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첨밀밀〉, 〈금지옥엽〉 등을 통해 서정적이면서도 현실감 넘치는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진가신 감독은 자신의 신작 〈퍼햅스 러브〉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의 영화적 화두인 '운명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 폐막작이자 동시에 중화권에서 35년 만에 제작된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퍼햅스 러브〉는 남녀배우와 영화감독 사이의 삼각관계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묻는 영화다.
성공을 위해 연인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여배우 손나, 예술적 동반자로서 손나를 선택한 영화감독 니웨, 그리고 떠나간 여인 손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배우의 길로 들어선 지엔. 이 세 명의 연인들은 지엔과 손나가 니웨 감독이 준비하는 새 영화에 함께 출연하게 되면서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촬영기간 동안 지엔은 자신을 외면하는 손나에게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 것을 종용하고,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은 것처럼 보이던 손나는 지엔의 집요한 설득에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옛 연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 니웨는 심한 질투에 사로잡히게 된다.
공교로운 것은 니웨가 준비하는 영화의 줄거리가 현실에서 이 세 사람이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기억을 잃어버린 서커스단의 스타여배우 앞에 다시 나타난 그녀의 옛 연인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서커스단장 사이의 삼각관계라는 '영화 속 영화'의 설정은 현실 속에서 손나와 지엔 그리고 니웨의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점점 이들의 현실적인 관계와 그들이 만들고 있던 영화 사이에는 더욱 많은 공통점들이 형성되고, 끝내는 영화와 현실의 구분이 더 이상 무의미해지는 순간에 도달하게 된다.
***사랑의 열정과 예술적 성취 사이의 갈등**
이처럼 엇갈리는 사랑의 테마를 '영화 속의 영화'라는 액자 형식의 서사구조로 표현한 또 한편의 영화로 마이클 파웰의 1949년 작품 〈분홍신〉을 꼽을 수 있다. 유명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는 극단주 보리스는 젊은 천재 작곡가 줄리앙과 함께 새로운 발레 '분홍신'을 준비하고 있다. 보리스는 이 작품의 주연으로 젊고 재능있는 발레리나 비키를 등용한다. 줄리앙과 비키의 재능 덕분에 '분홍신'은 놀랄만한 성공을 거두게 되고, 두 젊은 예술가들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냉혹한 흥행사 보리스는 이들의 사랑을 용납하지 못한다. 묘한 분노와 질투의 감정에 사로잡힌 보리스는 '사랑이 예술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비키에게 줄리앙과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줄리앙의 성공을 위해 비키는 줄리앙을 떠나지만 비키를 잊을 수 없었던 줄리앙은 사랑을 위해서는 예술을 포기하겠노라 선언하며 비키를 설득한다. 하지만 이미 스타가 된 비키는 무대에 서고 싶은 열망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사랑의 열정과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방황하던 비키는 자신이 공연하던 발레 '분홍신'의 주인공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처럼 남녀배우와 감독간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퍼햅스 러브〉와 발레리나와 작곡가 그리고 발레단장의 삼각관계를 그린 〈분홍신〉은 줄거리의 기본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사랑의 열정과 예술적 성취 사이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액자구조 형식**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 두 영화가 채택하고 있는 액자구조의 서사방식이다. 액자구조를 지칭하는 '미장아빔 mise en abyme'이란 표현은 원래 방패 가운데 방패모양의 문장이 새겨진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예술에서는 '이야기속의 이야기', '문장 속의 문장'과 같은 형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회화에서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얀 반 아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며, 문학에서는 〈아라비안 나이트〉나 셰익스피어의 희곡들과 같은 고전에서부터 현대적으로는 브레히트의 서사극이나 누보로망의 작품들에서 이런 액자구조가 자주 사용되고 있다. 영화에서도 액자구조는 종종 사용되는데 버스터 키튼의 〈셜록 주니어〉와 같은 고전적인 작품과 최근에 발표된 홍상수의 〈극장전〉 등이 액자구조를 사용한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장아빔'은 앙드레 지드가 이 형식에 대해 주목한 이후 예술의 자기반영성, 예술에서 주체의 문제 등과 관련지어 현대미학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미학적인 문제들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이 두 영화가 채택하고 있는 액자구조가 영화의 줄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줌으로써 관객의 영화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고 있다는 점만은 쉽게 알 수 있다. 이 두 편의 영화에 삽입된 '영화 속 영화' 혹은 '이야기 속 이야기'는 마치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또 햄릿이 준비한 연극이 끔찍한 존속살해의 진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 이야기들이 삽입된 영화의 전체적인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분홍신〉의 주인공 비키는 자신이 연기한 안데르센의 동화 속 주인공처럼 춤을 추고자하는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또 〈퍼햅스 러브〉의 주인공인 지엔과 손나는 자신들이 연기하는 캐릭터 속에서 자신들의 현실적 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서커스단 단장 역을 맡은 니웨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손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이처럼 두 영화는 모두 주인공들이 자신이 맡은 역할에 무의식적으로 동일시되거나 혹은 의식적으로 그 역할을 통해 자신의 현실적 상황을 드러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유사한 서사구조를 통해 사랑과 예술 사이의 번민을 그리고 있는 두 영화는 결말에 있어서는 다른 선택을 한다. 〈분홍신〉의 여주인공 비키는 줄리앙의 순수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고 싶은 끝내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퍼햅스 러브〉의 주인공들은 영화제작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타자화시킴으로써 갈등의 상태를 벗어나게 된다. 따라서 마이크 파웰의 주인공에게 예술에 대한 끌림이 사랑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독배라면, 진가신의 주인공에게 예술은 사랑의 진실을 회복하게 해주는 치유제인 셈이다. 〈퍼햅스 러브〉의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진가신 감독의 영화는 부당하게 타인의 '삶에서 편집당한 사람들'에게 그 잘못된 시간을 회복하게 해주는 기회를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편의 영화를 비교하는 일이 흥미로운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영화들이 감독들의 실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미장아빔'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랑'의 회복과 화해를 선택한 진가신 감독은 〈퍼햅스 러브〉로 중화권 관객들을 매혹시킨 반면, 치명적인 예술적 열정에 사로잡힌 마이클 파웰 감독은 관객들은 물론 동시대의 비평가들로부터도 외면당한 '저주받은 감독'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 〈퍼햅스 러브〉의 화려한 서커스 장면과 비교해 볼만한 장면들 : 막스 오퓔스의 〈롤라 몽테스〉의 원형 서커스 무대 장면, 장 르느와르의 〈프렌치 캉캉〉의 물랑 루즈 댄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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