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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검색결과 (전체기사 중 1000건의 기사가 검색되었습니다 )
남겨진 우리들 몫은 "세월호 기억 싸움"
304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75명의 학생은 죄인이 됐다. 희생된 학생의 형제자매만 280여 명이다. 모두 한 동네에 살던 아이들이다. 4월 16일. 단 하루 만에 700여 명의 아이들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삶의 경로를 밟게 됐다. 가만히 있으라. 이 말은 남은 자들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상처를 헤집는 것 같다. 정부는, 언론은 이 사건을 다시 입에 올리는 건 고인에게 예가 아니라 한다. 그리고 빨리 잊자, 일상으로 돌아가자 한다. "굳이 아이들에게..." 아이들에게 이 비극을 되새겨서는 안 된다고 한다. 연민으
이대희 기자
2016.04.22 11:15:16
이승환 신곡은 세월호 희생자 추모곡?
가수 이승환 씨가 세월호 사고 희생자 추모를 암시하는 곡을 발표했다. 이 씨의 소속사 드림팩토리는 21일 오전 0시 신곡 '10억 광년의 신호'를 음원 사이트에 공개했다. 이 곡은 이 씨가 지난 2014년 발표한 11집 [폴 투 플라이-전(Fall to Fly-前)]의 후속작 [폴 투 플라이-후(後)]에 수록될 예정이다. 이 씨는 이 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부문을 수상했다. '이승환표 발라드' 형식의 '10억 광년의 신호'는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가사를 보면 세월호 희생자를 연상케 한다. 가사는 이
2016.04.21 16:22:33
해경 헬기 3대는 왜 35명만 구조했나?
전원 구조할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 9시 12분경 둘라에이스호 도착하였을 때가 전원 구조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다면, 9시 27분경부터 전원 구조할 수 있었던 두 번째 기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해경 헬기가 도착한 것입니다. 9시 27분경 B511호를 시작으로, 9시 32분경 B513호, 9시 45분경 B512호가 사고 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이하 B는 생략) 헬기에는 항공 구조사가 탑승하고 있었고,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이므로 세월호 어디든 목표하는 지점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헬기에서 내려
박영대 416연대 부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국민참여특별위원회 위원
2016.04.21 14:18:05
옥시는 '살인 면허' 기업? 103명 죽이고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경제 발전을 위해서 노동자와 소비자의 희생이 생겨도 기업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을 회피하는 사회에서 비슷한 참사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현재까지 공식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 146명 가운데 103명이 사용한 제품을 생산한 업체는 회사명과 회사의 형태를 바꾼 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이 제품에 의해 사망했다는 인과관계는 이미 5년 전 과학적 조사로 확인됐다. 그런데 지난 19일 처음으로 검찰이 이 업체 관계자를 소환 조사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이 기업은 현재 가습기 살
이승선 기자
2016.04.20 14:27:22
동거차도... 붉은 땅과 잿빛 나목의 그 섬
섬엔 바람이 거셌다. 바람은 그칠 기색도 없이 난폭하고 매정하게 섬을 때렸다. 그것과 부딪치는 모든 것들에서 비명 소리가 났다. 먼 바다의 살갗은 하얗게 일었다. 숲엔 여리고 싱싱한 꽃들이 착오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해안가 비탈엔 소나무 수 백 그루가 죽어가고 있었다. 목 베인 듯 뚝 떨어진 동백은 제가 어딘줄도 모르고 여전히 붉었고, 잎을 잃은 나무는 제가 어떠한 줄도 모르고 바람을 버티며 서 있었다. 붉은 땅 잿빛 나목의 그 섬. 꽃을 비끼어 밟고 능선에 올라선 남자들이 바람을 맞고 휘청거렸다. 한 발 뒤로 내딛으면 그 뿐
최형락 기자
2016.04.20 14:19:10
딸과의 거리 1.5km…벼랑 끝에 사는 아빠들
안산보다도 가깝고, 팽목항보다도 가까웠다. 딸 아이가 누워 있던 그곳과 가장 가까운 곳을 더듬거리며 찾아왔더니 벼랑이었다. 그러나 벼랑 끝까지 와도 닿을 수는 없었다. 바다 건너, 아니 무지개 건너야만 사랑하는 딸 아이를 만날 수 있다. "윤민아…" 딸 아이를 집어삼킨 바다를 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가슴이 일렁이지만, 그래도 제 뺨을 때려서라도 지켜봐야 한다. 저 바다 어딘가, 윤민이의 친구였던, 윤민이의 선생님이었던 이들이 여전히 누워있다. 그리고 윤민이를 비롯한 304명의 죽음을 밝혀줄 진실이 잠겨있다.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던
사진/최형락 기자, 글/서어리 기자
2016.04.20 14:17:11
동거차도... 붉은 땅 잿빛 나목의 그 섬
최형락 기자(=동거차도)
2016.04.20 14:15:17
"우리 250명, 미운 사람 데리고 절벽서 뛰어내리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생수 몇 병이라도 사갈 생각이었는데, 오산이었다. 서른 가구 남짓 사는 동거차도에는 변변한 가게 하나, 음식점 하나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도 별 도리가 없다. 뭍에서 만반의 준비를 해와야 한다. 동거차도에 오는 유가족들은 일주일 치 음식과 여벌 옷 등이 든 박스를 지게에 이고 지고 산꼭대기까지 나른다. 맨몸으로 쉬엄쉬엄 오르기도 녹록지 않은 산비탈 길을, 윤민 아빠 또한 몇 번이고 다녔다. 마을에서 쌀과 채소를 씻은 뒤 산 꼭대기 천막으로 향하는 길, 중턱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윤민 아빠가 말했다. "운동을 따로
서어리 기자(=동거차도)
2016.04.19 11:03:48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중요하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처는 너무나 크다.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다. 지난 2년 동안 세월호 사건의 진상 조사를 위해 검찰, 국회, 감사원, 해양안전심판원 등 각종 기관들이 조사 결과를 내놓았고 법원에서는 이미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에 대한 판결도 확정하였다. 그러나 세월호를 기억하는 우리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대목이 많다. 세월호 사건은 배가 수입되고 운항되는 과정, 사고 이후 승객 구조 과정 등 각각의 과정에 관련된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다 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박수빈 변호사
2016.04.18 12:11:35
2016.04.18 09:5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