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에위니아'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망ㆍ실종 50여 명, 주택 2300여 채 침수, 3700여 이재민 발생, 127 곳 도로 유실 등 1조1000억 원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매우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필자도 수해복구의 흙더미 속에서 주민들과 며칠을 보냈다. 직접 수해 현장에 있다보면 수해와 폭우를 걱정해야 하는 후진적 방재 시스템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중 하나가 온 국민이 실의와 슬픔에 젖어 있을 때 생선을 본 고양이마냥 즐거움의 미소를 짓는 이들을 볼 때다. 그들은 건설업체들이고, 중앙정치권과 지방선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며, 경제정책을 좌우하기도 한다. 필자는 지역에서 기초의원을 할 때부터 이 분들과의 '전쟁'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대표적인 난개발 지역에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여 1754세대의 아파트를 건축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도의회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시민단체와 함께 반대운동을 전개한 적이 있다. 그러나 허가는 어김없이 나간다. "법적으로 이상이 없고 불허가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찍어낸 듯 똑같은 이유를 들이댄다.
한 번은 옹벽과 법면이 부실하게 쌓인 현장을 목격하고 장화를 신고 15m 옹벽으로 올라가서 현장에 설치된 울타리를 잡아당기니까 50m가 넘는 울타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 일이 있었다. '설마 현장실사를 이곳까지 하겠느냐'는 생각에서 준공 허가를 받기 위해 날림으로 시공을 했던 것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으뜸 건설업체라는 곳에서 한 공사였다.
날림 공사가 자연재해 앞에 안전할 수는 없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태풍이나 폭우 소식만 들으면 눈을 번쩍 뜬다. 날림공사 사실이 드러날까봐? 아니다. 손쉬운 돈벌이 대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연재해일 경우는 공개경쟁 입찰 대신 긴급공사라는 이유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수의계약은 치열한 경쟁도 필요 없을 뿐더러, 평소 '실력자'들에게 든든한 보험도 들어놓은 건설업체들에게 입찰은 따 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
입찰은 그렇다 치자. 직접 공사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보통 불법으로 하도급을 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때 소개료가 공사비의 20%에 육박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단계로 하도급 된 공사가 제대로 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당연히 재해 복구 사업도 엉망일 수밖에 없다. 현장을 대충 훑어보고는 '법면 붕괴니까 옹벽을 10m 높이로 쌓으라'는 식이다. 긴급공사라는 이유로 정상적인 공사에 비해 관리감독도 소홀하다. 빠른 시간 내의 준공이 최대 목표가 되기 때문에 하자보증의 책임도 훨씬 줄어든다.
해양공사는 더욱 가관이다. 처음 방파제나 호안도로 공사를 한 업체에서 5년간 하자보증의 의무를 지도록 돼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일종의 기득권으로 둔갑돼 태풍이 불어 파손되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곤 바로 그 업체에서 복구공사를 맡게 된다.
물밑의 공사는 육안으로 확인이 잘 안된다는 점을 악용하기에 딱 좋다. 심하게 말하면 적당히 공사해 놓고 태풍이 불어 주기만 바라고 있으면 된다. 부실공사가 하루아침에 태풍 피해로 둔갑해 수십억 원대의 공사를 다시 따내는 것이 관행이다 보니 이런 의심이 심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얼마 전 부실공사로 의심되는 공사 현장엘 가봤다. 현장 조사를 해보니 방파제 10m를 신설하는 데 단차(기존 방파제와 신설 방파제의 단층 높이의 차이)가 50cm나 됐다. 지반이 꺼졌다는 뜻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예상외로 물살이 빨라 밑의 흙이 유실됐다는 변명이 돌아왔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예상을 잘못한 죄(?)'는 참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2001년에 1조2000억 원, 2002년에 6조1000억 원, 2003년에 4조4000억 원 등 해마다 수조 원의 피해가 전국적으로 발생했다. 그 때마다 그 이상의 세금을 복구 사업에 쏟아 부었다. 한번이라도 이 돈이 올바른 복구공사비로 쓰였다면 어땠을까.
며칠 전 경상남도에서 발주한 한 공사현장을 조사했을 때다. 예상했던 대로 공사장의 철근들은 방치돼 녹이 벌겋게 슬어 있었다. 규격에 맞지 않는 자재들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배수로나 안전조치도 없이 절개한 임야가 무너져 내렸는가 하면, 2년도 되지 않은 공사 현장이 붕괴돼 민가를 덮치기도 했다.
한 주민이 필자에게 "이건 분명히 천재가 아니고 인재"라고 통분하며 하소연했다. 위로의 말 외에 필자는 아무 말도 못했다. 부실공사가 안 되도록 감시를 못한 죄책감도 무겁게 필자를 짓눌렀다.
건설업체들에게도 이 주민의 호소가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간곡하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아무리 공사 수주가 군침 도는 생선일지라도 그 생선을 썩게 하는 고양이는 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료 의원들에게도 필자의 다짐을 겸한 동참을 촉구하고 싶다. 말썽 많은 고양이 목에는 방울을 달거나 끈을 짧게 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이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감시를 하는 것일 테니까.
김해연(41세) 의원은 대우조선노조 부위원장 출신으로, 3~4대 거제시의원을 지냈습니다. 시의원 시절부터 산업안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건설업체들의 지역 난개발 사업에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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