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 05월 10일 15시 12분
홈
오피니언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문화
Books
전국
스페셜
협동조합
"[372명 해외입양인들의 진실 찾기]"검색결과 (전체기사 중 61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
해외입양인 자녀들은 한국 국적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저는 1999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자라면서 저는 종종 제 아시아인으로서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곤 했는데, 그럴 때면 부모님께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진 이유가 부모님의 입양 때문이라고 대답해주시곤 했습니다. 입양에 관해 자세히 모르던 저는 오랫동안 입양 대신 부모님을 탓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그리고 지금 한국에 와서 대학원을 다니며 줄곧 한국 해외입양의 역사와 제도적 배경을 연구하고 조사하고나서 부모님이 네덜란드로 입양된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바스티안 플릭베르트 입양인 2세
2023.09.03 05:35:03
두번이나 입양 거부된 양부모는 어떻게 한국 아이를 입양했나
제 이름은 이제 잉거-톤 유랜드 신(Inger-Tone Ueland Shin)입니다. 저는 1964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본명은 김정아입니다. 노르웨이에 있는 저의 양부모는 제 본명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978년 3월 23일, 한국인 김정아는 갑자기 노르웨이인 잉거-톤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13살이었습니다. 누군가 "입양돼서 다행이야"라고 말할 때, 그들은 입양인이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 또는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별로 생각하지 않습
잉거-톤 유랜드 신 해외입양인
2023.08.27 05:31:41
가족 모르게 노르웨이로 입양돼 학대 받으며 자랐습니다
내 한국 아버지를 기억하며, 70년대 막내딸을 찾으려고 헛되이 노력했던 아빠(Appa)의 눈물이 땅에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1969년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입양 서류에는 다르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버지는 갑작스레 아내를 잃었고, 어린 아기와 여자 형제들은 엄마를 잃었습니다. 무너진 채로 홀로 된 한 남자는 글을 쓰지도 읽지도 못했지만 한 가지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고, 한 명은 겨우 12살의 나이에 다른
정경숙 해외입양인
2023.08.20 05:07:05
2주후 양부모에게 보내진 제가 진짜 '김미화' 일까요?
만난 적 없는 친부모님께 제가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시켜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확신의 길은 언제, 어떻게 우리의 길이 갈라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수수께끼와 불확실성에 싸여 있습니다. 입양 서류에서 찾은 정보를 보면, 저는 한 살 반쯤 되었을 때 고아원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처음에 창전동 보호소로 보내졌고, 몇 달 후에 "충현 아기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고아원에서 1976년 12월 16일에 덴마크로 보내졌는데, 저는 세 살 반쯤 됐습니다. 하지만 입양 서류의 변경된 생년월일 정보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미에 김 슐리쳐 해외입양인
2023.08.12 14:04:58
美 핫도그 먹기 대회 참가한 입양인 손에 쥔 태극기의 의미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어려운 일을 도와주실 수 있어?" 나는 운명적인 순간 며칠 전에 친구 레일라니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친구들을 위로자, 구원자, 그리고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자로 생각지만 저는 그 반대를 원했습니다. "무엇을 도와줄까?" 레일라니가 주저없이 말했습니다. 저는 2023년 7월 4일 뉴욕에서 열린 '네이선의 유명한 핫도그 먹기 대회'( Nathan's Famous Hotdog Contest)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선수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10분 만에 닭날개 80개, 8분 만에 파이 2.
메리 보어스 해외입양인
2023.08.06 06:27:28
"평생 저를 찾은 친어머니는 재회 후 한달만에 돌아가셨습니다"
1975년 3월 27일, 저는 생후 2개월 반 아기로 덴마크로 입양되기 위해 혼자 한국을 떠났습니다. 입양될 아기들이 작은 상자에 담겨 비행기로 이동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제가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한국 입양 서류에 저는 "고아"라고 적혀 있었고, 한국 친생 부모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혼모가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아기를 포기했다는 입양기관들이 사회에 유포시킨 '아름다운 거짓말'과 함께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나은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이었습니다. 덴마크 시골에서 자
에바 호프만 해외입양인
2023.07.23 07:44:19
해외입양인들은 최초의 '유령 아동들'이다
최근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정기감사 과정에서 지난 8년간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는 '유령 아동'이 2236명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출생등록을 부모의 손에 맡겨왔던 한국에서 '유령 아동'의 문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오랫동안 한국 정부에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생지에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신고가 이뤄지는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을 권고해왔지만, '의료기관의 반대' 등을 이유로 미뤄져왔다. 국회에서 다행히 최근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이
한분영 해외입양인
2023.07.16 04:54:35
열세살에 노르웨이로 입양된 아내, 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노르웨이로 입양 간 잉거-톤 유랜드 신(INGER-TONE UELAND SHIN, 신광복과 결혼하고서 성을 SHIN으로 바꿈)의 남편 신광복이라고 합니다. 아내의 한국이름은 김정아(金貞娥)였습니다. 2019년 노르웨이 브뤼네(BRYNE)라는 곳에서 결혼식을 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1964년생이고요 1966년에 경기도 안양의 <안양의 집>이라는 보육원에 입소를 하였고요 1978년 3월까지 지내다가 노르웨이로 입양을 갔습니다. 당시 노르웨이에서 입양부모의 자격을 2번이나 거절당
신광복 해외입양인의 남편
2023.07.08 12:59:57
"우리는 딸이 진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1975년에 생후 8개월 된 김선자라는 여자 아기를 입양한 덴마크 입양부모입니다. 선자라는 이름은 후에 덴마크식으로 바꾸어 안야 카에 콜드라고 하였습니다. 최근에 우리는 딸아이가 한국에서 다른 덴마크 입양인들과 함께 자신들의 출생 배경과 친생 가족과 관련된 진실을 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이 다른 국제 입양인들과 함께 한국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딸 아이의 용기와 힘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딸아이의 입양 서류에는 우
비타 & 이지너 카에 콜드 (덴마크 입양 부모)
2023.07.01 06:37:51
"부모에게 들은 제 출생 이야기가 다 거짓이었습니다"
저는 1976년 8월 3일에 태어났고 같은 해 10월 31일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저는 생후 3개월에 입양된 아이였습니다. (양)부모님은 제가 부산의 한 경찰서 계단에서 고아로 발견됐고, 부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남광보육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지냈다고 알고 계셨습니다.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 저는 손목에 작은 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그 팔찌에는 제 한국 이름 김영식이 적혀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덴마크에 왔을 때 몸무게가 3.7kg밖에 나가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생후 3개월 된 아이치고는 몸무게가 그
요아킴 베르그 해외입양인
2023.06.24 1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