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을 보면서 2006년 군경이 '여명의 황새울'이라 말했던 대추리의 진압작전과 2009년 1월 용산 남일당의 화재가 떠올랐다. 아니 사실 그보다 더 먼저 떠오른 광경은 엉뚱하게도 2002년 체첸민족주의자들의 인질사건에 대응하던 러시아 군인의 살인적 진압 장면이었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테러집단을 진압하듯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 뒤 3년이 지나는 동안 언론을 통해 희망퇴직자가 되었거나 해고자가 된 쌍용 노동자들의 죽음을 전해 들어야 했다. 열 번째, 열 세 번 째, 열여덟 번째…. 그리고 지난 4월에 스물두 번째 희생자가 생겼다. 언젠가는 자신들의 젊음을 바친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고 땀 흘려 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파업에 참여했던 쌍용 노동자들은 회사와 동료에 대한 배신감, 사회의 무관심, 가족의 갈등을 겪으며 연탄가스를 피우고, 약을 먹고, 건물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쌍용만이 아니었다. 용산 남일당, 기륭전자, 두물머리, 한진중공업, GM대우, 콜트콜텍…. 곳곳에서 투쟁이 그치질 않았다.
| ⓒ노동과세계(이명익) |
그러다 지난해 1월 김진숙 씨가 크레인 85호에 올라갔다. 겨울이 봄으로, 봄이 여름으로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크레인 위에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애를 태울 때 '희망버스'에 탑승할 사람을 모집하는 소식을 들었다. 반가웠다. 그래서 망설일 것도 없이 공동체 식구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에 올랐다.
첫 번째 희망버스에 따라 간 초등부 아이들은 어른들이 밖에서 문화제를 하는 동안 한진 노동자들의 생활관에서 하룻밤을 잤다. 아침에 만난 아이들은 밤에 아저씨들이 끓여주신 라면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며 자랑했다. 그러면서 한진 아저씨들이 복직이 돼서 다시 멋지고 큰 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1박 2일을 일정을 마치고 한진중공업을 나설 때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는 한진 아저씨들을 향해 두 번째 '희망버스'가 오면 그때 또 오겠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은 언론에서 희망버스에 탄 사람들에게 '종북좌파'니 폭력을 휘둘렀느니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모 종북좌파가 뭐예요? 어, 우리 폭력 안 쓰고 놀았는데? 왜 신문에서 거짓말해요?"
두 번째 희망버스 때는 비가 많이 왔다. 그래도 아이들은 부산역에서 영도까지 행진을 하는 동안 한 번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최루액을 맞아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고 길거리에서 쪽잠을 자고 나서도 계속 희망버스를 타겠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희망버스는 힘없고 약한 이들이 모여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힘을 모으는 신명나는 잔치마당이었다.
작년 가을 김진숙 이모가 크레인 85호에서 내려왔을 때 아이들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좋아했다. 아이들은 이제 김진숙 이모가 내려왔으니 한진 아저씨들이 다시 일을 할 거라 믿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기도를 멈추지는 않았다. 성탄을 앞둔 대림절에, 부활을 앞둔 사순절에도 촛불을 켜고 빌었다. "쌍용 아저씨들이랑 한진 아저씨들이 빨리 일을 하게 해주세요. 비정규직이 없어지게 해주세요. 구럼비가 발파되지 않게 해주세요. 왕따가 없게 해주세요.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아직도 노동자들은 거리에 있고, 제주 강정은 날마다 전쟁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아이들과 함께 6월 16일 희망과 연대의 날에 열릴 '1만인 걷기 대회'나갈 것이다. 희망버스가 당장 무엇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연대이다. 그래서 나는 6월 16일 아이들과 손잡고 다시 희망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 ⓒ희망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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