 바치게 만들었던 레오 카락스 감독이 이번에 한국을 찾은 것도, 신작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에서 마련한 '레오 카락스 특별전' 때문이다. 대체 이 감독은 왜 이토록 긴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지난 10년간 영화는 만들지 않고 무엇을 하고 살았단 말인가.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프레시안이 그를 만났다.

- 10년만에 한국에 다시 오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글쎄요, 제가 한국에 왔던 때는 대부분 영화제 등에 초대를 받아서였을 뿐입니다. 한 장소를 제대로 알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 동안 머물렀을 뿐이라 서울이나 한국을 잘 안다고 할 순 없죠. 이번에 방문해서도 기분이 어떻다거나 뭐가 많이 변했다거나 하는 말을 하기가 힘들군요. 다만 한 가지 크게 변한 건 있습니다. 저를 인터뷰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자기 앞에 스크린을 열고 그것을 보면서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더군요. 마치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스크린이 필요하다는 듯 말입니다.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변화였습니다.

- 대체 10년 동안 무얼 하신 겁니까. 왜 영화를 만들지 않으셨지요?

영화를 한 편 만들고 다른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내가 되도록 변해야 하고 많은 것들을 새로 채워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무언가를 쓰기도 하고, 감옥을 가기도 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 가장 최근작이 <도쿄!>의 <광인> 에피소드였던 만큼 그때의 연출에 대한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겠네요. 10년간의 다양한 경험이 그 영화의 연출에 에너지를 주었을 듯도 하고요.

<도쿄!>에서의 에피소드는 주문을 받아서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저의 욕망 이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 먼저 존재했다는 사실이 제게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게 슬슬 질려있던 참이었기 때문에, 낯선 곳에서 적은 제작비로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제게 좋은 자극이 되었죠. 하지만 이 영화는 아시다시피 각각의 감독이 각자 자신의 작품을 연출을 했을 뿐, 연출에 참여한 다른 감독들과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감독들은 어땠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 연기를 하신 건 어땠나요? 물론 이전에도 가끔 연기를 하시긴 했지만, 2006년에 만들어진 <977>에서는 조연을, 그리고 2007년작인 <미스터 론리>라는 영화에서는 주연을 맡으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두 영화 모두 작은 역이었습니다. 전 이전에도 제 영화에 가끔씩 출연해 연기를 하곤 했었고, 그 영화들 역시 과거와 별 다르지 않게 그저 작은 역을 맡았을 뿐입니다.

레오 카락스 감독


-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드는 게 지겨워지셨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제작비를 구하는 것이나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이 힘드셨던 건가요, 아니면 프랑스 문화에 대한 피로감이 있으셨던 건지요?

세계에 프랑스만큼 영화를 만들기 쉬운 나라는 없습니다. 하지만 <퐁네프의 연인들>이 실패하고, 이건 프랑스에서도 굉장한 스캔들로 받아들여졌습니다만 그 후로 프랑스에서 작업하고픈 마음이 사라지더군요.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들도 모두 프랑스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입니다. 배경이 영국이든 러시아든,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언어도 불어가 아니지요. 어떤 의미에서 저는 제 자신이 한 번도 진짜 프랑스인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내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인도 있고 러시아인도 있고 그렇습니다.

- 아무래도 영미권에 좀더 친숙함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들은 말그대로 글로벌한 작업이 되겠군요. 규모나 제작비 면이 아니라 공간이나 사람의 면에서요.

영어로 준비하는 작품도 있고 러시아어로 준비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어는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러시아 문학, 그리고 제가 만난 러시아 여자들을 통해서요. 게다가 전 혈통상 반은 미국인이기도 합니다.

-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서 <나쁜 피>, 그리고 <퐁네프의 연인들>과 <폴라 X>에 이르기까지 '젊은 영화천재'로 각광을 받으셨는데, 그게 지금도 부담이 되기도 하시나요? 사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굉장히 달라지셨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지금은 어떤 이야기에 끌리시는지도 궁금하고요.

저는 17살에 처음으로 영화를 발견했고, 거의 그 즉시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해 20살 때 첫 장편을 만들었습니다. 인생을 발견하기도 전에 영화를 발견한 셈이지요. 그렇기에 제 영화는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담고 있지 인생에서 겪은 경험들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퐁네프> 이후에는 다시 스스로에게 흥미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전혀 다른 사람이 돼야겠다 생각했고요. '천재'라는 평가들에 대해서는, 젊었을 때에는 그 때문에 돈을 벌기 쉬웠지만 지금은 돈을 벌기 어렵다는 정도의 의미만 제게 있습니다. 그 이상의 의미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레오 카락스 감독


- 감독님이 젊으셨을 때 만들었던 청춘의 초상과 같은 작품들을 20년도 더 지난 지금 한꺼번에 상영한다는 데에 남다른 감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 영화를 절대 다시 보지 않습니다. 제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신다면, 일단 전 그 영화들을 안 좋아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영화보단 낫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곤 해도, 지금 특별전에서 감독님의 영화를 볼 관객들은 90년대에 감독님의 영화가 한국에 소개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광속으로 변한 시대의 새로운 20대들입니다. '새로운 관객'인 셈인데, 이들이 감독님의 영화에서 어떤 걸 봐주기를 원하십니까?

제 영화는 프랑스에서는 한 번도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적이 없습니다. 소수의 관객만 있었지요. 옛날부터 일찌감치 깨달았던 건데 작품들은 시간이든 공간이든 여행을 한답니다. 다른 나라에 사는 다른 세대의 관객들이 오늘, 혹은 내일 내 영화를 보고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요. 저에겐 그런 사람들이 한 명, 혹은 두 명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 사실 영화보다는 여행 다니신 얘기나 사람 만나신 얘기, 아까 하신 감옥 가신 얘기 등을 듣고 싶지만 이 자리가 그걸 허심탄회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게 안타깝습니다. 나중에 그런 얘기를 책으로 내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사실 15년 전에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답니다. <퐁네프의 연인들>이 실패한 뒤, 꿈고 많이 꾸고 글도 많이 썼지요. 『내가 꾼 백 개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그 원고를 묶었는데, 다 쓰고나서 출판사와 계약하고 서명해야 할 시점에서 갑자기 "이걸 내서 뭘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막판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 다 취소를 해버렸습니다. 그 원고는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꾼 꿈의 얘기를 해주면 옆에서 줄리엣 비노슈가 그림을 그렸는데, 그 그림들도 들어가 있었죠.

- 이거 무척 기대가 되는 책입니다. 언젠가 그 책이 꼭 출간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만나뵙게 되어 무척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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